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데일리 이상일기자] 우여곡절끝에 교육부가 최근 ‘4세대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나이스)’ 사업에 대해 개통을 1년 연기하기로 결정했다. 2000억원 규모의 대형 공공IT사업으로 주목받아온 나이스 사업을 향한 IT업계의 경쟁도 연기됐다.
그러나 이와 별개로 교육부는 4번째로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정통부')에 '대기업 참여 제한 예외' 신청을 할 것으로 전망된다. 즉, 교육부는 어떻게든 대기업을 이번 '나이스'사업 입찰에 참여시키기위해 과기정통부로부터 유권해석을 받아내겠다는 것이다.
물론 과기정통부의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 '공공IT 사업은 일부 예외를 제외하고는 현행 SW산업진흥법에서 규정한 대로 대기업의 입찰은 금지된다'는 것. 일부 예외를 인정해버리면 사실상 SW산업진흥법은 유명무실해지기때문이다.
지난 몇년간 클라우드, 빅데이터 등 혁신 기술이 필요한 사업은 공공IT사업이라도 대기업 참여가 예외적으로 허용돼왔다. 하지만 요즘 AI(인공지능), 클라우드, 빅데이터가 아닌 IT사업은 없다. 이 예외 규정을 그대로 따를경우 대기업은 참여하지 못할 대형 공공IT사업은 없다.
따라서 이같은 이유로 과기정통부가 3차례나 반려시킨 사항에 대해 교육부가 또 다시 예외신청을 통해 대기업의 '나이스' 사업 참여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 정도면 거의 집착이다.
나이스 사업은 올해 발주되는 공공SW 사업 중 최대 규모로 꼽힌다. 지난 2012년 공공SW 사업에 대한 대기업 참여제한 제도 시행 이후 중소중견 기업이 참여할 수 있는 최대 사업이다. 당연히 중소중견 IT서비스업체들의 기대도 컸다.
◆"우리도 전문인력 다 갖췄는데'...중견중소IT업체들 탄식 = 이 사업이 중견중소 기업에 중요한 이유는 대형 공공IT 사업에서도 역량을 발휘, 증명할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혁신기술이 필요한 신성장 분야 공공IT 사업은 '예외사업 처리'를 통해 대기업이 참여해왔는데, 이제는 더 이상 대기업에 양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사실상 시장은 열렸지만 중소중견기업에겐 여전히 ‘벽’이 존재해 온 셈이다.
7년여 간 공공SW 사업을 수행해 오며 중소중견기업들도 공공 IT시장에서 중요 시스템으로 꼽히는 사업을 성공적으로 진행해 왔다.
이미 이 기간에 공공SW 시장진입이 막히면서 자연스럽게 대기업 IT회사에서 이탈한 전문 인력들을 중소중견기업들이 흡수해 고용 재창출과 더불어 시스템 구축 운영 노하우 및 대고객 네트워크를 내재화하기도 했다.
문제는 중소중견기업에게 여전히 대형 공공SW 사업 진입이 쉽지 않다는 데 있다.
이번 4세대 나이스 사업에 대한 4번째 대기업 참여 예외 신청이 과기부 민간심의위원회에 의해 승인될 경우, 앞으로 중소중견기업이 이정도 규모의 대형 공공SW 차세대 사업에 참여하기란 사실상 어려워진다.
학습효과(?)가 뛰어난 공공 부문의 특성을 감안하면 대부분 선례를 이유로, 앞으로 대형 사업에 대기업 참여를 독려하고 나설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물론 교육부가 대기업의 사업 참여 가능성을 열어두고자 하는 이유도 설득력이 없는 것은 아니다. 국민들이 교육에 대한 관심이 높고 나이스는 일종의 사회안전망의 역할도 하고 있는 만큼 실수가 있어선 안되기 때문이다.
여기에 복잡하고 대형인 시스템은 문제가 발생할 확률이 높고 여기에 대한 사후 처리에 대해 확신을 보장받고 싶어 하는 심리도 일정 부분 작용한 것으로 예측된다. 대기업이니까 문제가 발생해도 잘 대처해 줄것이라는 막연한 믿음이 빚는 결과다.
