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데일리 김도현기자] 미국의 ‘화웨이 제재’ 효과가 드러나고 있다. 사업 차질이 불가피하다. 이를 보는 주요 반도체 업체들의 속내는 복잡하다. 삼성전자, 인텔, TSMC 등에 화웨이는 주요 고객사다.
미국 상무부는 지난 5월 화웨이에 자국 소프트웨어(SW) 및 기술을 활용한 제품 수출 시 정식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수출 규제 개정안을 공표했다. 같은 달 15일부터 시행됐고, 120일의 유예기간을 뒀다. 오는 9월부터 정식 시행된다.
화웨이의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통신 칩 등의 생산을 담당하는 TSMC는 최근 관련 내용을 공식화했다. TSMC는 지난달 실적 컨퍼런스콜에서 “미국의 모든 규정에 따를 예정이다. 5월 이후 화웨이 주문을 받지 않으며, 오는 9월14일 이후에는 모든 납품을 중단할 것”이라고 밝혔다. 기존 수주 물량을 처리하면, 화웨이와의 관계를 끊겠다는 의미다.
파운드리 1위 TSMC는 미국과 밀접한 업체다. 모리스 창 TSMC 창업주 겸 전 회장이 미국 텍사스인스트루먼트(TI)에서 20년간 근무했고, TSMC 주요 고객사는 퀄컴·애플·ADM 등 미국 회사다. 최근에는 120억달러(약 14조7756억원)를 투자해 미국 애리조나주에 5나노미터(nm) 공정 반도체 공장을 설립한다고 밝혔다. 불가피하게 미국 편에 섰지만, 화웨이라는 대형 고객사를 잃게 됐다.
화웨이는 사면초가다. 핵심 부품 조달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플래그십 신모델 ‘메이트40’ 출시 시기를 미뤘다. 10월 말로 예고했지만, 확정하지 않은 만큼 추가 연기 가능성도 제기된다. 자국 파운드리 업체 SMIC가 있지만, 최신 AP 생산할 능력은 아직이다.
주요국이 미국 움직임에 동참하면서 화웨이는 네트워크, 통신 장비 사업 등도 타격을 입고 있다. 이는 중앙처리장치(CPU) 1위 인텔과 메모리 1위 삼성전자에 달갑지 않다.
인텔 역시 미국 기업인 만큼 정부 방침에 따르고 있다. 상반기는 코로나19 여파에 따른 비대면(언택트) 생활 확산으로 화웨이 공백을 메웠지만, 향후 실적 감소가 유력하다. 인텔의 서버용 CPU 시장점유율은 95%다. 이 가운데 화웨이는 큰 비중 차지하고 있다. CPU 납품이 제한될 경우, 대형 고객사를 잃는 셈이다. CPU 공급난을 극복하기 위해 생산능력(CAPA, 캐파)을 대폭 끌어올린 탓에 화웨이 이탈이 더욱 크게 느껴진다.
인텔처럼 직접적인 영향을 받지는 않지만, CPU 가는 곳에 메모리 간다. 화웨이가 CPU 수급 이슈로 서버 구축이 지연되면, 삼성전자의 D램과 낸드플래시 납품에도 문제가 생긴다. 수요 부진에 따른 메모리 가격 하락 가속화 우려도 있다. 삼성전자는 화웨이 스마트폰 사업 차질 관련 수혜를 기대해볼 수 있지만, 샤오미·오포·비보 등에 호재일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중국 내 ‘애국 소비’가 늘어나는 추세다.
화웨이 제재로 인한 파운드리 시장 재편 가능성도 있다. TSMC가 화웨이 물량을 받지 않으면, 관련 라인은 가동을 중단한다. 새로운 주문을 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선택지는 TSMC에 있다. 이미 풀가동 중이어서, 소화하지 못 하는 물량이 삼성전자로 향하고 있다. 애플, 퀄컴 등은 경쟁 관계에 있는 삼성전자보다는 TSMC를 선호한다. 최근 7나노 CPU 출시 연기를 선언한 인텔의 물량을 확보할 수도 있다.
삼성전자는 이중고다. 메모리와 파운드리가 동반 부진할 수 있다. 반면 대만 반도체 설계(팹리스) 업체 미디어텍은 웃는다. 화웨이의 자회사 하이실리콘이 발만 동동 구를 때, 미디어텍이 구원자가 될 수 있다. 미디어텍은 아직 퀄컴, 삼성전자 등보다 AP 성능이 떨어지지만, 빠른 속도로 기술력을 끌어올리고 있다. 샤오미 등 중국 중저가 스마트폰에 주로 활용되고 있다. 여기에 화웨이 물량까지 확보하면, 규모의 경제를 이룰 수 있다. 같은 대만 업체인 TSMC와의 거래는 문제없다. 실제로 미디어텍은 올해 3분기 매출액이 전년동기대비 20% 이상 오를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