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천송이 코트 1년, 더 지켜봐야할 핀테크
[디지털데일리 이상일기자] 지난해 3월, 박근혜 대통령 주재로 1차 규제개혁장관회의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박 대통령은 불필요한 규제 때문에 중국인들이 국내 쇼핑몰에서 ‘천송이 코트’를 구입하지 못하고 있다며 규제 혁파를 강하게 주문했다.
이후 1년여간, ‘천송이 코트’는 엄청난 후폭풍을 일으켰다. 금융권은 규제완화와 핀테크라는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외국인들도 국내 온라인 쇼핑을 할 수 있도록 금융당국과 금융사, IT기업이 동시에 움직였다.
우리나라 금융결제 정책 분야에서 이렇게 아귀가 착착 맞아 돌아간 사례는 전무후무할 것이다. 공인인증서 없이도 이제 손쉽게 간편결제를 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뿐만 아니다.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던 인터넷 전문은행 논의가 다시 부상했고 결제대행(PG) 업무의 한도금액 상향조정이 이뤄지는 등 이전 같았으면 꿈도 못 꿀 일들이 현실화됐다.
지난 6일 1차 규제개혁장관회의가 열린지 1년을 조금 넘긴 시점에 청와대에서 제3차 규제개혁장관회의 및 민관합동 규제개혁점검회의가 열렸다. 박 대통령이 자리한 가운데 이례적으로 간편결제 시연회가 열렸다.
민·관합동 전자상거래 규제개선 태스크포스 운영에 따른 제도개선의 결과를 소개하는 자리였는데, 1년 전 박 대통령이 중국인들이 천송이 코트를 사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 것을 의식한 듯 해외에서 중국인이 국내 인터넷쇼핑몰에서 간편결제 가입 및 결제하는 과정이라는 시나리오를 보여줬다.
실제 중국인이 국내 온라인 쇼핑몰에 들어가 30만원 이상의 건강기능 식품을 구매하는 과정이 그려졌다.
군데군데 허점이 있긴 했다. 외국인이 한국어로 된 페이지에서 자유롭게 약관에 동의하고 결제하는 과정은 의구심을 자아낼 만 했다. 하지만 보여주려 한 것은 명백했다. 과거에 비해 결제 과정이 복잡한 본인인증 방법이 단순해졌다는 점이다. 여기까지는 정부와 금융당국의 노력이 어느 정도 성과를 거뒀다는 점에 동의한다.
하지만 박 대통령이 시연회를 보고 난 후 “이제는 외국인이 인터넷에서 확실히 구매할 수 있는지?”를 묻자 담당 국장은 즉답을 하지 못했다.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실제로 아직 은행과 카드사들은 공인인증서를 고수하고 있고 다른 대안을 적용하는데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지 못하다. 자율적인 보안정책 수립이라는 책임있는 자유가 주어졌지만 아직 금융사들은 기존의 인프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있다. 아마도 금융결제 사고에 대한 두려움이 크기 때문일 것이다.
천송이 코트로 촉발된 지난 1년여간의 숨가쁜 여정, 찻잔속의 태풍으로 끝날지 아니면 환골탈태하는 모습으로 거듭날지 앞으로 몇개월이 정말로 중요해졌다.
간편결제의 정착을 위한 금융사고시 책임소재, 비대면 채널인증과 인터넷전문은행 등 핀테크를 향한 민감한 과제들을 둘러싸고 우리 사회가 한 번은 불꽃튀는 논쟁을 거쳐야만 하기때문이다.
다시 옛날로 돌아가기에는 너무 멀리왔고, 앞만보고 그대로 달리기에는 두렵다.
<이상일 기자>2401@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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