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GE의 실패와 디지털 혁신
[디지털데일리 백지영기자] “전세계에서 10위권 소프트웨어(SW) 기업으로 발돋움하겠다. 2020년까지 SW사업으로만 150억달러를 벌어들일 것이다. 지멘스나 캐터필러와 같은 전통적인 경쟁자는 물론 SAP, IBM과 같은 업체와도 경쟁하겠다.”
지난 2015년 제프리 이멜트 당시 GE 최고경영자(CEO)가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개최한 ‘마인즈 + 머신 콘퍼런스’에서 한 말이다.
미국을 대표하는 제조기업, 전세계 모든 기업의 롤 모델로 성장해 온 GE의 파격적인 발언은 당시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혁신)’을 준비하던 많은 기업에게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했다.
GE는 다양한 IT업체와 협력하며 지능형 송전망으로 전력 생산성을 높이는 ‘디지털 파워 플랜트’, 공장 설비에 센서를 달아 기계 결함 등을 운영자에게 알려주는 ‘똑똑한 공장’ 등을 내세워 혁신의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때문에 지난 2~3년 간 이같은 GE의 혁신 사례는 IT업체 행사에서 디지털 혁신의 단골 소재가 됐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GE의 내부 상황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더니, GE 디지털 혁신을 주도했던 제프리 이멜트 회장이 물러나고 새 CEO가 부임했다. 그리고 지난 19일(현지시간)에는 미국을 대표하는 30개 우량종목으로 구성된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에서 퇴출됐다. GE는 1907년 이후 111년 동안 유일하게 다우를 지킨 기업으로 자리매김했지만, 최근 수년 간의 경영난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다우지수에서 사라지게 됐다. GE의 자리는 약국 체인업체 월그린스 부츠 얼라이언스로 대체된다.
토마스 에디슨이 1878년 만든 전기 조명회사를 모태로 탄생한 GE는 약 15년 전만 해도 미국 시가총액 1위 기업의 위용을 자랑했다. 가전과 제트엔진, 풍력터빈, 석유시추장비 등 다양한 분야로 사업을 확장했지만 너무나 방대하고 복잡해진 조직은 결국 GE의 몰락을 이끌었다는 평가다. GE는 모태가 된 전구조명 등 10개 이상의 사업을 정리하고 감원을 진행 중이며, 전력과 항공, 헬스케어 등 주요 사업을 분사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특히 GE가 2013년부터 야심차게 시작한 디지털 혁신 역시 실패로 끝났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126년 전통의 GE는 2013년 기계에서 나오는 빅데이터를 수집, 분석할 수 있는 산업인터넷 플랫폼 ‘프레딕스’를 런칭했다. 프레딕스는 아마존웹서비스(AWS)와 마이크로소프트(MS) 애저 등 퍼블릭 클라우드 서비스 상에서 구동돼 공장설비 등 다양한 분야에 적용됐다.
GE는 2014년 프레딕스 적용에 따른 생산성 솔루션 분야 매출이 10억달러에 달한다고 밝혔으며 이듬해인 2015년에는 GE 소프트웨어에서 파생한 GE 디지털이라는 새로운 사업부를 만들었다. 2016년 기준 GE 디지털 직원은 1500명 이상이며 겉보기엔 장밋빛 일색이었다.
그러나 외부에 보여지는 것과 달리 내부 현실은 다른 모습이었다고 전해진다. GE의 디지털 혁신은 GE 애비에이션(제트엔진), GE 트랜스포메이션(철도), GE 파워(풍력터빈) 등 각 사업부가 GE 소프트웨어 자원을 이용해 혁신을 구현했고, 이는 해당부서의 CEO나 임원이 결정했다.
사실상 디지털 전환보다는 기존 산업에 기술을 적용한 디지털 실행에 가까웠다는 것. 결국 GE 소프트웨어가 벌어들인 수익의 대부분이 외부고객이 아닌 GE 내 사업부에서 발생한 셈이다.
디지털 전환의 의미는 21세기 현재 비즈니스 모델에 대한 재고다. 이는 단지 기존 모델에 기술을 추가하는 것이 아니다. 특히 GE의 사례처럼 조직 내에서 실행되는 경우 진정한 의미의 디지털 전환은 실패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변화는 너무 파괴적이기 때문에 기존 조직은 이를 거부한다. GE 디지털이 성공하기 위해선 GE와 분리돼야 했다.
또 디지털 전환 계획 자체에는 수천명의 사람보다는 작은 조직으로 시작해 자주 실패하는 것이 중요하다. GE의 경우 장기적인 전략 목표보다는 단기 매출 성장에 초점을 맞췄고 그러다보니 디지털 전환 이니셔티브가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다는 분석이다.
디지털 전환은 기술이나 전략보다는 내부의 혁신 문화가 우선돼야 한다. ‘프레딕스’를 통해 누구보다 먼저 디지털 플랫폼 비즈니스에 뛰어들었지만 실패한 것도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최근 많은 국내 기업들도 ‘디지털 혁신’을 외친다. 하지만 디지털 혁신을 위해선 막연히 기술을 도입하는 것에 앞서 명확한 목표를 세우고 작은 조직으로 자주 시도해 실패를 경험하는 민첩함, 그리고 문화가 중요하다. 역사는 성공하는 자들의 것이라고 했던가. GE의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아 디지털 전환 전략을 세우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백지영 기자>jyp@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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