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EL, 태양전지서 시작된 놀라운 발명
* 5월 25일 발행된 오프라인 매거진 <인사이트세미콘> 6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탕 박사는 OLED의 기본 구조를 처음으로 발명한 인물이다. 스마트폰, 태블릿, TV, 스마트워치와 같은 웨어러블 기기에 탑재되는 OLED 디스플레이 패널의 기본 골격은 탕 박사의 작품인 셈이다. 그의 발명은 지금은 미국 코닥에 막대한 특허 수익을 안겨주기도 했다. 탕 박사는 최근 들어 노벨화학상 후보로 심심찮게 이름이 거론되고 있다.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글 한주엽 기자 powerusr@insightsemicon.com
칭왕 탕(Ching W. Tang) 박사의 이야기는 매우 흥미롭다. 탕 박사는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디스플레이의 핵심 기술인 유기EL(Organic Electro Luminescence)의 독특한 동작 구조를 처음으로 발명한 인물이다. 1947년생인 탕 박사는 홍콩 도심에서 멀리 떨어진 북부 시골 마을에서 나고 자랐다. 탕 박사의 고향 마을에는 가난한 이들만이 모여 살았다. 전기가 공급되지 않아 밤이 되면 별빛과 달빛, 촛불에 의존해야만 했다. 그는 어린 시절 자신이 공부했던 어두운 사당을 사진으로 보여주며 “빛과 전기의 관계를 연구하게 된 계기는 어린 시절 그 둘을 갈구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탕 박사는 빛을 전기로, 전기를 빛으로 바꾸는 연구에 평생을 매진한 결과 주요 디스플레이 기업들이 OLED라는 혁신 결과물을 세상에 내놓을 수 있는 결정적 단서를 제공했다.
홍콩에서 고등학교까지 마친 그는 1970년 캐나다 벤쿠버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으로 진학해 화학을 전공한다. 5년 뒤인 1975년에는 미국 뉴욕주 코넬대에서 물리화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그해 이스트만 코닥에 취업했다. 필름 카메라의 대명사인 코닥은 20세기 최고의 기업이었다. 많은 사람들은 코닥 하면 카메라와 필름을 떠올리지만, 이 회사는 매출의 상당 부분을 차세대 기술을 확보하기 위한 연구개발(R&D)에 사용했다. 2000년대 중후반께 무너져가던 코닥이 삼성과 LG에 ‘특허소송’을 무차별적으로 제기할 수 있었던 배경도 바로 이 때문이다.
물리화학이 주 전공이었던 탕 박사는 코닥 입사 후 유기태양전지 개발에 매진했다. 70년대 초 주요 산유국들의 석유 금수조치로 미국은 심각한 에너지난을 겪고 있었다. 미국이 신재생에너지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도 이 영향이 컸다. 탕 박사가 유기태양전지 개발에 성공한다면 시장에 미칠 영향은 상당히 커 보였다. 그는 P-N 접합을 형성하는 독특한 유기박막층 구조의 태양전지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결과물의 성능은 좋지 않았다. 태양빛을 전기 에너지로 변환하는 효율이 1%에 불과했기 때문(현재 일반적 태양전지도 효율이 20%를 넘지 않는다)이다.
우연히 발견한 유기EL
탕 박사는 그러나 이 구조에서 유기물에 전기를 흘리면 빛이 발생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른바 유기물 전기장발광(電氣場發光, electro luminescence, EL)이다. 사실 유기물에 전기를 흘리면 빛이 난다는 것을 처음 발견한 사람은 탕 박사가 아니었다. 1953년 프랑스 낭시 대학교의 A. 베르나노스와 그의 동료들이 셀로판에 흡착된 유기 염료에 전기를 흘리면 EL이 발생한다는 사실을 최초로 확인했다. 10년 뒤인 1963년 뉴욕대의 마틴 포프 연구팀은 수십 마이크로미터 두께의 고체 유기 재료인 안트라센(anthracene)에 400볼트(V) 이상의 고압을 인가, 발광 상태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더 이상의 진전은 없었다. 아무리 높은 전압을 걸어도 충분한 빛을 얻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포프의 연구 이후로 25년간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유기EL의 빛은 꺼져갔다.
