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반도체 '사즉생' 새겼다…내부 단속부터 생존활로 모색 [소부장반차장]
[디지털데일리 고성현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사즉생'의 각오를 다져달라는 메시지를 내면서 지난해 부진한 반도체사업(DS)부문의 봄이 찾아올지 이목이 집중된다. 특히 지속적인 인공지능(AI) 산업 발전과 미중 갈등으로 인한 기회 요소, 메모리 시장 내 반등 시그널이 다가 오고 있어 관련 수혜를 받을 수 있을지도 관심이다.
삼성전자는 지난 19일 정기주주총회를 열고 DS부문의 경쟁력 향상과 장기적 계획을 밝혔다. 이날 대표이사로 공식 선임된 전영현 DS부문장은 작년 과오를 '내부적 문제'라며 고개를 숙이면서도 다시는 실망시키지 않겠다는 각오를 내비쳤다.
전영현 부회장은 이날 "저희를 믿어주셨는데 기대에 미치지 못해 죄송하다. AI 경쟁 시대에 고대역폭메모리(HBM)가 대표적인 부품인데, 시장 트렌드를 저희가 늦게 읽는 바람에 초기 시장을 놓쳤다"고 사과했다. 그러면서 "작년 말에 있었던 조직 개편들을 통해서 전사적 노력을 기울이고 있고, (DS부문의) 결과는 빠르면 올해 2분기나 늦어도 하반기부턴 HBM3E 12단 제품이 시장에서 주목받을 것"이라며 "이렇게 되면 올해 전체 HBM 공급은 작년 대비 상당 수준 늘어난다. 이로써 저희도 자리잡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그는 "HBM4라든가 커스텀 HBM 같은 차세대 제품에서도 노력 중이다. 주주들 기대에 부응할 수 있도록 HBM 사업에서도 좀 더 분발하겠다"고 강조했다.
◆ 'HBM에 전력투구' 메모리사업부, 상반기 성과낼까…볕드는 D램·낸드 시장
삼성전자는 우선 메모리 부문에서 엔비디아 납품이 지연되는 HBM3E에 대한 설계 수정에 집중하는 한편, 올해 말 양산을 위해 HBM4 역량 확보도 확대해나갈 계획이다. 이와 함께 전망이 밝아지는 범용 D램·낸드 시장 분위기가 실적 반전에 기여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는 지난해 엔비디아향 HBM3E 납품 승인 지연과 D램 공정 설계 이슈로 강도 높은 쇄신 인사가 단행됐다. 전 부회장이 작년 5월 삼성전자로 복귀해 DS부문장을 맡았고, 같은 해 말 진행된 조직개편·인사에서 메모리사업부장까지 겸임하면서 메모리사업에 대한 집중도를 높였다.
이와 함께 이슈가 된 1a(10나노 4세대급) 공정에 대한 재설계를 진행하면서 D램·HBM3E의 경쟁력 제고에 나섰고, 이 성과를 연내 상반기 중 달성하겠다는 목표도 제시했다. 올해 말 양산이 예정된 HBM4의 경우 칩 사이즈가 커진 1c(10나노 6세대급) 공정을 활용한 D램을 탑재하고, 중요도가 높아진 베이스 다이(Base Die)의 생산을 자사 파운드리사업부와 함께 TSMC로도 넓히는 방안을 고려하는 등 납기 역량을 확대할 계획이다.
이 가운데 침체된 메모리 시장이 올해부터 회복기에 들어설 것으로 점쳐지는 부문이 긍정적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메모리 주요 응용처인 스마트폰 수요가 중국 등 주요국에서 늘어나는 추세인데다, 미국의 관세 정책 변수로 인해 이를 선구매하려는 업체가 늘어난 덕이다. 그동안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 등 주요 기업이 D램 생산을 조절하며 공급 과잉 현상을 해소한 것도 한몫한 것으로 풀이된다.
오랜 기간 침체가 유지됐던 낸드 시장에도 볕이 들고 있다. 낸드는 지난해 하반기 범용 제품이 10년만의 최저가로 떨어지면서 부진한 모습을 보였지만, 각 메모리 메이커의 감산이 줄이으면서 회복의 기미가 올라오는 모습이다. 이에 따라 샌디스크, 삼성전자, SK하이닉스, 양쯔메모리(YMTC) 등이 4월 중 가격 인상을 예고한 상황이다.
