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한미FTA, 한국판 특허괴물 만들었나
[디지털데일리 심재석기자] 특허괴물(patent troll)이라는 말이 있다. 직접적인 연구개발은 하지 않고 개인이나 기업으로부터 특허 및 지적재산권을 매입해 이를 토대로 로열티 수입을 챙기는 회사를 일컫는 말이다. 특허괴물은 특히 지적재산권 침해 소송을 무기로 다른 기업들을 압박하는 것이 특징이다.
특허괴물은 주로 미국에 근거지를 두고 있다. 특허법이나 저작권법 등 미국의 지적재산권 관련법이 권리자를 강력하게 보호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법이 권리자를 보호하는 이유는 기술혁신을 가속하기 위한 것이다. 특허 권리자가 우대 받을수록 특허를 획득하기 위한 산업계의 노력도 가속화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특허괴물은 이 같은 취지를 역으로 이용한다. 이들은 산업의 혁신을 가속하기는커녕 다른 혁신 기업에 위협적인 존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들을 ‘괴물’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문제는 한미FTA로 우리의 지적재산권 법제도가 미국식으로 변경됐다는 점이다. 미국에서나 볼 수 있었던 특허괴물이 국내에서도 등장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된 것이다.
지난 1~2년 기업들을 소프트웨어 저작권 침해 공포에 빠뜨렸던 오픈캡쳐 사태는 이 같은 우려가 현실화 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오픈캡처는 지난 2003년 개발된 무료 화면저장 프로그램으로, 약 500만명이 사용하는 캡쳐 프로그램 중 하나였다. 문제는 오픈캡쳐가 지난 2012년 엣지소프트라는 낯선 회사에 인수되면서 불거지기 시작했다. 인수된 이후 국내에서 아이에스디케이(ISDK)라는 회사가 오픈캡쳐를 판매 중인데, 그 모습이 특허괴물과 유사한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아이에스디케이는 누구나 무료로 사용할 수 있었던 오픈캡쳐의 라이선스를 유료(기업)로 바꾸고, 44만9000원이라는 가격을 책정했다. 전세계에서 가장 비싼 캡쳐 프로그램의 10배 정도 되는 가격이다.
비상식적인 가격책정은 이 회사가 제품을 정상적인 방법으로 판매할 의지가 없음을 보여준다. 실제로 아이에스디케이는 오픈캡쳐를 인수한 이후 기업, 공공기관, 학교, 병원 등을 대상으로 저작권 침해를 주장하며 합의금을 요구하고 있다. 유료 프로그램으로 전환된 것을 몰랐던 기업들은 어느 날 갑자기 불법 소프트웨어 사용자가 됐다. 분노한 기업들은 아이에스디케이를 상대로 집단소송에 나서기도 했다.
정상적인 기술 기업들도 한미FTA 이후 특허 및 저작권에 대한 태도가 강경하게 변했다. 예를 들어 한국마이크로소프트의 경우 지난 해 말 전국의 어린이집에 저작권 준수를 요구하는 내용증명을 보냈다. 현재 대부분의 어린이집은 PC 한두 대에 불과한 상황이다. 이전까지는 이런 영세한 조직까지는 MS가 단속의 손길을 뻗지 않았었는데, 최근 들어 강경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물론 법을 지키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법이 특정 기업의 비즈니스 모델로 악용되는 것은 곤란하다. 특허괴물과 외국계 기업만 배 불리는 결과만 초래할 수 있다.
<심재석 기자>sjs@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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