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게 보면, 설계와 판매만 수행하는 팹리스(Fabless), 셀 레이아웃을 그리고 검증하는 디자인 하우스, 회로 형상을 웨이퍼에 이식할 때 쓰는 마스크 생산 업체, 위탁생산을 맡는 파운드리, 패키징, 테스트 업체 등으로 나뉜다.
삼성전자나 인텔처럼 이러한 인프라를 모두 갖춘 종합반도체(IDM) 업체도 있긴 하다. 그러나 최신 반도체 생산 공장을 하나 짓는데 드는 비용이 수조원이고, 이 같은 설비 투자액도 장비 가격 상승으로 점차 증가하고 있는 추세여서 IDM의 수는 더 이상 늘어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최근에는 텍사스인스트루먼트처럼 고정비를 축소하기 위해 기존 공장을 처분하고 파운드리 의존도를 늘리는 ‘팹라이트’ 경향도 짙어지고 있다.
팹리스-파운드리로 대표되는 분업 모델은 분명 비용 효율적이다. 하지만 신생 벤처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팹리스 업체가 칩을 설계해 시제품을 만들고, 영업을 해서 첫 매출을 내는 데에는 통상 1년 6개월에서 2년 정도의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고 한다. 문제는 초기 투입 비용이다. 65나노미터 제조 공정에서 시제품 20~30개를 뽑아내는 데 드는 비용(마스크 생산, 파운드리 서비스, 패키징, 테스트 등)은 약 10억원, 최신 공정인 45나노미터라면 약 20억원을 투입해야 한다. 판매가 담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시제품 하나 만드는 데 이 정도 비용을 투입해야 하기 때문에 누구도 이 산업에 쉽게 뛰어들지 못하고 있다. 시제품이 없으면 투자를 받기도 쉽지 않다.
많은 비용이 드는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생산 비용을 낮추기 위한 ‘규모의 경제’가 실현돼 있기 때문이다. 200mm, 300mm가 아니라 50mm, 25mm 웨이퍼 생산시설이 있다면, 시제품을 뽑아내는 데 드는 비용과 시간을 그만큼 절약할 수 있다. 좋은 아이디어를 적은 비용으로 구체화시킬 수 있다면, 경쟁력을 가진 젊은 벤처기업도 연이어 설립될 것이다. 그렇다면, 소위 말하는 ‘혁신’이 이뤄질 가능성도 높다. 반도체 분야의 ‘카카오’가 나오지 말란 법 없지 않은가.
물론 이러한 생산시설을 갖추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장비와 재료 등 각 분야 업체들이 ‘최소 규모’의 공장을 위해 머리를 맞대고 연구개발(R&D)에 돈을 써야 한다. 창조경제를 외치는 정부가 나서준다면 좋을 것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최근 “중국 연구소에서 삼성을 연구하는 TF팀까지 있더라”고 말했다. 이 부회장의 발언에서 삼성전자를 벤치마킹하며 빠르게 쫓아오는 중국에 대한 경계심 혹은 혁신을 향한 갈구 같은 것을 느꼈다. 한 해 매출이 200조원이 넘는 삼성전자라면 이러한 ‘최소 규모’ 반도체 공장 건설 프로젝트를 주도적으로 추진할 수 있을 것이다. 젊은 반도체 벤처가 클 수 있는 토양을 마련하고, 혁신 열매를 나눠먹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