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데일리 윤상호기자] 일본. 애증의 대상이다. 국권 강탈 때까지 거슬러가지 않아도 독도 문제를 비롯 수많은 갈등 현안이 있다. 하지만 그 어느 나라보다 우리와 가까운 국가로 일본이 없는 우리 경제는 상상할 수 없는 관계다.
그런 일본에 지난 11일 진도 9.0의 대지진이 일어났다. 수만명이 실종되고 수십만명이 집을 떠났다.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핵폭탄의 피해를 입었던 국가에 또다시 핵 위기가 발생했다.
디지털 시대의 최고 발명품 중 하나인 인터넷은 이번에도 빛을 발했다. 유무선 통신이 끊긴 상황에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는 생존자 소식을 나누고 아픔에 동참하는 효과를 톡톡히 했다. 일본을 돕기 위한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내고 서로 만들어가는 봉사 단체 역할도 하고 있다. 소통을 통해 희망을 전달하는 통로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긍정적인 소통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포털 사이트에는 ‘일본 침몰’ 등 자극적인 기사도 넘쳐난다. 디지털 시대 뉴스는 휘발성이 없다. 검색이라는 족쇄는 언제 어디에서나 부메랑으로 돌아온다. 삭제를 해도 스크랩 등 2차 가공된 기사는 스멀스멀 그 악취를 풍긴다.
그 악취는 SNS에도 영향을 미친다. 대부분의 SNS 사용자는 일본을 애도하고 차분하게 소식을 전하며 소통하고 있지만 여기에마저도 현지에서도 나오지 않은 보도를 보고 그 글을 퍼나르는 사람이 있다. 악성 글을 달고 불행을 비꼬는 이들도 있다. 실명 게시판도 그렇다. 클릭 한 번을 위해 남의 불행에 남긴 생각 없는 글이 자신의 평생을 괴롭힐 수도 있는 점은 안중에도 없다.
디지털 시대의 소통을 ‘배설구’로 생각하는 미꾸라지가 온 물을 흐리는 격이다. 자신이 이런 일을 당했을 때 얼굴도 모르는 사람이 같은 행동을 한다면 어떤 기분이겠는가.
경쟁을 할 때, 논쟁을 할 때, 정당한 주장을 할 때는 각자의 입장에서 대립하더라도 불행을 기뻐해서는 안된다. 그것이 인간에 대한 예의다. 최소한의. 디지털 시대 소통도 마찬가지다. ‘일본 지진이 하나님의 경고’라고 말한 목사와 이들이 무슨 차이가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