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수출규제 이후 눈에 띄는 현상이 있습니다. 일본 소재·부품·장비(소부장) 업체가 연쇄적으로 ‘한국행’을 택하고 있습니다. 국내 반도체 양대산맥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겠죠.
최근 쇼와덴코는 한국 자회사를 통해 경기 안산에 CMP(Chemical Mechanical Polishing) 슬러리 공장을 설립한다고 밝혔습니다. CMP 슬러리란 반도체 웨이퍼 표면을 연마해 평탄화하는 소재입니다. 해당 공장은 2021년 10월부터 가동될 예정입니다.
지난 10월 아데카는 개발 기능 일부를 한국으로 옮기고 시제품 생산에 나선다고 알려졌습니다. 이 회사는 고유전 재료를 생산하는 업체로 글로벌 시장점유율 50% 이상 차지하죠. 고유전은 회로 누설 전류를 차단하는 역할을 합니다. D램 공정 미세화로 사용량이 늘어나는 소재입니다.
그동안 핵심제품은 일본에서 시제품을 만들어 수출했습니다. 이제는 해당 작업이 국내에서도 이뤄지는 것이죠. 당시 일본 닛케이신문은 “(이번 결정은) 현지 개발로 고객사와의 협업 강도를 높여 시장 지위를 유지하려는 조치”라고 보도했습니다.
업계에서는 일본 업체가 지난해 자국 정부의 대한(對韓) 수출규제 이후 하락한 실적을 만회하기 위해 한국으로 움직이는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이외에도 일본 기업의 한국행은 올해 들어 다수 포착됐습니다. 지난 7월 도쿄오카공업(TOK)은 인천 송도 공장에서 극자외선(EUV)용 포토레지스트(PR) 생산을 시작했습니다. EUV용 PR은 일본이 독점하던 분야로 수출규제 당시 제재 품목이었죠. 다만 TOK 입장에서도 EUV 대형 고객사 삼성전자를 놓치면 타격이 큽니다.
간토덴카공업은 충남 천안 신공장을 가동하기 시작했습니다. 반도체 공정에서 사용되는 특수가스 황화카르보닐을 생산하는 업체죠. 연구시설도 마련했습니다. 그동안 황화카르보닐은 한국에서 생산되지 않았습니다. 다이요홀딩스, 토소, 도쿄일렉트론(TEL) 등도 국내 비중을 높여가고 있죠.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일본 소부장은 여전히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일부 내재화를 하더라도 일본과의 거래는 필수불가결”이라면서 “국내 투자를 늘리는 것은 긍정적인 흐름”이라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