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사무소 민후 김경환 변호사] 2012년 9월경, 지아이조2 및 다이하드로 널리 알려진 미국 액션 배우 브루스 윌리스가 애플의 아이튠즈(iTunes)의 음원정책에 반발해 소송을 준비 중이라는 뉴스가 있었다.
아이튠즈의 음원 정책은 아이튠즈에서 구입한 음원은 상속 또는 양도가 허용되지 않는다는 것인데 이에 반발한 브루스 윌리스가 자신의 딸들에게 아이튠즈에서 구입한 음원을 상속시키기 위한 소송을 준비 중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사건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됐다. 하나의 해프닝으로 마무리되긴 했지만 이 사건은 사람들에게 디지털 자산(digital assets)의 상속(heritage)에 대한 관심을 갖게 하는 데에 기여를 했다.
사실상 우리는 상당한 시간을 인터넷에 걸쳐 놓고 생활하면서, 대부분을 내 것이 아닌 포털 등이 소유하는 공간에 남겨 두면서도, 그러한 현상의 사후적인 문제점에 대해 제대로 인식을 못하고 있다.
예컨대 네이버가 운영하는 블로그에 수천만원대의 예술적 가치가 있는 인터넷 소설을 창조했고, 아이튠즈에서 수백만원대의 음원을 구입했으며, 리니지 게임 중에 수천만원대의 아이템을 취득·사용했고, 다음 카페에 쇼핑몰을 열어 수천만원대의 사진작품을 올려놓았으며, 아마존에서 수백만원 어치의 전자서적을 구입한 어떤 사람.
수천만원대의 디지털 자산이 있는 이 사람은 본인이 교통사고로 갑자기 사망한다면, 자신이 이루어놓은 인터넷 소설, 아이튠즈 음원, 리니지 게임의 아이템, 쇼핑몰 사진들, 전자서적들의 운명이 어떻게 될까하는 생각을 하지 못할 수 있다.
사망자의 자식들은 이런 것들을 물려받을 수 있을까? 해프닝으로 판명나긴 했지만 만일 사실이었다면, 브루스 윌리스도 그러한 고민을 하지 않았을까?
현행 우리법으로는 디지털 유산의 상속이 보장되지는 않는바, 선대의 디지털 자산은 상속인에게도 공개되지 않고 사망이 확인되는 즉시 삭제되고 있다. 이는 현행법의 잘못이 아니라, 법이 새로운 IT 현상을 따라가지 못한 것이다.
현재의 상속법, 정보통신망법, 통신비밀보호법 등이 어찌됐건 먼저 떠난 사람을 추모하기 위해 고인이 남긴 흔적을 보고 싶다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까지도 애써 외면하는 것은 너무나 비인간적이며, 커가는 디지털 자산의 비중을 고려하지 않고 현재의 법에 맞추어 상속이 돼서는 안된다고 주장하는 것은 시대의 흐름을 역행한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과거 조상들의 노력과 유산을 물려받지 못하고 당대에 새롭게 뭔가를 시작해야만 하는 사회는, 현실적인 경쟁에서, 그렇지 않은 사회에 뒤질 수밖에 없다. 정보의 가치를 목놓아 외치면서도, 선대가 쌓아놓은 정보와는 단절돼야 한다는 것은 일관성이 없는 태도이다.
2011년 9월경, 맥아피(McAfee)사는 전세계적으로 한 사람당 2777개의 디지털 파일을 가지고 있고 자신의 디지털 자산에 대해 3만7438 달러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며, 특히 미국인들은 자신들의 디지털 자산이 5만5000 달러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는 연구 결과를 내 놓았다. 일본인들은 2만3938 달러, 유럽인들은 2만8461 달러로 자신들의 디지털 자산을 평가했다.
더불어 BMO 리타이먼트 인스티튜트(BMO Retirement institute)의 연구결과에 의하면, 디지털 자산을 가진 45세 이상의 사람들 중 절반 이상이 디지털 자산에 대한 계획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답변했다고 한다.
