[취재수첩] 연봉 1억 이상의 말년병장
[디지털데일리 채수웅기자] 코로나19 여파에도 불구 정보통신기술(ICT) 주요 기업들의 경우 오히려 호황을 누리는 곳들이 적지 않다. 비대면으로 인해 가정 등 실내에서 머무르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게임 업종의 경우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하고 있고, ICT 디바이스 수요도 늘어나면서 반도체 기업들도 수혜를 톡톡히 보고 있다. 전통적인 내수 업종인 통신업종 역시 불황을 피해 견조한 실적을 올리고 있다.
연간 실적발표 즈음에 들리는 소식 중 하나는 바로 성과급이다. 주로 삼성전자가 많이 비교가 되곤 했는데 올해는 예년에 비해 좀 더 시끄럽고 사회적으로 많은 주목을 받았다.
반도체 경쟁사인 SK하이닉스가 실적 개선에도 불구 왜 성과급이 전년 수준에 책정됐는지를 문제 삼았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삼성전자와의 비교는 피할 수 없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통신사 중 가장 평균 연봉이 높은 SK텔레콤이 성과급을 둘러싸고 갈등을 겪었다. 지급 기준에 대한 문제였다. 갈등 끝에 지급 기준을 개선하기로 노사가 합의하며 일단락 됐다.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기업을 다니는 직장인 입장에서는 여기저기서 터지는 성과급 논란에 불편과 부러움을 동시에 느꼈을 것이다.
최근 게임업계에서는 연봉인상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넥슨이 신입사원, 초임 연봉을 개발직군은 5000만원, 비개발직군은 4500만원으로 상향 조정하고, 재직중인 직원들의 연봉도 일괄적으로 800만원 인상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며칠뒤에는 넷마블이 전체 임직원 연봉을 800만원 인상한다고 발표했다. 넥슨과 마찬가지로 개발직군 초임은 5000만원, 비개발직군은 4500만원으로 조정했다.
이들이 성과급을 조정하고 연봉과 초임을 올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회사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서다. 좋은 인재를 영입하고 유출을 막기 위해 그만큼의 대우를 해주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회사가 어려운데 파업을 하고 무조건 성과급을 달라는 것도 아니다. 나름 고액 연봉에 걸맞은 일들을 해왔을 것이고, 또 회사가 그만큼 성장했으니 이익을 나누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최근 또 고액 연봉이 논란이 된 곳이 있다. 바로 공영방송 KBS다. KBS도 평균 연봉이 1억원이 넘는다고 한다. 그런데 국민들의 반응은 위에 언급된 기업들과 비교해 상당히 차갑다. 민영방송 SBS도 평균 연봉이 1억원이 넘는다. SBS에 뭐라는 사람은 없는데 유독 KBS 연봉을 놓고 갑론을박이 펼쳐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차가운 시선의 끝에는 수신료가 자리한다. 수신료는 세금과도 같아서 매달 꼬박꼬박 전기요금 고지서를 통해 빠져나간다. 일부 힘든 과정을 거쳐 수신료를 내지 않는 국민들도 극소수 있지만 대부분 가정에서 수신료를 낸다. 넓게 해석하면 KBS는 국민의 돈으로 운영되는 방송사인 것이다.
그래서 KBS에 대한 국민의 기대와 잣대는 다른 기업, 방송사보다 엄격할 수 밖에 없다.
그러면 KBS는 잘 운영되고 있을까? 영국 옥스퍼드대 부설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가 최근 발간한 '디지털 뉴스리포트 2020'에 따르면 KBS는 국내 방송사 중 뉴스 신뢰도에서 4위를 기록했다. 범위를 넓혀 주요 국가들의 공영방송과 비교해도 한참 낮은 수준이다.
연차가 높아지고 연봉이 올라갈수록 책임도 커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관리자급으로 갈수록 책임도 커지는 것이 보통 기업의 인력 구조다.
KBS가 밝힌 무보직자는 약 1500명이라고 한다. 전체 직원의 3분의 1 수준이다. 근속연수 15년 이상, 연봉 1억원이 넘는 관리자급 인력들이 단순 행정업무, 체육관 관리, 지로대금 납부 등과 같은 단순업무를 맡고 있다고 한다. 승급기간이 짧고 특별한 흠결이 없으면 자동승급되는 구조다 보니 이러한 비정상적 인력구조가 형성됐다.
일반 기업같으면 말도 안되는 일이겠지만 KBS에서는 이같은 인력구조는 부끄러운 모습이 아닌 듯 싶다. 수년 뒤 후배 보직자들이 가야할 자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조직내에서도 치열한 경쟁이나 평가가 이뤄지지 않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개인적으로 KBS는 다른 방송사들보다 연봉이 높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수십년째 제자리인 수신료도 상당부분 올릴 필요가 있다고 본다. 공영방송이기에 시청률에 다소 초연해야 하고 다른 방송사들이 돈이 안돼 외면하는 공익적 프로그램, 재난방송도 더 잘하려면 안정적 재원이 필요하다. 그리고 연봉이 높아야 우수한 인재들도 많이 몰릴 것이다.
하지만 전제조건이 필요하다. 오랜기간 KBS 수신료 인상이 발목 잡힌 이유는 전제조건인 치열한 내부의 체질개선이 없었기 때문이다. 수신료가 있으니 방만경영을 해도 된다는 의미는 아닌 것이다.
군대 다녀온 성인 남성들은 안다. 말년 병장은 손 하나 까딱 하지 않는다는 것을. 하지만 그것은 진짜 제대를 며칠 앞둔, 전역마크를 단 병장 때나 가능한 얘기다. 전역마크를 달기전 병장은 후임들과 같이 행군, 훈련을 치루고 영하의 혹한에서 잠을 청한다. 후배들은 자기가 가야할 길을 먼저 간 선임의 모습을 보고 따라 갈 것이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KBS는 말년 병장만 가득한 모습이다.
“아무리 욕해봐야 정년보장에 평균연봉 1억원이고 부러우면 입사하라”
어느 철 없는 한 KBS 직원의 일탈로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국민들은 일부의 모습으로 생각하지 않는 듯하다.
수신료는 국민들이 납부하는 것이기 때문에 국민적인 이해와 공감이 형성돼야 한다. 그런데 이러한 모습이라면 올해도 수신료 인상은 쉽지 않아 보인다. 수신료 인상 선언 전에 무엇이 필요한지 알 것 같은데 일부러 외면하는 것은 아닌지, 수신료 인상때마다 반복되는 상황이 안타깝다.
<채수웅 기자>woong@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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