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구조개편 속도내는 삼성…그러나 냉정해진 시선
[디지털데일리 박기록기자] 100일이 넘는 이건희 회장의 경영부재 우려속에서도 삼성그룹의 사업구조 재편은 전혀 속도감이 줄지 않고 순항하고 있다.
오히려 삼성은 3일 기자 브리핑을 통해 ‘최근 진행된 삼성그룹 계열사의 상장과 합병 등은 이미 올해 초에 결정이 된 내용’이라고 밝혔다. 지난 5월 이 회장이 쓰러진 이후 발표된 삼성SDS의 상장계획,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과의 합병 등 일련의 그룹 사업구조 개편과정이 모두 예정된 수순이었음을 강조한 것. 시장을 향해 ‘이건희 회장이 부재한 상황이지만 삼성의 사업구조 개편과정에 대해 불안함을 가질 필요가 없다’는 메시지를 투자자들에게 다시 한번 던진 것이다.
앞서 지난 1일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의 합병결정 발표가 나자 시장은 술렁거렸다. 기존 삼성물산을 중심으로 한 건설 부문의 통폐합 시나리오가 예상을 깨고 삼성중공업-삼성엔지니어링 합병으로 결정이 났기 때문이다. 더욱이 삼성중공업의 대주주(17.61%)가 삼성전자라는 점을 들어 이재용 부회장이 전자/소재, 금융외에 건설 부문까지 영역을 포괄하게 될 것이라는 새로운 전망이 자연스럽게 뒤따랐다.
최근 삼성그룹의 사업구조 개편 과정이 막바지에 이르면서‘삼성전자 중심으로 쏠리는 그룹내 역학구도 변화’와 ‘이재용 부회장의 위상 강화’기조가 두드러지고 있다.
결국 삼성측 얘기대로라면 이같은 기조는 예정된 수순이고, 이는 또 결과적으로 이 회장의 의중이라는 뜻도 된다.
◆합병발표에도 주가는 약세, 냉정해진 시장 = 하지만 이같은 삼성측의 역동적인 사업구조 개편 과정이 차질없이 진행되고 있는 것과는 별개로, 최근 시장에선 합병 대상업체들에 대한 냉정한 평가가 내려지고 있다.
지난해 12월과 올해초, 삼성전자, 삼성물산, 호텔신라 등 삼성그룹내 사업구조 개편 주도주로 꼽혔던 업체들의 주가가 차별화된 강세를 나타낸것과는 분명히 대조적인 현상이다.
합병발표 하루 뒤인 지난 2일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의 주가는 각각 전일대비 3.45%, 2.78% 하락했다. 합병호재가 불과 하룻만에 식어버린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양사 합병에 대한 증권사들의 부정적인 분석이 한 몫했다. 증권업계 일각에선 육상 및 해상 플랜트 사업부문에서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 두 회사가 각각 강점을 가지고 있고, 시너지도 기대할 수 있겠지만 업황 자체가 어렵기 때문에 당장 실질적으로 기업가치와 실적개선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또한 지난해 실적부진의 여파로 두 회사의 재무구조가 악화된 것도 약점으로 꼽았다.
시장의 반응이 이처럼 냉정해진 또 다른 이유로 기업 합병의 본질적인 가치는 점차 약화되고 3세 경영승계 마무리에 초점을 맞춘 듯한 인상을 주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실제로 증권가에선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의 주가가 하룻만에 약세를 보이는 이유중의 하나로 ‘합병의 당위성과 시너지 효과에 대한 설명이 미흡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무언가 쫓기는 듯한 인상을 줬다는 얘기다.
앞서 지난 7월15일 , 제일모직 소재부문을 합병한 삼성SDI도 의욕적인 출발과는 달리 합병이후 주가는 계속 약세를 보이고 있다. 주가는 2개월여만에 17만원대에서 15만원대로 하락했다. 물론 합병으로 삼성SDI의 신주 2321만주가 발행가 15만1762원으로 추가 상장되면서 주가가 단기적으로 충격을 받은 이유도 있지만 삼성SDI의 매출구조상 삼성전자의 실적개선이 중요하다는 점에서 여전히 시장은 신중한 반응이다. 현대증권은 2일 분석보고서를 통해 삼성SDI의 3분기 영업이익이 전분기대비 158% 증가한 773억원으로 추정된다고 전망했다.
◆실적부진 삼성전자에 더 큰 관심 = 한편 최근 불거진 삼성전자 위기론도 시장의 냉정해진 시선을 가져온 원인중 하나로 꼽힌다. 시장의 관심사는 그룹의 행보보다는 삼성전자의 주가에 더 민감하게 맞춰지고 있다.
삼성전자 주가는 2년여만에 120만원대가 깨졌다. 지난 2일 삼성전자는 전일대비 2.61% 떨어진 119만4000원에 거래를 마쳤다. 3일에도 전날보다 0.42%) 내린 118만9000원에 마감됐다. 삼성그룹 차원의 역량이 삼성전자에 모이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는 역설적인 상황이다. 증권업계가 내놓는 올해 3분기 삼성전자의 영업이익 전망치는 6조~7원대 수준인데, 이는 지난해 3분기(10조1636억원)에 크게 못미친다.
이와관련 삼성에 정통한 한 전문가는 “삼성그룹내에서 차지하는 위상과 실질적인 영향력을 고려했을 때 삼성전자의 상황이 그룹 전체의 분위기를 크게 좌우한다”고 말했다. 삼성전자의 위기론이 존재하는 상황에선 삼성그룹 사업구조 개편도 시장에서 정당한 가치를 평가받지 못하고 묻힐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앞서 2일에는 삼성전자가 삼성메디슨을 흡수합병하게 될 것이란 소식이 나돌면서 삼성메디슨의 장외주가가 10%이상 폭락했다. 일반적으로 삼성전자의 합병대상으로 거론되면 해당 기업의 주가에 호재로 작용하지만 시장의 심리는 이와 정반대로 움직였다.
삼성메디슨이 지난 2011년 삼성에 인수됐지만 이후 뚜렷한 경영성과를 거두지 못한 상황이기 때문에 삼성전자에 흡수될 경우 삼성전자가 제대로 된 기업가치를 인정해주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작용한 것이다. 따지고보면 이같은 상황도 넓게는 삼성전자의 위기론에서 출발했다고 볼 수 있다.
삼성그룹 사업구조 개편과 관련한 시장의 시선을 우호적으로 돌리는 것은 결국 삼성전자의 향후 행보에 달려있다는 의미가 된다.
<박기록 기자>rock@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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