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데일리 이유지기자] 네트워크 기술의 융합화가 가속화되면서, 네트워크 계층(Layer) 간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다. 유선 네트워크 분야에서 전송 업계와 스위치·라우터 업계가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면서 무한경쟁 시대가 펼쳐지고 있다.
통신사업자와 지자체에서 도입하면서 한창 이슈화되고 있는 ‘캐리어이더넷’ 장비가 대표적으로, 전송 기반 업체들과 IP 네트워크 업체들이 참여해 경쟁이 치열해졌다.
관련업계에서는 “전송 장비에서 IP를 수용하고, 전통적인 IP 영역도 전송계층으로 내려오고 있다”며, “캐리어이더넷으로 부각된 주도권 경쟁이 통신사업자 망의 IP화가 가속화되면서 앞으로 더욱 치열해질 것”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캐리어이더넷 시장 경쟁 심화=차세대 전송 장비, IP 또는 패킷 전송 네트워크 장비로도 불리는 ‘캐리어이더넷’ 장비는 통신사업자 코어·액세스망, 모바일 백홀, 사업자의 전용회선을 활용하는 지방자치단체와 기업의 통신망에까지 도입이 이뤄지기 시작하면서 주목받고 있다.
최근 KT가 진행하고 있는 캐리어이더넷 시범사업에는 시에나, 알카텔루슨트, 코리전트, 화웨이, 시스코시스템즈, 주니퍼네트웍스와 다산네트웍스, 유비쿼스, 우리넷, 텔레필드 등 국내에서 공급 중인 웬만한 국·외산 네트워크 장비 업체들이 제안서를 제출하며 모조리 참여했다.
캐리어이더넷은 전통적인 전송 장비 업체 입장에서는 IP·이더넷을 지원하는 차세대 장비이다. 기존의 MSPP 장비에 비해 이더넷 수용용량 면에서 확장성이 뛰어나 향후 신규 서비스 이용 증가에 유연하고 효율적으로 대처할 수 있고, OAM(운영관리) 및 유지보수에서 강점을 갖고 있다는 것이 업계의 얘기다.
전송 분야에 강한 외국계 업체들은 몇 년 전에 이미 캐리어이더넷 장비를 내놓고 공급하고 있고, 국내 업체들도 올해부터 본격 개발에 나섰다.
IP 장비 업계도 향후 표준화가 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는 MPLS-TP 지원 장비를 공급하고 있다. 시스코가 올 초에 MPLS-TP 전용 장비를 선보였고, 기존에도 ASR9000 등 라우터·스위치에서 IP/MPLS와 더불어 지원하고 있다.
주니퍼 역시 캐리어이더넷 서비스를 지원하는 MX 시리즈 라우터뿐만 아니라 지난해 6월 MPLS·이더넷 서비스를 제공하는 가정·기업의 액세스 망 및 모바일 백홀 구간을 위한 통합 액세스 솔루션인 ‘UAX’를 출시했다.
◆IP 라우터, 광 전송 기능 지원 활발=광 전송 기능이 통합된 대용량 IP 코어 라우터 제품도 출시되고 있다.
주니퍼가 재작년에 광 전송 기능을 통합한 일명 컨버지드 슈퍼코어 패킷 전송 스위치인 ‘PTX’를 발표했다. 이 제품은 런던인터넷익스체인지(LINX)에 공급, 런던 올림픽으로 인한 트래픽 증가에 대비해 운영 중이다.
지난 5월 알카텔루슨트도 IP 코어 라우터 시장에 출사표를 던지면서 선보인 신제품인 ‘7950 XRS(Extensible Routing System)’를 발표했다. 올 3분기에 출시되는 이 제품은 광 송까지 통합관리하는 기능을 적용했다. 향후에는 광 전송 기능까지 통합 제공할 계획이다.
알카텔루슨트는 이 제품을 발표하면서, 주니퍼 ‘PTX’를 겨냥해 “최근 출시되는 코어 라우터는 성능과 용량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기능이나 유연성을 일정부분 포기하는 추세”라고 말하면서 “‘7950 XRS’는 용량, 효율성, 확장성을 모두 확보해 코어 IP망 운용과 확장의 경제성을 획기적으로 향상시켜 준다”고 강조했다.
시스코 또한 “주니퍼 ‘PTX’ 장비는 통신사업자 망이 MPLS로 먼저 전환돼야 하기 때문에 현실성이 없고, 알카텔루슨트 장비는 코어가 아닌 에지 라우터에 불과하다”고 밝힌 바 있어, 초기 시장에서 IP 업체 간 광 전송 통합형 코어 라우터 시장에서 벌써부터 팽팽한 기운이 감돌고 있다.