하지만 그런 식의 논리면 영원히 이 상황은 바뀌지 않는다. 또한 이제는 대규모 IT 프로젝트의 부실화를 방지할 수 있는 다양한 장치들도 존재한다. 일어날지 모를 사고에 미리 겁먹고 돌다리를 수십번 두들기는 것이 합리적인지 의문이다.
대기업이라 가능하고 중소중견기업이라 불가능하다는 '확증 편향의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염려된다. 정말 그렇다면 이는 중견중소 IT기업을 두 번 울리는 일이다.
◆금융IT 사업 사례, 참고할만 = 보수적으로 이름 높던 금융IT 시장에서 국내 솔루션 업체들이 선전하게 된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그동안 IBM, 오라클 등 외산 솔루션의 벽이 높았기 때문이다. 담당자들이 이른바 책임을 ‘면피’하기 위해서도 브랜드 있는 외산 솔루션을 막연하게 선호하기도 했다. "최고의 브랜드를 도입했지만 사고가 났다. 나로서도 어쩔 수 없다”는 핑계가 내부적으로 통했다.
하지만 농협은행은 과거 차세대시스템 구축을 추진하며 국산 솔루션에 대한 전향적인 검토에 나서 주목받았다. 결국 티맥스소프트를 비롯한 다양한 국산 솔루션이 선정되면서 금융권 전반으로 국산 솔루션에 대한 선택이 늘어나게 되는 기반을 만들기도 했다.
근로복지공단도 2006년도에 오라클 DBMS를 국산 업체인 알티베이스로 교체하면서 당시 시장에 신선한 충격을 준 바 있다. 금융은 물론 공공에서도 핵심 DBMS는 오라클 일색이었는데 과감한 시도를 한 셈이다.
농협은행, 근로복지공단 모두 의사결정권자와 현업에서의 용기 있는 선택이 주요했다. 리스크를 감수하지 않고서는 한 단계 더 발전할 수 없다는 사실에 기반한 선택이었고 도전이었다. 또 국내 SW시장을 발주처와 기업이 같이 키워가야 한다는 동지의식도 일정 부분 발휘된 바 있다.
교육부는 코로나19로 인해 온라인 개학 등 원격 수업이 대두되고 새로운 언택트 교육환경이 도래하는 만큼 사업 자체를 다시 봐야 하고 그래서 사업 연기와 함께 대기업 참여 여지가 있다고 보고 있는 듯 하다.
하지만 4세대 나이스 사업에선 이미 정보화전략계획(ISP)를 통해 방대한 학습 자료와 기록물 관리 등을 위해 클라우드, 인공지능(AI), 블록체인 등 4차 산업혁명 혁신 기술을 대거 활용키로 한 만큼 이미 사업계획에 IT신기술에 대한 접목이 들어가 있다. 언택트 대응은 큰 틀에서 이미 새로운 신기술 활용 범주에 들어가 있는 셈이다. 1년이나 개통을 연기할 일은 아닌 것이다.
또 디지털 뉴딜이라는 입장에서 교육부의 사업 지연은 고용인력 창출 면에서 오히려 퇴보하고 있는 셈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월 청와대에서 중소·벤처기업인들과 간담회를 통해 “일자리도 전체 고용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중소기업의 고용이 늘어야 해결될 수 있다”고 역설한바 있다.
고용이 늘어나기 위해선 시장이 존재해야 한다. 코로나19로 인해 전체적인 시장이 위축되고 있는 가운데 열려있던 시장마저 닫아버린다면 그동안 투자와 확대를 지속해온 중소중견기업은 성장에 한계가 올 수 밖에 없다.
나이스의 경우 이미 올해 초 발주될 것으로 보고 인력을 준비해왔던 기업들은 큰 부담을 안게됐다. 준비에 들어간 비용은 물론 인력 관리를 위해 추가비용 소요도 예상된다. 전체적인 인력 고용 계획도 늦어지게 된다.
4차 예외신청이 진행될 경우 일단 공은 과기정통부로 넘어간다. 과기정통부로서도 민간심의위원회의 결정을 존중하겠다는 입장인 만큼 사실상 부처 간 '핑퐁'게임이 될 공산이 커 보인다.
대기업이 컨소시엄을 통해 중소중견기업과 상생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오지만 중소중견기업에게도 ‘주인공’이 될 수 있는 기회는 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