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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첨단산업과 좋은 일자리 딜레마

이수환

[디지털데일리 이수환기자] 얼마 전 국내 모 기업의 공장을 견학할 기회를 얻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오래전에 봤던 라인과는 차이가 컸다.

일단 장비가 무척 커지고 길어졌으며 지나가는 사람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견학했던 공장은 몇 번의 개보수를 거친 20년 가까운 역사를 가진 곳이었는데, 이야기를 들어보니 한 공간에 여러 명의 작업자가 있었지만 지금은 사람이 겨우 지나다닐 정도로만 길을 텄다고 했다. 결론적으로 작업자가 줄었다는 의미다.

스마트 공장과 같이 산업용 사물인터넷(IIoT) 기술을 접목하면서 현장 작업자가 줄어드는 현상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는 우리나라 수출을 떠받들고 있는 반도체·디스플레이와 같은 첨단산업도 마찬가지다. 시황이 개선되면서 사상 최대의 실적은 물론이거니와 천문학적인 규모의 설비투자(CAPEX)가 곁들여지고 있으나 고용 창출 능력은 감퇴되는 모양새다.

그렇다고 해서 원가절감이나 제품믹스 개선 등의 작업 없이는 현재의 경쟁력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 갈수록 늘어나는 연구개발(R&D) 비용도 부담이다. 더구나 디스플레이 굴기에 성공한 중국의 위협은 환상이 아니다. 반도체는 아직 멀었다는 이야기가 여전하지만 액정표시장치(LCD) 사례, 그리고 최근 유기발광다이오드(OLED)와 양자점(퀀텀닷, QD)에서 보여준 실력을 감안하면 자다가도 일어날 판이다.

막대한 투자는 철저하게 이원화 추세에 접어들었다. 국내는 기술이나 자동화 설비에, 해외는 저렴한 인건비를 바탕으로 많은 고용이 이뤄지는 형태다. 바꿔 말하면 더 이상 국내에서 단기간에 고용률이 높아지기가 상당히 어려워졌다. 흔히 말하는 ‘좋은 일자리’ 자체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기업의 투자 이원화는 일자리의 양극화를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농업 중심에서 경공업, 중화학 공업으로의 빠른 전환으로 경제 성장을 이룩했다. 필연적으로 수출로 먹고 살아야 한다. 특정 국가가 아닌 전 세계를 상대로 물건을 팔아야 하는 운명이다. 이를 위해서는 충분한 현금(사내유보금)이 확보되어야 하고 어느 정도의 노동 유연성이 필수적이다. 더불어 첨단산업에 대한 진지한 이해와 접근도 곁들여져야 한다. 반도체·디스플레이가 잘 하고 있다지만 원천기술은 여전히 미국, 일본, 독일 등 선진국이 장악하고 있다.

그래서 첨단산업을 바탕으로 한 좋은 일자리 만들기라는 성장통은 반드시 거쳐야 한다. 당장 고용률이 오르지 않아도, 실업률이 낮아지지 않아도 인내심을 가지고 첨단산업 자체에 더 투자하고 키워야 하는 안목이 필요하다. 여기에는 어떠한 정치논리가 끼어들어서는 곤란하다.

그리고 이런 상황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기업과 사회의 대타협으로 일자리 창출에 나설 수 있도록 규제 해소와 충분한 대화, 서로의 입장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어쩌면 좋은 일자리란 인내와 이해에서부터 시작하는지 모른다.

<이수환 기자>shulee@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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