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 김범수, 구속 101일만 석방…정상화 시계 빨라질까
[디지털데일리 이나연기자] SM엔터테인먼트 인수 과정에서 불거진 주가 시세조종 의혹 ‘정점’으로 지목돼 구속기소된 김범수 카카오 창업자 겸 경영쇄신위원장이 보석으로 풀려났다. 지난 7월23일 구속된 지 101일 만이다.
사상 초유 총수 공백 사태를 맞았던 카카오는 일단 한숨을 돌리게 됐다. 최고 의사결정권자의 경영 복귀를 계기로 그룹 쇄신과 체질 개선 작업, 신사업이 다시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김범수 위원장을 비롯한 전현직 경영진들의 본안 재판이 진행 중인 만큼 경영 불확실성이 걷히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31일 오후 보석 석방된 김 위원장은 “앞으로도 성실히 조사에 임하겠다”고 밝혔다. 서울남부지법 형사합의15부(양환승 부장판사)는 이날 김 위원장의 보석 청구를 인용하면서 보증금 3억원 납부, 사건 관련 피의자·증인·참고인 접촉 금지 등을 조건으로 걸었다. 김 위원장 측이 법원에 보석을 청구한 지 21일 만이다.
김 위원장 측은 지난 16일 열린 보석 심문에서 “공개수사가 진행된 지 1년 6개월 이상 지났고 관련 사건에 대한 재판도 1년 가까이 진행됐는데 증거 인멸 염려가 있다는 점은 납득하기 어렵다”며 “피고인 구속이 장기간 이어져 골든타임을 놓치면 카카오와 IT 산업 전체가 타격을 받아 회복하기 어려운 상황인 점 등을 고려해 달라”고 요청했다.
검찰에 따르면 카카오는 작년 2월 16∼17일과 27∼28일 SM엔터 경영권 인수전 경쟁사인 하이브 측 공개매수를 방해하기 위해 SM엔터 주가를 하이브 공개매수가인 12만원보다 높게 설정·고정할 목적으로 시세조종한 혐의를 받는다. 검찰은 김 위원장이 그룹 최고 의사결정권자로서 시세조종 계획을 사전에 보고받아 승인했고, 임원들은 조직적으로 자금을 동원해 시세 조종성 장내 매집을 실행한 것으로 보고 있다.
◆대내외 과제 산적…김 위원장 경영 복귀 후 카카오 향방은
김 위원장은 지난 2022년 3월 이사회 의장직에서 물러난 뒤, 카카오와 전 계열사 글로벌 시장 공략과 미래 먹거리 발굴을 총괄하는 미래이니셔티브센터장직만 유지했다. 하지만 SM 시세조종 의혹으로 김 위원장을 비롯한 주요 경영진이 검찰 수사 대상에 오르자, 그는 약 1년 8개월 만에 그룹 컨트롤타워인 CA협의체 산하 경영쇄신위원회 지휘봉을 잡았다.
카카오 그룹 준법·윤리경영을 지원하는 독립 기구인 카카오 준법과신뢰위원회 역시 김 위원장 지시로 지난해 11월 설립됐다. 올해 초에는 CA협의체가 김 위원장과 정신아 대표 투톱 체제로 재편됐다. 지난 7월 김 위원장이 구속되면서 카카오는 경영 공백을 최소화하는 데 주력했다. 공석이 된 경영쇄신위원장 자리는 정 대표가 대행하고, 월 1회 열리던 그룹 협의회를 주 1회로 늘려 경영 현안을 긴밀히 논의했다.
그동안 문어발식 사업구조와 골목상권 침해 등 비판을 받아온 카카오는 비상 경영에 돌입한 이후 경영 효율 차원에서 그룹 몸집을 줄이는 데 박차를 가해왔다. 인공지능(AI)과 카카오톡 같은 핵심 사업을 제외한 계열사를 본사에 흡수하거나 합병 혹은 시장에서 철수하는 방식을 통해서다.
이달 기준 카카오 국내 계열사 수는 122개로 올해 초138개에서 16개 감소했다. 회사는 계열사 정리 작업을 이어갈 계획이다. 김 위원장은 지난 2022년 계열사를 100개 내외로 줄이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이러한 내부 노력과 별개로 대내외 과제가 산적해 있다는 점 또한 회사 위기 요인으로 꼽힌다. 정부당국은 카카오 주요 계열사들에 고강도 제재 칼날을 연신 겨누고 있다.
올해 카카오모빌리티는 자사 가맹택시인 카카오T블루에 대한 ‘콜 몰아주기’ 의혹에 이어, 경쟁사 가맹택시 ‘콜(승객 호출) 차단’ 혐의에 대해 수백억원대 과징금과 검찰 고발 처분을 받았다. 지난 2년 간 카카오모빌리티가 받은 과징금 규모는 약 1000억원에 육박하는데, 이는 회사 3년 치 영업이익에 준하는 수준이다. 카카오모빌리티 분식회계 혐의에 대한 최종 제재 수위도 다음 달 초 결정될 예정이다.
카카오페이는 지난 6년여간 누적 4000만명의 개인신용정보 542억건을 고객 동의 없이 중국 알리페이에 제공한 의혹으로 금융감독원과 개인정보보호위원회 조사를 받고 있다.
노사 갈등도 계속되고 있다.
카카오 공동체 노동조합 ‘크루유니언’은 엔데믹(감염병의 풍토병화) 이후 근무제도 개편과 경영쇄신 속 내부 소통 미비, 구조조정 또는 매각 가능성에 따른 고용 불안 등 여러 문제에 목소리 내는 중이다. 카카오 노조 자체 집계에 따르면 최근 노조 가입률은 과반을 넘어 사측 교차 검증을 기다리고 있다. 지난달 23일 경기지방노동위원회가 조정 중지 결정을 내리면서 노조는 합법적 파업이 가능한 쟁의권도 확보했다.
미래 핵심 먹거리인 AI 신사업도 구체화된 성과를 위해 더 속도 낼 필요가 있다.
카카오는 지난 22~24일 열린 개발자 컨퍼런스에서 올 하반기 최대 과제였던 새로운 대화형 AI 서비스 ‘카나나’와 동명의 자체 AI 모델 10종을 공개했지만, 핵심 내용은 부재해 실제 수익화 가능성에 의문이 나온다.
카카오는 당장 다음 달 7일 예정된 올해 3분기 실적 발표에서도 직전 분기와 달리 우울한 성적을 받을 전망이다.
게임·음악·웹툰 등을 아우르는 콘텐츠 사업 부문 매출 부진이 그룹 전체 실적에 악영향을 미쳤다는 게 증권업계 분석이다. 지난 2021년 한때 17만원을 넘어섰던 카카오 주가는 현재 3만원대로 추락했다.
이런 상황에서 김 위원장이 경영 일선에 복귀한다고 해도 시장 판도를 뒤집을만한 대대적 행보는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제기된다. 카카오 사법리스크는 경영 통제와 그에 대한 전략 기획이 충분하지 않아 발생한 만큼, 기존 사업을 토대로 조정을 거치는 게 더 시급하다는 판단이다.
신민수 한양대 경영대 교수는 “김 위원장이 보석으로 막 풀려난 상태에서 신규 사업 확장은 또 다른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며 “앞서 지적된 사업 거버넌스(지배구조)에 초점을 맞춰 움직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한편 김 위원장 보석 인용이 갑작스럽게 결정된 데 따라 김 위원장 출근 시점 등 구체적인 경영 복귀 계획은 아직 확정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권 책무구조도, 내부통제 위반 제재수단으로 인식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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