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중독=병’ 인정될까…해외 석학 “학계도 의견 갈려, 신중해야”
[디지털데일리 이나연기자] 세계보건기구(WHO)가 ‘게임 이용 장애’를 공식 질병으로 분류한 이후 국내에서도 이른바 ‘게임 질병 코드’ 도입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국내외 산·학계 전문가들은 게임 이용 장애를 판단하는 명확한 학술적 정의가 불분명한 가운데, 섣불리 게임 이용 장애 질병 코드를 도입한다면 게임 산업과 이용자 모두에게 부정적 여파가 미칠 것이라 입을 모아 경고했다.
5일 한국게임산업협회와 한국콘텐츠진흥원은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 소강당에서 ‘새로운 관점으로 보는 게임 인식: 게임 이용 장애 국제세미나’를 개최했다. 게임 질병 코드 논란은 지난 2019년 WHO가 국제질병분류 11차 개정(ICD-11)에 게임 이용 장애를 올리며 불거졌다. 게임 중독 행위를 사실상 질병으로 취급하겠다는 의미다.
우리 정부도 해외 추세에 발맞춰 국무조정실 주도로 민·관 협의체를 꾸리고,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KCD)에 게임 이용 장애를 등재할지를 논의해 왔다. KCD가 오는 2025년 개정을 앞둔 데 따라 늦어도 내년까지 결론을 내려야 하는 상황이다. 다만 ICD가 KCD에 등재되지 않은 사례가 거의 없는 만큼, 게임 이용 장애 질병코드도 국내에 도입될 가능성이 크다고 업계는 전망한다.
실제 이날 세미나에 앞서 열린 사전 간담회에서 해외 석학들은 게임 이용 장애 정의와 진단 기준, 질병 코드 부여 효과에 논란 여지가 있다고 설명했다.
앤드루 쉬빌스키 옥스퍼드대 인간행동기술학 교수는 “성인 중 절반 정도는 게임이든, 스마트폰이든, 소셜미디어든 기술에 중독됐다고 볼 수 있으나 이를 임상진단으로서 ‘중독’이라고 하는 건 다른 문제”라고 말했다.
특히 앤드루 쉬빌스키 교수는 “영국에서는 ICD-11를 도입하는 데 20년이 걸렸다”며 “게임 이용 장애에 대해 명확한 정의가 이뤄지지 않다고 보는데 이를 어떻게 보고 치료할 것인지 더 많은 연구와 노력이 필요하다”라고 밝혔다.
마띠 부오레 틸뷔르흐대 사회심리학과 교수도 게임 이용 장애에 질병 코드를 붙이는 것은 복잡한 문제이며 연구자들 사이에서도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사안이라고 동의했다.
부오레 교수는 “학계 분위기를 봤을 때 연구자들 사이에서도 엇갈린 의견이 많다”며 “개인으로서는 어떤 사람이 문제가 생겨 치료받을 수는 있지만, 질병코드를 부여받게 되면 일상에서 게임을 하는 이들이 장애가 있는 것처럼 낙인이 찍힐 수도 있다”라고 우려했다.
게임이 문제적 행동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는 근거가 없다는 학계 연구 결과도 제시됐다.
조문석 한성대 사회과학부 교수는 “게임이 장애 현상이나 문제적 행동을 일으키는 직접적인 요인이 있는지 4년간 연구한 결과, 명확한 근거를 발견하지 못했다”며 “일반적으로 정의되는 게임 이용 장애는 이용자가 가진 사회적, 심리적, 환경적 등 다양한 선행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주된 연구 결과 중 하나”라고 말했다.
한편 정부도 한국 콘텐츠 수출의 70%를 차지하는 게임 산업의 긍정적 가치가 확산하도록 게임 리터러시 사업 등 다양한 정책으로 뒷받침하겠다고 강조했다.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이날 축사를 통해 “K-게임의 세계적인 위상에도 여전히 부정적인 국민적 시선이 존재한다. 이 중 대다수는 게임과 게임 이용 장애에 대한 그릇된 편견에 따른 오해”라며 이같이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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