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금융IT 투자 키워드…‘스마트금융 보단 비용절감’
은행장들의 신년사를 자세히 읽어보면 그 해 금융권의 전체적인 IT투자 분위기를 대략 유추할 수 있습니다.
신년사라는 게 그냥 언뜻보면 그 말이 그 말같고, 다 좋은 말만 열거해놓은 것 같지만 은행장들이 아무 의미없이 미사여구로만 신년사를 채우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사용하는 어휘 하나 하나에 놀라울 정도로 많은 복선을 깔고 있습니다.
올해 주요 은행장들의 신년사에서는 예년과는 다른 몇가지 특징들이 나타납니다. 가장 주목할만한 키워드는 ‘리스크관리’입니다. 내실위주의 경영을 통해 위기를 넘기자는 것이죠. 올해 금융시장의 환경이 심각한 수준이라고 판단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 은행권은 1000조원에 육박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 가계부채를 비롯해 부동산 침체에 따른 하우스푸어의 문제에 직접적으로 노출돼 있고 넓게는 우리 경제의 저성장, 저금리 기조하에서의 구조적인 수익성 악화 문제에 직면해 있습니다.
반면 올해 신년사에서는 모바일, 스마트금융(Smart Banking)과 같은 공격적인 어휘는 예년에 비해 크게 줄어든 것이 주목됩니다.
이와함께 예년 은행장 신년사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던 사회공헌, 사회적 책임, 경제민주화와 같은 어휘가 올해는 눈에 뜨입니다. 아무래도 오는 2월말 박근혜 정부 출범을 앞두고 있어 여기에 은행권이 정서적인 눈높이를 맞추기 위한 노력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는 금융권 IT투자 분위기에는 다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습니다.
◆스마트금융 보다는 비용절감에 무게…현실적인 선택 = 조준희 IBK기업은행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시간이 걸리더라도 새로운 수익원을 계속 발굴하고 전혀 다른 사업 분야와도 과감하게 융합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지만 한편으론 “고객 마케팅을 제외한 모든 부문에서 비용을 줄여야 한다”고 주문했습니다.
새 수익원 창출과 비용절감, 현실적으로 동시에 달성하기 어려운 과제입니다. 하지만 국내 은행권 대부분 이같은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기 위한 목표치를 설정해 놓고 있습니다. 특히 비용절감 기조는 은행의 전체적인 IT투자 기조에도 많은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습니다.
이와관련 한 시중은행 IT 기획팀 관계자는 “지난 2~3년간 스마트금융 구현을 위한 투자가 상대적으로 활발하게 전개됐고, 올해도 물론 이 부분에 대한 투자가 지속적으로 이어지겠지만 전체적인 맥락에서 보면 IT비용을 절감하는 쪽이 현실적인 선택”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금융 IT업계 전문가들은 비용절감 기조로 인해 올해 은행권의 연간 IT투자 예산의 집행율이 예년 평균보다 5%~10%정도 낮아진 60%선에 그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은행권은 연례적으로 집행해온 ATM(금융자동화기기), 서버및 스토리지의 증설 등 IT장비의 구매및 도입시기를 적절하게 보류 또는 연기할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지난 2008년말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하자 국내 금융권의 IT예산 집행율은 50%선으로 뚝 떨어졌었습니다. 다행히 이후 모바일, 스마트금융 붐이 일면서 비교적 빠르게 IT투자 분위기가 호전됐습니다.
지금의 상황은 그때와 다르지만 IT투자를 견인할만한 요소들이 잡히지 않고 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현재 우려되는 것은 스마트금융과 관련한 혁신적인 SI(시스템통합)사업들이 축소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실제로 기업은행 포스트 차세대, 경남은행 차세대 등 이미 알려진 사업외에는 주목할만한 은행권의 SI사업들이 예년에 비해 별로 눈에 띠지 않습니다.
한편 민병덕 국민은행장은 올해 신년사에서“온 오프라인 채널 연계를 통한 비대면채널의 영업력 강화에 나서달라”고 주문했습니다. 비대면채널은 스마트 브랜치와 같은 저비용 고효율 구조의 채널전략을 강화하겠다는 것입니다. 이 역시 넓게보면 비용절감에 방점을 둔 것으로 해석됩니다.
◆금융권 IT투자위축 예상 = 결론적으로 말하면, 비용절감 기조가 우세한 상황에서 올해 은행권의 IT투자 비용을 예측하는 것은 크게 의미가 없어 보입니다. 사업 추진의 불확실성이 커지기 때문입니다.
금융권및 금융IT업계 전문가들은 올해 금융권의 IT예산 수준이 지난해와 비교해 같거나 10% 정도 축소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국민은행의 경우, 올해 2500억원 수준의 IT예산을 예상하고 있습니다. 이는 지난해 2700억원에 비해 약 10% 정도 축소된 수준입니다. 은행측은 “일상적인 IT증설외에 대규모 사업비를 투입할만한 사업이 없다”는 입장입니다. 올해 상반기 대규모 사업으로 진행될 IPT 사업의 경우도 국민은행의 자체 IT 투자비가 대폭 투입되기보다는 사업에 참여하는 통신사들이 일종의 기부채납 형식으로 관련 IT인프라를 선투자를 하는 조건입니다.
이와함께 자본예산을 기준으로 우리은행이 2700억원, 하나은행이 1000억원 수준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포스트 차세대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기업은행은 2000억원 수준으로 비교적 적극적인 예산을 편성할 것으로 분석됩니다.
◆은행권의 사회공헌, 그러나 IT투자에는 악영향? = 지난해 감사원 감사결과, 한 시중은행은 고졸자에게 차별금리를 적용한 것으로 드러나 큰 충격을 던진 바 있습니다. 또 다른 시중은행은 대출서류를 조작해 고객을 기만한 행위가 적발되기도 했습니다. 이 사태 이후 금융권을 보는 시각이 싸늘해졌습니다.
은행도 물론 기업이기 때문에 수익을 극대화하는 것이 당연합니다만 어쨌든 최근의 분위기는 의 올해 신년사에도 나타나듯이 기존과는 많이 다릅니다. 은행권이 수익만을 좇는 모습보다는 수익을 가급적 적절하게 관리하는 노력(?)을 할 것이란 예상입니다. 서민경제는 극심한 고통을 받고 있는데 은행권은 사상 최대 수익을 올리는 모양새는 분명 어색한 것이 사실입니다.
참고로,은행의 공익적 역할이란 게 무엇인지 정의하기는 힘듭니다. 다만 여전히 은행을 공공기관처럼 생각하고 있는 일반의 정서에 비춰봤을 때 경기침체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소기업과 서민들에 대한 대출을 적극적으로 늘리는 정도의 역할을 요구받게될 것으로 보입니다.
시중은행 IT기획팀 관계자는 "은행이 수익을 적정한 선에서 관리해야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뭉칫돈이 들어가는 대규모 IT투자는 뒤로 미룰 것"이라며 "최소한 올해 상반기까지는 소규모의 IT사업 위주로 진행하면서 상황을 지켜볼 것"이란 관측입니다.
은행들이 공익적 역할을 수행하고도 수익을 적절하게 관리할 정도의 여유가 있다면 IT투자 예산 집행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수 있습니다. 그러나 은행이 겨우 수익 내기에 급급한 수준이라면 결국 IT예산의 대폭적인 삭감을 통해서라도 숫자를 맞출 것이란 예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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