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데일리 채수웅기자] 정권 마지막해와 함께 방송통신위원회도 레임덕에 빠지는 모습이다. 방송․통신사업자들에 대한 영(令)이 서지 않고 있다. 법적조치, 영업중단이라는 강수에도 사업자의 서비스 중단으로 방통위가 연일 체면을 구기고 있다.
지난달 케이블TV의 KBS2 재송신 송출 중단에 이어 이번에는 KT의 스마트TV 접속차단으로 이용자들이 불편을 겪고 있다.
KT가 10일부터 삼성전자 스마트TV에 대한 접속제한조치 시행에 들어갔다. 대용량 트래픽을 유발하는 만큼 대가분담 논의, 트래픽제한조치가 필요하다는 것이 KT의 주장이다.
이에 방통위가 즉각 제재조치를 거론하고 나섰다. 방통위는 KT가 9일 이 같은 계획을 발표할 것이라는 사실을 사전에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 이에 방통위는 KT의 발표 이후 부랴부랴 브리핑을 갖고 KT가 실제 스마트TV 접속제한조치를 실행할 경우 법 위반 여부를 검토, 엄중한 제재조치를 취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하지만 KT는 입장변화가 없다. 10일 제한조치는 예정대로 시행했다. 정부의 강한 유감표명, 제재조치 언급에도 불구하고 접속제한에 들어간 것이다.
KT의 이 같은 모습은 지난달 케이블TV 업계의 KBS2 재송신 중단과 유사한 모습이다. 케이블TV 업계도 방통위의 영업중단 등 강력한 제재조치 시사에도 결국 송출을 중단한 바 있다.
케이블TV 업계나 KT가 공통적으로 거론하는 것은 방통위의 늦장대응이다. 물리적인 실력행사가 이뤄지지 않으면 논의가 기약 없이 지연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서비스 중단을 강행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케이블TV 업계 역시 지상파 방송사들과 2년 넘게 재송신 분쟁을 겪은 바 있다. 하지만 방통위의 제도개선이 차일피일 미뤄지면서 결국 송출을 중단할 수 밖에 없었다. 송출이 중단된 이후에야 지상파와 협상이 타결됐다. 발등에 불이 떨어져야 정부가 움직인다는 것을 증명된 셈이다.
KT 역시 마찬가지다. 스마트TV에 대해 대가 등 협상을 논의를 1년전부터 꾸준히 TV제조사에게 요구해왔지만 진전은 없었다. 스마트TV의 트래픽 문제는 망중립성 원칙과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에 정부의 제도방향이 매우 중요하다.
방통위가 올해부터 망중립성가이드라인을 시행했고, 연내 스마트TV, m-VoIP 등 세부적인 사안에 대한 원칙이 결정될 예정이지만 그간 방통위의 의사결정 기간, 올해 예상되는 조직개편 등을 감안할 때 KT 역시 논의가 길어질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KT는 스마트TV 시장의 성장세를 감안할 때 초기에 논의를 확정하지 않으면 향후 트래픽관리 및 대가산정은 더욱 어려울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결국, 방통위의 지나치게 신중한(?) 의사결정 때문에 사업자간 이해다툼에 따른 피해는 고스란히 소비자 몫이 될 전망이다. 망중립성을 둘러싼 통신사업자와 나머지 사업자간 헤게모니 싸움을 교통정리는 결국 정부 몫이다. 잡음이 있더라도 법과 원칙을 정하면 따라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케이블TV 업계 관계자는 “지상파와 재송신 분쟁은 사업자간 협상으로는 좁혀질 수 없는 거리가 있었다”며 “민감한 사안일수록 법과 제도를 통해 명확히 해야 분쟁이 발생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대가산정을 놓고 통신사와 스마트TV 제조사간의 관계는 지상파-케이블 방송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방통위의 조속한 제도확립이 사업자간 분쟁을 막을 수 있는 근거가 된다는 점에서 이번 사태는 방통위의 분쟁조정 능력을 다시 한 번 시험대에 올려 놓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케이블TV의 경우 급한 불은 껐지만 제도개선 논의는 다시 미뤄지고 있는 분위기다. 특히, 방통위의 정치적 포지션, 위원장의 부재, 앞으로 치뤄질 총선과 대선, 그리고 하반기 조직개편 논의가 본격화된다는 점을 감안할 때 사업자들이 방통위에 보내는 시각은 그다지 우호적이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