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더 빠르게, 배터리 늦어도 제대로…새판 짜는 'SK 제조군' [종합]
SK하이닉스, C레벨 중심 체제로 전환…개발·양산 총괄 신설
SK온, 제조총괄 신설로 생산 경쟁력 강화…반도체 DNA 이식
수펙스협의회 8개 위원회 체제 유지…그룹 기업문화 변화 추진
[디지털데일리 배태용 기자] SK그룹이 2025년 제조군 핵심 계열사인 SK하이닉스와 SK온의 조직 개편 및 임원 인사를 단행했다. 이번 인사는 반도체와 배터리 두 축에서 뚜렷한 전략 차이를 보여주며,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미래를 대비하려는 그룹의 의지가 드러냈다.
SK그룹은 5일 수펙스추구협의회를 열고 각 계열사 이사회를 통해 결정된 임원 인사와 조직개편 사항을 공유 및 협의했다고 발표했다. SK는 안정적 변화 관리와 함께 '기술, 현장, 글로벌' 키워드의 인사로 비즈니스의 핵심 경쟁력에 집중한다는 방침이다.
이번 인사의 핵심은 기술 및 현장 중심의 리더십 강화와 AI·디지털 전환(DT) 역량 결집이다. SK는 임원 75명을 신규 선임했으며, 이 중 약 3분의 2는 R&D, 생산, 현장 전문가로 채워졌다. 이는 불확실한 경영 환경 속에서 핵심 경쟁력을 확보하려는 전략으로 해석된다.
◆ SK하이닉스, 안주 안 한다…르네상스 이어 '더 빠르게' = SK하이닉스는 올해 3분기 7조원 이상의 영업이익을 기록하며 'HBM(고대역폭메모리)' 시장에서 압도적인 1위를 유지했다. 특히 AI 반도체 기업 엔비디아와의 협력을 강화하며, 차세대 HBM에서도 협력 관계를 강화하기로 했다. 이러한 가운데 경쟁사들의 추격도 강해지며 안주하지 않고 더 빠르고 민첩한 조직으로 변화, 시장 주도권을 놓지 않겠다는 의지를 다졌다.
이를 위해 회사는 'C레벨(C-Level) 중심 경영 체제'를 도입해 주요 기능별 의사결정 권한을 강화, 조직 간 협력을 더욱 촘촘히 연결했다. ▲AI 인프라(CMO, Chief Marketing Officer) ▲미래기술연구원(CTO, Chief Technology Officer) ▲개발총괄(CDO, Chief Development Officer) ▲양산총괄(CPO, Chief Production Officer) ▲코퍼레이트 센터(Corporate Center) 등 5개 부문 체제로 재편하며, 효율적인 '원팀(One Team)' 체제를 구축했다.
특히, 모든 메모리 제품의 개발 역량을 결집한 개발총괄(CDO) 조직을 신설하고, N-S Committee를 담당하던 안현 사장을 승진시켜 선임했다. 안 사장은 미래기술연구원, 경영전략 등 핵심 직책을 거치며 기술과 전략적 의사결정에서 탁월한 성과를 보여온 인물이다.
또한, 메모리 전공정과 후공정의 양산을 통합 관리하는 양산총괄 조직도 신설됐다. 이 조직은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등 국내외 신규 팹의 생산기술 고도화를 주도하며 공정 간 시너지를 극대화할 예정이다.
SK하이닉스는 이 외에도 글로벌 대외협력을 강화하기 위해 외교 및 통상 전문가들을 배치해 급변하는 지정학적 리스크와 주요국 반도체 정책 변화에 민첩하게 대응할 역량을 확충했다.
SK하이닉스가 지정학적 리스크에 주목하는 이유는 반도체 산업이 미국과 중국 간 기술 패권 경쟁의 중심에 서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미국은 첨단 반도체 기술의 대중국 수출 규제를 강화하고 있으며, 이에 대응해 중국은 자국 반도체 생태계를 육성하려는 노력을 가속화하고 있다.
또한, 유럽과 일본 등 주요국도 자국 내 반도체 공급망 안정화를 위한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이러한 글로벌 환경 속에서 SK하이닉스는 주요국의 정책 변화와 규제 강화에 민첩하게 대응하지 않으면 공급망 차질이나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대외협력 역량 강화가 필수적이다.
곽노정 CEO는 "이번 조직 개편과 임원 인사를 통해 AI 메모리 분야에서 리더십을 더욱 공고히 하겠다"며, 미래 성장을 위한 리밸런싱(Rebalancing)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 SK온, 늦더라도 제대로…정공법 선택 = SK온은 SK하이닉스의 조직 혁신과는 다소 결이 다른 방향성을 보여줬다. 업계의 대대적 변화 예상과는 달리, 기존의 틀을 유지하되 기능 효율화와 협업 강화로 실질적인 변화를 꾀했다.
SK온은 이번 조직 개편에서 고객과 제품 중심의 업무 체계 전환을 선언하며 시장 요구에 발 빠르게 대응할 수 있는 구조를 갖추고자 했다. 특히, 업무 실행력 강화를 위해 신설된 '운영총괄' 산하에 기획조정·경영전략·재무·구매 조직을 편제했다. 운영총괄 임원으로는 SK㈜ PM 부문장을 지낸 신창호 총괄을 선임했다. 그는 에너지 사업 등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배터리 밸류체인의 최적화를 이끌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기존의 'CPO(최고생산책임자)' 명칭을 '제조총괄'로 변경하며 제조 역량 강화를 위한 움직임도 보였다. 제조총괄 자리에는 SK하이닉스와 SK실트론에서 반도체 제조 경험을 쌓은 피승호 전 SK실트론 CSS 대표가 선임됐다. 그는 SK하이닉스의 위기를 극복했던 경험을 기반으로 SK온의 생산 경쟁력을 강화할 핵심 인물로 평가받는다.
이는 SK온이 그동안 배터리 생산 과정에서 수율(양산 효율) 문제 등으로 어려움을 겪어왔다는 업계의 평가와도 맞물린다. 특히 글로벌 수요 증가 속에서도 생산 효율과 원가 경쟁력에서 개선이 더디다는 지적이 이어져 왔으며, 이번 제조총괄 신설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 생산 체계를 고도화하려는 움직임으로 해석된다.
빠른 성장이 기대되는 ESS(에너지 저장 시스템) 사업은 CEO 직속 조직으로 독립 편제하며 사업 역량을 집중적으로 육성할 방침이다. SK온은 이번 개편으로 그룹 내 반도체의 성공 DNA를 이식하고, '늦더라도 바르게'라는 전략적 선택을 통해 위기 극복의 초석을 다지겠단 의지로 풀이된다.
이 외에 SK수펙스추구협의회는 기존의 8개 위원회 체제를 유지하며 계열사 현장으로 인력을 전진 배치했다. 이를 통해 현장 중심의 실행력을 강화하고 그룹 차원의 기업문화 변화를 추진할 계획이다.
SK그룹 관계자는 "기술, 현장, 글로벌 중심의 인사를 통해 사업 본연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수시 인사를 통해 빠른 조직 안정과 실행 중심의 기업문화를 정착시키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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