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데일리 이수환기자] 일본은 일찌감치 로봇 관련 산업이 발달했다. 지금은 단종됐지만 애완로봇 아이보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점을 떠올리면 전 세계 2위 규모의 로봇청소기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는 것이 이해가 간다.
집안 내부가 협소하기로 유명한 일본에서 로봇청소기가 널리 사용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 첫 번째는 고령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있어 로봇청소기와 같은 가사도우미가 주목을 받고 있다는 점, 두 번째는 청소와 같은 반복적인 행동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시간을 가지고 싶다는 욕구가 꼽힌다.
실제로 도시바가 2011년 3월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로봇청소기를 구입한 40% 이상의 소비자가 ‘청소에 소비하는 시간을 자신만을 위한 시간으로 바꿀 수 있다’는 이유를 구매 근거로 꼽았을 정도다.
흥미로운 점은 이처럼 일본에서 로봇청소기가 높은 관심을 받고 있지만 정작 일본 업체는 별 다른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예컨대 미국의 아이로봇이 압도적인 판매량으로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오죽하면 2011년 아이로봇 ‘룸바’ 로봇청소기 판매량이 치와와나 토이 푸들과 같은 애완견보다 더 높았을 정도다.
주목할만한 부분은 아이로봇 이외의 로봇청소를 판매하고 있는 도시바와 샤프전자가 모두 한국 업체에서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으로 제품을 공급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도시바 ‘스마보’와 샤프전자 ‘코코로보’는 모두 삼성전자가 만든 것이다. LG전자처럼 생활가전 제품을 일본에서 판매하지 않는 삼성전자가 OEM에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이는 모습은 이채롭기까지 하다.
작년에는 국내 중견기업인 모뉴엘도 일본 로봇청소기 시장에 출사표를 던졌다. 요도바시카메라, 빅카메라 등 주요 오프라인 매장에 진출해 있는 만큼 장기적으로 공략을 이어간다면 의미 있는 성과가 기대된다. 따지고 보면 일본 로봇청소기 시장에서 우리나라 업체가 적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고 시장을 낙관하기도 어렵다. 지금은 잘 나가는 아이로봇이지만 출시 초기부터 제대로 자리를 잡기까지 5년 이상이 걸렸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로봇청소기가 주는 편리성만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사랑스럽다’, ‘귀엽다’, ‘똑똑하다’ 등 의인화에 가까운 이미지를 심어주면서 판매량이 늘어났다는 점이 핵심이다.
이는 이른바 ‘모에화’, 그러니까 다양한 대상을 사람들의 호감을 얻을 수 있는 형태로 의인화 시킨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충분히 공감을 얻도록 다각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흔히 일본 시장을 두고 갈라파고스라 부른다. 그만큼 폐쇄적이라는 의미지만 이곳에서도 진화는 피할 수 없는 과정이다. 로봇청소기 시장을 오랫동안 해외 업체에 내주고 있다는 점에서 일본 생활가전 시장 공략의 해법을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