업계에서는 삼성전자가 2분기부터 메모리사업 회복에 탄력을 받을 수 있다고 관측하고 나섰다. 지난해 악재로 작용했던 높은 범용 비율과 생산능력이 이점으로 작용할 가능성을 점친 것이다. 특히 범용인 DDR5를 비롯해 저전력D램(LPDDR5X), 그래픽D램(GDDR7) 등이 온디바이스AI·데이터센터 등으로 확대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 '잠시 멈춤·내실 집중'나선 파운드리, GAA·첨단 공정 성숙도 발휘 목표
TSMC에 밀려 점유율 하락세를 보였던 삼성 파운드리는 미중 갈등이 짙어지는 사이 또 다른 기회를 잡게 된 모습이다. TSMC가 포기한 중국향 AI반도체 칩 수주를 삼성전자가 받을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다방면의 공정 활용도가 높아지는 덕이다. 업계에서는 삼성전자 파운드리가 올해 4~5나노, 14~15나노 공정에서 관련 수혜를 받을 것으로 보고 있다.
TSMC는 당초 주력 고객사인 엔비디아와 함께 퀄컴·AMD 등 첨단 공정에서 대다수 수주를 확보하고 레거시 부문에서 중국 등의 고객사를 확대해 발판을 넓힐 예정이었다. 하지만 미국 바이든 전 행정부의 지속적인 대중견제와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에 따른 중국 리스크를 고려해 중국에 대한 비중을 크게 줄이고, 엔비디아 등 미국 팹리스와의 공조 확대를 위해 북미 현지 투자 및 전략 수립에 집중하는 상황이다.
반면 삼성전자는 줄어든 미국 빅테크 수주에 따라 파운드리사업부 내 자본적지출(CAPEX) 속도를 크게 낮추는 한편, 성숙 공정 중심의 활용도를 높이는 전략으로 선회했다. 2나노·3나노 등에 대한 개발 기조는 이어가되, 안정화한 4나노 급 공정에서 성과를 내 장기적인 고객을 다각도로 확보하기 위함이었다. 이 전략이 TSMC의 탈중국 기조와 맞물리면서 중국, 미국, 국내 등 다양한 고객사를 확보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는 것이 업계의 평가다.
반도체 업계는 삼성 파운드리가 올해를 공정 성숙도 향상과 패키지 상용화 확대의 해로 삼을 수 있을 것으로 봤다. 그동안 AI칩 수주가 TSMC에 집중되며 삼성 파운드리의 기회 요소가 부족했던 만큼, 올해부터 양산·가시화될 제품이 장기적인 기술 성숙도 향상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란 이유에서다. 삼성전자는 국내 업체들과 협업해 2.5D 패키지 기반의 AI칩 국책과제를 수행하는 한편, 그록·모빌린트·리벨리온·텐스토렌트 등과 4나노, 14나노 공정 양산에 협력에 나선 상황이다.
최첨단 공정 분야에서는 삼성전자 DS부문의 '아픈 손가락'인 자체 모바일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엑시노스' 시리즈의 부활이 기대되는 요소다. 엑시노스 시리즈는 지난 '엑시노스 2400' 당시 갤럭시S 플래그십 라인업에 포함되면서 전작의 아픔을 딛고 일어섰지만, 작년 신제품인 '엑시노스 2500'이 3나노2세대(SF3) 공정과 성능 이슈로 올해 초 출시된 '갤럭시S25'에 탑재되지 못하는 수모를 겪었다. 이에 올해 반등을 위해 갤럭시 폴더블 시리즈 납품을 노리는 등 관련 개발 및 양산에 집중하는 상황이다.
일각에서는 올해 개발 중인 '엑시노스 2600'이 조기 등판할 가능성도 점치고 있다. 2나노 1세대 공정으로 제작된 엑시노스 2600이 예상보다 진전이 있는 덕이다. 이에 따라 개발 역량을 집중해 올해 폴더블 시리즈나 내년 갤럭시S 시리즈 복귀 등을 추진할 수 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다만 알려진 결과가 상당히 초기 단계에 속해 검토 그 이상의 의미는 없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삼성 파운드리가 연이은 실패와 미중 갈등에 따른 정책적 리스크에 아쉬움을 보이는 것은 사실이지만, 내부적으로 상당히 진전된 모습이 있는 것도 비춰지는 일면 중 하나"라며 "'사즉생'을 언급한 이 회장의 메시지에 따라 내부 분위기도 달라지고 있어 기대를 할 요소도 충분히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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