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만남’이었나…넥슨-엔씨, 경영권 분쟁 되짚어보니
- EA 인수·경영 위한 8000억원 지분거래, 경영권 분쟁 씨앗돼
- 넥슨, 엔씨소프트 이사진에 ‘자기편’ 심을 듯
[디지털데일리 이대호기자]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으로’ 넥슨과 엔씨소프트 간 경영권 분쟁이 촉발되자 게임업계에서 김정주 엔엑스씨(넥슨 지주사) 대표와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를 두고 이르는 말이다.
두 사람은 지난 2012년 6월 ‘글로벌 진출’을 앞세워 통 큰 베팅을 결정했다. 김택진 대표가 8000억원 규모의 개인 지분을 넥슨에 매각한 것이다. 엔씨소프트 지분 14.7%를 확보한 넥슨은 단번에 최대주주 자리에 올랐다.
업계에 따르면 두 사람은 대표적 서구권 게임기업인 일렉트로닉아츠(EA)의 인수와 동시에 대표이사 자리를 노렸다. 김정주 대표가 현재 넥슨 일본법인 대표인 오웬 마호니 전 EA 수석 부사장을 포섭하고 이사진을 설득하는 등의 밑그림을 그렸다. 그때 넥슨은 일본 상장으로 두둑한 실탄을 확보하고 있었다. 김택진 대표가 EA 대표직에 오르기로 합의를 보고 넥슨에 최대주주 자리를 내줬다. 엔씨소프트는 당시 경영권도 보장받았다는 설명이다. 두 사람 사이에 믿음이 있었기에 가능한 거래였다.
그러나 두 대표의 바람과 달리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EA 내 실권을 잡고 있던 일부 이사진의 반대에 부딪혀 최종 문턱에서 낙마한 것이다. 당시 동양인에게 EA의 대표직을 내 줄 수 없다는 백인 순혈주의가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당시 의기투합했던 두 사람은 결과적으로 ‘잘못된 만남’을 한 셈이 됐다. 김택진 대표와 엔씨소프트 입장에선 ‘대업’을 위해 손잡았던 것이 경영권 분쟁의 화근이 됐기 때문이다. 그 당시 증권가에서도 경영권 분쟁의 우려가 있다고 내다봤다.
이와 관련해 엔씨소프트 관계자는 “2012년 지분 매각 당시 주당 26만원이 넘는 지분을 25만원에 넘겼다. 경영권 프리미엄도 받지 않았다”며 “신의가 있었고 대의를 위해 지분을 넘긴 것 아니냐. 그런데 넥슨이 이제 경영 참여를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서 “경영에 참여하려면 애초 경영권 프리미엄을 주고 지분을 확보하는 게 맞지 않나. 이제 두 업체 간에 신의는 사라졌다”며 불편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넥슨도 할 말은 있다. 돈이 오간 사실관계만 놓고 보면 무려 8000억원을 투자했는데 지금까지 이렇다 할 시너지 효과를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넥슨 측은 “지난 2년 반 동안 엔씨소프트와 공동 개발 등 다양한 협업을 시도했으나 기존의 협업 구조로는 급변하는 IT업계의 변화 속도에 민첩히 대응하기에 한계가 있어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고 입장을 밝혔다.
두 대표는 EA 대표이사 자리를 놓친 뒤 여러 투자처를 물색한 것으로 전해지나 실제 행동으로는 옮기지 못했다. 이후 추진한 두 회사 간의 개발 협업은 업계 주목을 받았으나 사내 문화가 이질적인 탓에 ‘물과 기름’처럼 겉돌다 결국 실패로 돌아갔다. 그렇게 2년 6개월여의 시간이 흘렀다.
이처럼 두 회사 간 경영권 분쟁의 씨앗은 8000억원 지분거래 때 뿌려졌다. 이것이 본격화된 계기는 개발 협업이 어그러진 뒤부터다. 이때부터 넥슨과 엔씨소프트의 관계가 심상치 않게 돌아간다.
엔씨소프트 측은 “그동안 넥슨이 여러 차례 사내 이사진 자리를 요구했다”고 밝혔다. 그때마다 “경영 참여는 안 된다고 선을 그었다”는 게 엔씨 주장이다.
그러나 넥슨은 그런 일이 없었다는 입장이다. 최현우 넥슨 기업홍보실 실장은 “사내 이사진 자리를 요구하지 않았다. 협업을 요구했을 뿐”이라며 “그런데 엔씨소프트가 협업할 의사가 없음을 밝혔다”고 말했다.
다만 넥슨은 엔씨소프트에 요구한 협업이 정확히 무엇을 뜻하는지 밝히지 않았다. 이를 감안하면 엔씨소프트의 주장에 좀 더 힘이 실린다.
업계에선 넥슨이 지난 27일 엔씨소프트 지분보유 목적을 경영 참여로 변경한 이후 첫 행보에 대해 엔씨소프트 이사진에 ‘자기편’을 심을 것으로 보고 있다. 김택진 대표의 연임을 막을 수 있겠지만 ‘엔씨소프트=김택진’이라는 등식이 성립하는 상황에서 인력 이탈과 내부 반발 등으로 잃는 것이 많다는 지적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넥슨 입장에선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엔씨소프트 경영에 참여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대호 기자>ldhdd@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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