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라’로 보는 국내 온라인게임의 자화상
MMORPG(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 ‘테라’ 열풍이 대단합니다. 상용화 이틀째에 게임트릭스 기준 PC방 점유율 15.17%로 1위를 꿰찼네요. 당초 업계의 예상을 뛰어넘은 이 같은 반응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혹자는 현재 ‘테라’에 대항할 만한 신작이 없어서라고 합니다. 맞습니다. 적어도 상반기까지는 딱히 ‘테라’에 대적할 신작이 없습니다. 하지만 열풍을 설명할 이유로는 많이 부족합니다.
‘테라’ 흥행의 이유는 개발사 블루홀스튜디오와 NHN한게임에서 간단하게 찾을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개발사가 재미있게 잘 만들었으니 게임이 흥행하는 것이지요. 가까운 주변을 봐도 ‘테라’에 대해 불평을 늘어놓으면서도 열심히 하더군요. 재미있기 때문입니다.
이와 함께 한게임의 서버운영에서도 흥행의 이유를 찾을 수 있습니다. ‘테라’정도 그래픽품질의 게임을 수천명이 동시에 즐기게 되면 서버 부하가 상당합니다. 이제까지 한게임은 이렇다 할 사고 없이 운영을 훌륭히 해냈습니다. 업계도 여기에 높은 점수를 부여했습니다.
다만 버그 대처에 관해 운영상의 허점을 보인 것은 아쉬웠습니다. 이는 상용화가 진행되면서 자연스레 검증이 될 부분이니 넘어가겠습니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 ‘테라’를 한번 뒤집어 보겠습니다.
한게임은 차세대 MMORPG로 ‘테라’를 내세웠습니다. 물론 홍보를 위해 만든 용어입니다. 하지만 곰곰이 따져볼 필요는 있어 보입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테라’는 차세대 게임이 아닙니다. 이는 다수의 업계 종사자가 입을 모아 말하는 부분입니다.
한 게임전문기자는 “차세대 게임이 기존 게임보다 한 발짝 앞서가야 한다면 ‘테라’는 한 발짝 거리의 1/3정도 나간 게임”이라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1/3 나간 부분은 그래픽에서 얻은 점수입니다. ‘테라’의 그래픽에 딴죽을 건 전문가는 아무도 없었네요.
뒤집어 보면 지금 ‘테라’에서 그래픽 발전 외에는 새로운 시도를 찾아볼 수 없다는 말입니다.
이에 한 게임업체 관계자도 “‘테라’는 와우와 아이온 그리고 몬스터헌터를 버무려 놓은 게임”이라며 “아이온이 와우를 벤치마킹했다면 테라는 앞서 성공한 게임의 요소를 모두 끌어들여 만들었다”고 평가했습니다.
혹자는 ‘테라’를 두고 ‘헬게이트’에서 FPS(총싸움)요소를 뺀 게임이라고 말하더군요.
사실 이런 식으로 따지면 후대에 나오는 모든 게임은 이 같은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하지만 ‘테라’를 도마에 올린 이유는 그럴만한 가치가 있어서입니다. ‘테라’가 국내 온라인게임의 발전상을 보여주는 가장 적합한 사례이기 때문이죠.
한 게임업체 관계자는 “온라인게임 역사가 10여년 밖에 안 되다보니 최근 나오는 게임들도 1,2세대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며 “지금도 몇몇 줄기에서 모든 게임이 나온다”고 꼬집었습니다.
이 관계자는 지금까지 온라인게임에서 가장 발전한 개발 분야로 그래픽을 꼽았습니다. 반대로 가장 발전하지 않는 분야를 기획, 시나리오라고 말하더군요. 개발자 개개인의 역량이 해외에 비해 떨어지는 현실도 언급했습니다.
또한 게임의 사업적 성공을 위해 혁신을 내치는 현실도 지적됐습니다. 개발자가 창의적인 생각을 해도 실제 게임에 적용되지 못한다는 얘기입니다. 회사의 수장들은 앞서 성공한 게임에서 검증된 부분을 가져오기를 원합니다. 아직 국내에서는 차세대 게임이 나올 토양이 마련되지 않았다는 설명입니다.
이 같은 현실을 ‘테라’에 대입하면 더욱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기술의 발전은 보이는데 들여다보면 정작 내용이 없다는 것이죠. 기획력의 부재가 수차례 지적됐습니다. 양산형 게임 가운데 그래픽에 눈길이 가는 게임,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라는 평가를 내렸습니다.
게임업계 관계자는 “게임 개발은 이제 시스템화 돼있어 몇몇 수장들이 컨트롤해주면 나온 게임이 안 돌아가는 경우는 없다”며 “다만 게임이 나왔을 때 임팩트나 창의성이 부족한 것은 고민이 이어져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앞선 업계 관계자들의 따끔한 자기비판이 ‘테라’의 평가절하로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테라’ 덕에 게임에 향수를 가지고 있던 성인층이 업계로 다시 돌아온 것은 크게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테라’가 게임업계의 성장점을 제대로 자극했기 때문이지요. 마땅히 그 역할을 할 게임이 없었기 때문에 ‘테라’의 출현이 더욱 반갑기도 합니다.
4년여의 개발 끝에 ‘테라’가 나왔습니다. ‘테라’가 길을 열어줬으니 내년이나 내후년에 진짜 차세대 ‘테라’를 볼 수 있을까요. 올해 오픈이 예정된 ‘블레이드앤소울’과 ‘아키에이지’가 그러한 역할을 했으면 하는 바람도 있습니다. 지금 기획단계에 있거나 이제 막 개발에 들어간 모든 게임에게도 기대를 걸어봅니다.
[이대호기자 블로그=게임 그리고 소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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