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발의 프로그래머로 사는 것, 꿈이 아니다”
[국내 SW를 주도하는 핵심, R&D를 이끄는 사람들] ⑤ 코난테크놀로지 연구소
[디지털데일리 심재석기자] 국내에서 소프트웨어(SW) 개발자들의 직업 수명은 야구선수와 비슷하다.
35세가 넘어서면 최고참 급에 속하고 40세가 가까워지면 개발 현장에서 떠나게 떠나 관리자나 기술영업 등 다른 직업으로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여기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다.
대부분의 소프트웨어 기업들이 대기업 하도급에 의존하고 있어 경험이 많은 고급 개발자의 인건비를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고, SW개발 업무만 해서는 기업 내에서 승진에 한계도 있다.
또 야근과 철야, 주말 근무가 잦은 개발자 생활을 체력이 떨어진 중년이 돼서도 지속하기 어려운 면도 있다.
국내에는 머리가 희끗한 개발자를 만나기 어려운 이유다. 반면 해외에서는 백발의 개발자도 쉽게 볼 수 있다. 국내 SW개발자들 중 일부는 이런 모습을 꿈꾸지만 현실에서는 정말 꿈으로 끝날 수 밖에 없는 이야기다.
그런데 검색엔진 등 자연어처리 기술을 보유한 코난테크놀로지(이하 코난테크)는 이 꿈만 같은 이야기를 현실화하겠다는 꿈을 꾸고 있다.
이 회사는 이를 위해 올해부터 ‘전문 개발자 직급제’라는 제도를 시행했다. 이는 연차가 쌓이고 승진을 해도 관리자가 되지 않고, 개발 업무만 담당하는 직군이다.
지금까지는 일반 개발자로 시작해 팀장이 되면서 관리를 시작하고 그룹장을 거쳐 본부장이 되는 것이 이 회사 개발자의 일반적인 경로였다. 관리자가 되면 개발 현장에서는 떠날 수 밖에 없었다.
양승현 코난테크 최고기술책임자(CTO)는 “개발자들도 연차가 쌓이면 개발이 아니라 관리를 하는 일이 늘어난다”면서 “한 몸으로 두 일하기는 힘들고 개발은 소홀해지게 마련”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개발자들도 관리직이 아닌 개발자로서의 전문가 경력을 쌓을 필요가 있다”면서 전문 개발자 직군제 도입 배경을 설명했다.
그러나 국내 기업문화에서는 아직 풀어나가야 할 숙제도 많다. 양 CTO는 “이렇게 되면 팀장보다 경력이 많고 직급도 높은 데 팀원으로 일하는 경우가 생긴다”면서 “이런 상황에서도 문제 없이 협업해 나갈 수 있는 제도와 문화를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이승호 연구소장은 “지금까지는 SW 개발은 잘 하지만 관리는 역량이 없는 사람도 관리자가 돼야 했다”면서 “이런 사람의 개발 능력을 계속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능력 있는 SW 개발자가 관리자로서의 역량을 발휘하지 못해 승진 및 연봉에서 불이익을 받는 경우도 있었다.
이 소장은 “코난테크가 창립한 지 10년을 넘어서면서 40대 개발자들이 등장했는데 이들의 직책이 없으면 불안할 수 있다”면서 “불안감을 느끼지 않고 계속 개발 능력을 올리는 것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하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코난테크가 백발의 프로그래머를 만들려 하는 것은 SW 개발 업무에서 경험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양 CTO는 “당장 빠른 트렌드를 따라잡는 것은 젊은 개발자가 낫지만 기술을 깊이 있게 파고 아키텍처를 고민하는 것은 고참 개발자의 몫”이라면서 “머리 하얀 프로그래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소장은 “SW 개발은 코딩을 잘 하는 것이 필요하지만 프로그램 설계 능력이 가장 중요하다”면서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개발자들이 많아야 회사의 기술력이 올라간다”고 덧붙였다.
코난테크가 이 같은 제도를 도입한 것은 회사 문화가 연구소 중심이기 때문이다. 코난테크는 한국전자통신원구원(ETRI) 연구원들이 힘을 모아 세운 회사다. 현재 SK커뮤니케이션즈가 운영하는 검색포털 ‘네이트’에 검색엔진을 공급하고 있으며 다수의 기업에 검색 솔루션을 공급했다. 최근에는 텍스트 마이닝 기술을 기반으로 소셜미디어 분석이나 표절문서 분석 등의 기술도 공급하고 있다.
<심재석 기자>sjs@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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