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주시하는 후방산업…투자촉진이 핵심
[디지털데일리 이수환기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외치던 ‘위대한 미국’이 실체를 드러내고 있다.
잘 알려진 것처럼 기본은 미국 우선의 보호무역주의다. 이미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나프타) 재협상과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탈퇴를 선언한 상태다.
업계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이 투자를 촉진시키기 위한 메시지로 받아들이고 있다. 예컨대 일본 자동차 시장이 폐쇄적으로 비판했지만 이미 무(無)관세 정책이 이뤄지고 있고 미국의 무역 적자 가운데 일본의 비중은 9%에 그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시대착오적인 발언을 이어가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의 의도는 일본 자동차 시장이 폐쇄적이어서 미국산 자동차가 잘 안 팔리는 것이 아니라, 일본산 자동차가 미국으로 수출되는 물량을 줄여 투자를 활성하기 위한 의도로 봐야 한다.
완전히 같은 경우는 아니지만 마찬가지로 무관세인 반도체도 곱씹어볼 필요가 있는 부분이다. 삼성전자는 미국에 오스틴 공장을 보유하고 있고 SK하이닉스의 경우 디자인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특히 삼성전자는 지난해 11월 오스틴 공장에 10억달러(약 1조1420억원)을 투자하기로 한 상태인데, 최근 반도체 공장 트렌드가 인력을 최소화하고 자동화 비중이 높아지고 있어서 트럼프 대통령이 원하는 수준의 고용창출은 어렵다. 따라서 아직까지 구체적인 발언이나 이야기는 없지만 만약 한국산 반도체에 대한 언급이 있다면 일본산 자동차와 크게 다르지 않은 차원에서 추가적으로 투자를 원한다고 봐야 한다.
미국에 70억달러(약 8조1600억원)을 들여 미국에 디스플레이 공장을 지을 가능성을 언급한 궈타이밍 홍하이정밀공업(폭스콘) 회장의 발언도 비슷한 맥락이다. 여러 가지 변수가 있어 확정짓지는 않았지만 디스플레이도 반도체와 마찬가지로 공장을 세운다고 해서 다른 제조업과 비교해 큰 수준의 고용창출이 일어난다고 보기 어렵다. 반도체나 디스플레이 장비 시장은 미국 업체의 영향력이 상당해서 미국에 팔던, 일본으로 수출하던, 혹은 한국에 들여오던 큰 차이가 없다.
리쇼어링(제조업 본국회귀)과 같은 일은 후방이 아닌 전방산업의 역할이 더 크다. 대표적인 업체가 애플이다. 이 회사는 1990년 이후를 통틀어 미국에 공장을 짓고 PC 등을 양산한 적이 딱 한 번밖에 없다. 그것도 2013년 이후 신모델이 나오지 않고 잘 팔리지도 않는 전문가 대상 워크스테인 맥프로 한 종류밖에 없다. 팀 쿡 최고경영자(CEO)를 비롯한 주요 임직원이나 핵심 제품 발표회 등에서도 맥프로에 대한 언급은 이뤄지지 않은 상태다.
따라서 폭스콘의 70억달러 투자 언급은 애플 제품의 상당수를 생산하고 있고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목표삼아 언급하는 것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함으로 풀이된다. 더군다나 디스플레이 패널은 달러로 거래가 이뤄지므로 고용에 효과가 크지 않은 공장보다는 환율정책에 더 신경을 쓰는 편이 낫다고 판단할 수 있다.
애플은 입장이 애매하지만 완제품보다는 핵심부품 생산에 더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 실제로 2013년 7억달러(약 8100억원)을 들여 세계 최대의 인조 사파이어 공장을 만들겠다고 밝힌 적이 있다. 물론 이 프로젝트는 사파이어 양산에 실패하면서 흐지부지 됐고 해당 부지는 데이터센터로 전환됐다. 당시 애플은 이 공장으로 인해 2000개 이상의 일자리가 만들어지고 주요 서플라이체인(공급망)을 미국으로 이전하겠다고도 했다.
결과적으로 애플은 핵심부품 역량이 갖춰질 경우 중국이 아닌 미국에서 얼마든지 아이폰이나 아이패드 등을 만들 의향이 있다고 봐야 한다. 그러나 차세대 아이폰에 쓰일 플렉시블 유기발광다이오드(OLED)와 같은 디스플레이를 비롯해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D램, 낸드플래시, 심지어 배터리에 이르기까지 미국에서 공급받을 수 있는 부품이 별로 없다는 게 문제다.
오히려 트럼프 대통령이 애플을 잘 구슬릴 가능성이 더 크다. 애플은 전방산업의 최상위 포식자다. 흔히 말하는 애플의 가격 혁신은 막강한 구매력이라는 권력을 무자비하게, 그리고 쉴 새 없이 휘두른 결과다. 부품 업체를 사정없이 후려치는 실력은 애플보다 나은 곳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게 업계의 인식이다.
<이수환 기자>shulee@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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