시스코는 올 4분기(2013년 회계년도 1분기) 안에 광 전송 기능이 통합된 코어 장비를 선보일 예정이다.
현재 다산네트웍스, 유비쿼스도 캐리어이더넷 제품인 패킷 전송 네트워크(PTN) 장비 개발을 진행하고 있어, 기존까진 경쟁하지 않았던 전송 장비 업체들과 싸움을 벌이게 될 예정이다.
◆전송 장비 L2.5까지 진화, 향후 백본·코어망 주도권은?=인터넷·모바일 데이터 폭증으로 통신사의 인프라 투자가 엄청 늘어났지만 통신비 인하 등으로 가입자당 매출(ARPU)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융합화된 통신 장비는 효율적인 인프라 구성 및 운영관리 대안이 되고 있다.
수익 창출을 위한 신규 서비스 발굴을 위해서도 차세대 융합형 장비가 필요하다는 것이 장비 업계의 공통된 주장이다.
전송 장비 업체들은 IP 기반 장비가 안정성과 확장성, 비용효율성, 속도 지원 측면에서 아직까지 통신망 전체에 파고들긴 어렵다고 보고 있다. 통신사 백본·코어망은 아직 전송 장비가 주도하는 양상이다.
조성묵 한국알카텔루슨트 부장은 “50밀리세컨드 페일오버 지원으로 전송 장비가 IP 기술에 비해 안정성이 높고 OAM 기능으로 관리 효율성이 뛰어나며 유지보수하기에도 쉬우며 서비스 지원 속도도 더 빠르다”며 “백본망의 경우엔 특히 광 전송이 IP 기술에 비해 안정적이고 저렴하고 효과적”이라고 강조했다.
조 부장은 “전송 장비도 현재 L2까지 완전히 지원하고, L2.5까지 커버하는 장비가 나오기 시작했다. 캐리어이더넷, PTN(패킷전송네트워크)이 바로 L2.5 장비”라며, “전송 분야에서 IP 통합 시장을 열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서범석 ZTE코리아 부사장도 “전송 기반 장비는 장애시 50밀리세컨드(m/s)의 빠른 속도로 백업망으로 적용할 수 있어 보호 기능이 뛰어나다”며 “캐리어이더넷 OAM 표준화가 완료되면 IP 기반 장비도 신호 보호 수준이 높아지겠지만, 아직은 못미친다”고 말했다.
심성후 시에나 한국지사 상무는 “IP 업계에서는 전송 장비는 ‘멍텅구리’이고 IP 기술로 네트워크에서 필요한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고 하지만, 전송 장비에 비해 비싼 기술”이라고 지적하며, “시에나의 ‘지능형제어평면’ 기술처럼 전송 장비 역시 제어 기능이 접목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에 시스코코리아의 왕수현 이사는 모바일 네트워크 기술을 예로 들며 “사업자들이 스마트한 네트워크를 구축해 비용을 줄이고 차별화된 서비스를 하기 위해서는 장비에서 서비스 컨트롤이 가능해야 한다”며, “시스코 장비는 차별화된 서비스 컨트롤 기능을 제공해 가입자별, 서비스별로 제공이 가능하고, 비디오 오프로드 기능도 지원해 향후 늘어날 비디오 트래픽도 최적화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우선적인 네트워크 업계의 승부처는 통신사 무선 네트워크가 될 것으로 보인다. 모바일 데이터 트래픽이 급증하기 때문에 모바일 백홀과 모바일 패킷 코어, 이와 연결된 가입자 액세스 네트워크에 우선 투자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기 때문이다.
왕수현 이사는 “코어망의 획기적인 진화는 어려울 것이고 통신사들이 2G, 3G, IP 기술을 사용한 4G LTE 등 기존에 각각 운영해온 모바일 백홀을 하나로 합치면 인프라 운영관리 비용이 크게 절감될 수 있다”며, “기존 MSPP와 같은 전송 장비의 경우 폭주하는 데이터 용량을 수용하는데 한계가 있기 때문에 캐리어이더넷 구축을 선호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앞으로 펼쳐질 진정한 ‘올(All) IP’ 시대에 안정성이 가장 강점인 전송 장비와 지능형 기능을 제공해온 IP 장비, 어느 쪽에서 주도권을 잡을지 관심이 모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