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희미해지는 지스타 존재감, 생존 전략 고심할 때
[디지털데일리 문대찬기자] 최근 만난 한 게임사 고위 관계자는 “올해 ‘지스타’에 나가지 않기로 했다. 내년 ‘게임스컴’ 출품 준비에 매진할 계획”이라고 귀띔했다.
지스타 출품을 위한 데모 버전 준비에 인력을 투입하기 보다, 내년 8월 독일 쾰른에서 개최되는 게임스컴에서의 성공적인 출품에 역량을 집중하겠다는 계획이었다.
지스타 개최가 한 달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지스타를 바라보는 업계 시선에 우려가 적지 않다. 올해도 규모로는 역대 최대라고 하지만, 향후 전망은 그 어느 때보다 불투명해서다.
지난 8월 독일 쾰른에서 열린 ‘게임스컴’에는 역대 가장 많은 국내 게임사가 이름을 올렸다. 게임스컴은 ‘도쿄게임쇼’와 함께 오프라인 최대 게임 전시회로 통한다. 유수의 글로벌 게임사들이 신작을 공개하고 시연 기회를 마련하는 장으로, 글로벌 진출의 관문으로도 여겨진다.
당시 넥슨과 크래프톤, 펄어비스 등 주요 게임사들은 B2C(소비자 대상)관에 부스를 내고 신작 시연 자리를 최초로 마련했다. ‘퍼스트버서커: 카잔’, ‘붉은사막’ 등 야심작이 베일을 벗었다. 이중 넥슨은 9월 열린 도쿄게임쇼에도 카잔을 출품하고 게이머들을 만났다.
국내 게임사들의 글로벌 시장 확장 의지가 짙어지면서, 앞으로는 이러한 경향이 두드러질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게임스컴 참가가 일종의 연례행사처럼 자리매김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실제 이번 게임스컴에는 엔씨소프트와 스마일게이트 등 대형 게임사 수장들이 현장을 방문해 분위기를 살폈다. 이미 내년 게임스컴 출전을 공표한 게임사도 있다.
우려스러운 지점은 게임스컴을 향한 이러한 높은 관심이, 지스타 입지를 위협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글로벌을 겨냥하는 게임사로선 전세계 게이머 이목이 집중되는 게임스컴과 도쿄게임쇼에 집중하는 편이 효과적이다. 오프라인 게임쇼의 기대 효과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이미 공개된 작품들을 다시 지스타에 공개하는 부담을 떠안기보다, 소규모 부스로 간소화하거나 아예 참가를 하지 않는 게임사들이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이는 지스타가 목표로 하는 ‘세계 3대 게임 전시회’로의 도약에도 걸림돌이 될 수 있다. 독자적인 입지를 확립하려면 다른 전시회와 차별화된 콘텐츠를 선보여야 하지만, 지스타 단골 손님이라 할 수 있는 국내 게임사마저 소위 ‘재탕에 재탕’을 거친 게임들을 출품한다면 업계 뿐만 아니라 게이머, 미디어에게도 모두 매력을 잃을 수 있다.
게다가 지스타는 오랜 기간 글로벌 대형 게임사 유치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글로벌 게임쇼에 비해 턱없이 작은 전시 공간 규모, 글로벌 게임사들이 집중하기 어려운 11월이라는 행사 시점 등 여러 복합적인 요인이 지스타의 매력이나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있는 실정이다.
국내 최대 게임 전시회라는 특수성을 가진 만큼 존폐를 걱정할 정도는 아니겠지만, 내수용 전시회라는 꼬리표를 떼고 글로벌을 바라보려면 풀어야 할 숙제가 적잖은 셈이다.
업계 일각에선 향후 확장성을 위해 전시장 규모를 보다 키우는 것에서 나아가, 이스포츠 대회를 동반 개최하는 등 한국 게임 시장의 특수성을 보다 강조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고 있다. 다양한 게임사 모객을 위해 부스 참가비를 낮추거나 행사 시기를 과감히 앞당기는 등 대대적인 수술에 가까운 변화를 모색해야 할 때라는 목소리까지 나온다.
늦었지만 변화 조짐이 엿보이는 건 긍정적이다. 올해 지스타 단독 콘퍼런스인 ‘지콘’은 세계적인 개발 거장들이 한 데 모인 풍성한 라인업을 자랑한다. 글로벌 PC 게임 유통 플랫폼 스팀의 부스 참가와 같은 글로벌 업체들과의 협업에 더해, 글로벌 게임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참가도 주목할 만한 요소다. PC·콘솔 위주로 꾸려진 전시 라인업도 반가운 대목이다. 관건은 이러한 기회를 어떻게 확장하고 발전시키느냐다.
강신철 조직위원장은 “올해 지스타는 20주년을 맞이하는 매우 중요한 기점으로, 앞으로 20년의 지스타의 새로운 모습과 미래 청사진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한 해가 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올해 지스타가 단순한 전환기를 넘어서, 진정한 글로벌 전시회로 도약할 수 있는 불씨를 확인하는 계기가 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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