이러한 경향은 그대로 법으로 나타나고 있다. 독일, 미국의 6개주(2005년 코네티컷주, 2007년 로드아일랜드주·인디애나주, 2010년 오클라호마주, 2011년 아이다호주, 2013년 버지니아주)는 이미 디지털 유산의 상속에 대해 법으로 보장하고 있고, 미국의 17개 이상의 주는 현재 입법화 과정에 있다.
최근 우리나라 제19대 국회는 18대 국회에서 논의됐다가 폐기된 디지털 유산(또는 디지털 유품)의 상속에 대해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을 다시 준비 중이라고 한다. 좋은 징조이다.
디지털 유산에 대한 유언이 법적으로 인정되고, 디지털 유산의 상속이 인정되며, 나아가 무능력자나 의사불명인 자의 디지털 유산에 대한 위탁 관리까지도 법으로 보장되는 것이 언젠가는 디지털 선진국의 필수 요소가 될 것이다.
다만, 디지털 유산에 대한 상속을 인정하는 과정에서 주의할 점이 있다.
첫째, 디지털 유산의 상속을 인정한다고 해 아무런 장치 없이 사망자의 계정을 상속인이 그대로 사용하게끔 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 마치 사망자가 활동을 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디지털 유산은 디지털 계정과 디지털 자산으로 이루어지는데, 디지털 유산의 상속은 사망자의 계정을 상속인이 마음대로 이용할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고, 상속인이 사망자의 디지털 자산에 대해 접근할 수 있다는 취지이다.
이 취지를 반영하려면, 예컨대 상속인 등이 사망자의 계정으로 접속하는 것을 허용하되 사망자 아이디나 사이트 등에 사망자 표시를 붙이거나, 상속인 등에게 사망자의 권한과 동일한 별도의 접근 권한만을 부여하고 사망자의 계정 자체로는 접속하지 못하게 하는 조치 등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사망자의 프라이버시나 사망자의 의사를 존중해야 한다. 일정한 디지털 자산 및 디지털 계정에 관해 노출을 꺼리는 사망자의 의사를 우선시하는 것이 필요하고, 나아가 특정 상속인 등에 대해 자신의 디지털 자산 및 디지털 계정을 남기고자 하는 사망자의 의사가 있을 경우 이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
셋째, 이해관계인의 이익을 고려해야 한다. 예컨대 거래 약관상 구입한 디지털 자산이 상속될 수 없다고 규정돼 있고 그 약관이 정당한 경우, 사망자의 디지털 자산에 대해 제3자가 법적 권리를 가지고 있어 상속인이 디지털 자산을 그대로 물려받을 수 없는 경우 등이 있다.
상속권은 절대적인 권리가 아니듯, 디지털 유산의 상속도 절대적일 수 없다. 다른 이해관계인의 이익까지 침해하는 경우 당연히 상속은 제한될 수 있다.
넷째, 포털의 부담이나 포털에 미칠 파장도 고려해야 한다. 예컨대 포털에게 과도한 정보 저장을 의무화하는 것, 포털에게 사망이나 상속인 확인에 대해 과도한 의무를 부과하는 것, 포털의 기술상 정책이나 방향을 무시하고 일방적이고 과도한 의무를 부과하는 것은 지양돼야 한다.
법령에서 포털의 의무를 상세하게 부과하는 것보다는, 대원칙을 규정하고 상세한 절차는 포털에게 맡기는 것이 바람직하고, 사망이나 상속인 확인은 기본적으로 상속인이 부담하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
개인적으로, 포털 자산의 핵심과 포털 가치평가의 기준이, 포털의 가입자들이 올려놓은 정보의 양이라면, 디지털 자산 상속이 반드시 포털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만은 아닐 것이라고 본다.
디지털 자산의 상속 또는 관리 등의 법적 문제가 현실화될 날이 멀지 않은 것 같다. 선진국에서 레거시로커(Legacy Locker), 데쓰위치(Deathswitch), 어셋록(AssetLock), 시큐어세이프(SecureSafe) 등의 디지털 유산 위탁 관리업체가 성업 중인 것만 보아도 이를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우리도 서서히 준비해야 할 때가 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