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요금인하 조급증?…단통법, 통신관치 수단 되나
- 방통위 ‘지원금 상한 인상’·미래부 ‘요금인하율 확대’…단기 부양 남발 ‘우려’
[디지털데일리 윤상호기자] 정부의 요금인하 조급증이 단말기유통법 취지를 무력화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소비자 후생 증진을 위한 단말기 출고가 인하를 외면한 채 단기 부양에 급급하다는 주장이다.
8일 방송통신위원회는 공시지원금 상한액 인상을 미래창조과학부는 선택요금할인 할인율 확대를 발표했다. 공시지원금 상한액은 30만원에서 33만원으로 선택요금할인 할인율은 12%에서 20%로 조정됐다. 단말기유통법에 따르면 방통위와 미래부는 각각 공시지원금 상한액과 선택요금할인 할인율을 필요에 따라 또는 6개월 마다 조정할 수 있다.
공시지원금은 소비자가 통신사에서 기기를 구매하면서 요금제에 따라 받을 수 있는 보조금이다. 조건을 맞추지 못하면 위약금이 발생한다. 선택요금할인은 공시지원금을 받지 않은 소비자가 일정 기간 해당 통신사 잔류를 조건으로 받는 요금할인이다.
단말기유통법은 작년 10월 시행했다. 정보를 투명화 해 시장 질서를 바로 잡고 유통 구조를 정상화 한다는 취지로 우여곡절 끝에 제정했다. 법 시행 초반임에도 불구 실효성 논란은 사그라지지 않은 상태다.
문제는 이렇다보니 정부가 자연스러운 시장 변화를 기다리지 못하고 제재와 단기 부양책을 남발하고 있는 점이다.
단말기유통법 시행 이후 정부는 3차례에 걸쳐 통신사를 제재했다. 방통위는 작년 11월 아이폰 불법 지원금 지원 혐의로 통신 3사 관련 임원을 고발하고 각각 8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지난 3월12일에는 ‘중고폰 선보상제’가 우회 지원금이라며 통신 3사 총 34억200만원 과징금을 내렸다. 이어 3월26일엔 SK텔레콤이 시장을 흐렸다며 영업정지 7일과 235억원의 과징금을 때렸다. 영업정지 시기는 SK텔레콤의 태도에 따라 정하기로 했다. 통신사가 연초 제시한 가족결합포인트 제공은 방통위 경고로 유명무실화 됐다.
최근 방통위 행보에 대해 통신사 역시 의구심을 표명했다. 시장 예측 불확실성을 높이기 때문이다. 정부가 영업정지 시기로 업체를 옥죄는 것이 과연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되는지 반문했다. 김재홍 방통위 상임위원은 “SK텔레콤 제재를 의결하고도 집행을 무기한 유예시킨 것은 방통위가 독립적이고 자율적 기구인지 의심하게 한다”라고 꼬집었다.
지원금 상한 역시 도마 위에 올랐다. 지원금을 올리면 그만큼 출고가 인하 동력은 떨어진다. 제조사는 출고가를 높여 매출을 확대하는 것을 선호한다. 지원금은 덜 줄 수도 있는 여지가 있어 비용 유연성이 높지만 출고가를 내리면 일괄적으로 매출이 떨어진다. 소비자 입장에선 시기에 따라 조정되는 지원금보다 출고가 인하가 유리하다. 지원금은 위약금도 있다.
통신사 관계자는 “지원금 재원은 통신사와 제조사가 같이 마련하며 판매 전략에 따라 조정이 된다”라며 “가계통신비 인하라는 단말기유통법 취지가 살려면 지원금 인상보다는 출고가 인하가 적절하다. 사실 같은 값이면 지원금이 높은 것보다 출고가가 낮은 것이 소비자에게 이익”라고 설명했다.
미래부의 20% 요금할인 확대 역시 정부 정책 목표 달성을 위해 한 쪽의 업계에 희생을 강요하는 방법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요금인하를 싫어할 이용자는 없다. 그러나 이것이 국가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결정하는 것이 정부 역할이다. 통신사 실적 악화는 국내 정보통신기술(ICT) 업계 전반에 악영향이다. 이번 결정은 이번 주, 즉 불과 지난 3일 동안 구체화 된 것으로 전해졌다.
김 상임위원은 “요금할인율을 12%에서 20%로 잡자기 올릴 경우 기존 가입자 등 절대 다수의 이용자 차별이 발생하고 무리한 단기적 경기 부양책은 3~4년 뒤의 국민 경제에 부담을 전가시키는 것”이라며 “정부가 국민에게 선심을 쓰는 것처럼 보이는 전시행정이며 4월 보궐선거와 내년 총선을 향한 전략적 대책”이라고 우려했다.
한편 정부는 이 같은 비판을 일축했다. 방통위 최성준 위원장은 “논리적 근거가 있건 없건 국민 입장은 단말기를 저렴하게 구매했으면 좋겠다는 것이고 출고가 인하든 지원금 상향이든 구입가가 낮아지는 효과가 있다”라며 “방통위는 지원금을 상한하는 것뿐이고 운영은 통신사와 제조사가 하는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윤상호 기자>crow@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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