1987년 7월 20일. 국제응용물리학회지인 어플라이드 피직스 레터스(Applied Physics Letters)에 탕 박사의 논문이 게재되면서 유기EL은 다시 빛을 내기 시작했다. 논문 주제는 ‘Organic electroluminescent diodes(유기물 전기장발광 다이오드)’. 탕 박사는 매우 얇은 박막 위로 유기 물질을 적층해 10V 이하의 (당시로서는) 낮은 구동 전압에서 ㎡당 1000칸델라(cd)의 발광 광도를 실현할 수 있음을 증명해냈다. 이 논문에 따르면 와트(W)당 1.5루멘(lm), 외부양자효율(External quantum efficiency)은 1%(유기물로 주입된 전자 혹은 정공의 수 대비 외부로 방출된 광자의 비율)였다. 이 같은 전환 효율을 달성한 것은 당시로서는 놀라운 성과였다. 무엇보다 발전 가능성이 무궁무진했다. 재료를 바꾸면 발광효율을 더 높일 수 있는 ‘틀’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탕 박사의 발명은 반도체에서 활용됐던 P-N 접합에 기반을 두고 있다. 그는 유기 층을 음극과 양극 사이에 끼워 넣는 형태로 P-N 접합 구조를 완성시켰다. 양극에 플러스, 음극에 마이너스 직류 전압을 가하면 양극과 유기층의 경계에는 정공(전자가 누락된 홀)이, 음극과 유기층의 경계에는 전자가 발생해 유기층에 주입된다. 유기층에서 정공과 전자가 만나 재결합하면 유기 분자는 여기(勵起, excited) 상태, 즉 불안정 상태로 변하게 된다. 일반적으로 이렇게 흥분한 상태에 있는 분자는 과도한 에너지를 방출해 안정 상태로 돌려가려고 한다. 탕 박사가 발명한 구조에선 과도한 에너지가 가시광선으로 방출되는 것이다.
탕 박사 이전의 연구 결과물은 다층이 아닌, 단층 구조였다. 단층 구조에선 전자와 정공이 만나기 위해 축에서 축까지 쭉 돌아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에너지가 낭비됐다. 즉, 전자 수송층과 정공 수송층을 분리해 광 전환 효율을 높인 것이 탕 박사 발명의 핵심이다. 탕 박사는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별 것 아닐 수도 있으나 당시 나는 이것을 발견하곤 ‘유레카!’를 외쳤다”고 회고했다. ‘유기EL’이라는 단어가 생긴 것도 탕 박사의 논문 게재 이후였다.
이 논문은 지금까지 무려 1만3000회가 넘게 인용이 이뤄졌다. 스마트폰, 태블릿, TV, 스마트워치와 같은 웨어러블 기기에 탑재되는 OLED 디스플레이 패널의 기본 골격은 탕 박사의 작품이다. 탕 박사는 “액정표시장치(LCD)도 좋은 기술이지만 OLED와 비교했을 때 화질, 명암비, 응답속도 면에서 떨어진다”고 말했다. 그는 시중에 OLED 디스플레이 패널을 탑재한 전자제품 출시가 봇물을 이루고 있다며 “OLED는 차세대가 아니라 바로 지금 현재의 기술”이라고 강조했다. OLED TV에 사활을 걸고 있는 LG디스플레이는 2009년 무너져가는 코닥에서 OLED 특허 800여건을 4억달러(약 4300억원)에 일괄 구매했다. 역시 핵심은 앞서 소개한 탕 박사의 발명 특허다.
청색 발광다이오드(LED)를 개발한 일본인 나카무라 슈지는 지난해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다. 탕 박사도 최근 들어 노벨화학상 후보로 심심찮게 이름이 거론되고 있다. 청색 LED와 마찬가지로 OLED의 상업적 성과와 사람들 생활에 미치는 영향은 상당히 크다.
<한주엽 기자>powerusr@insightsemico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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