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농협금융은 농협중앙회의 '열린 지갑'인가?
[디지털데일리 권유승 기자] "농협금융의 설립의 취지를 생각해야 한다."
NH농협금융지주의 부진한 성적에 대해 문제를 제기할 때마다 꼭 따라붙는 반박 논리다.
즉 "농협이 농민들의 발전을 위해 출범한 서민금융기관인 만큼, 일반 시중은행들처럼 '당기순이익'을 강조하는 것은 언론이 농협의 설립 취지를 모르고 하는 소리"라는 타박이다.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반론이다.
실제 은행의 순이익이 높다는 것, 특히 서민들을 대상으로 예금과 대출이자의 마진이 높은 '이자 놀이'로 손쉽게 돈을 버는 것은 비판을 받아야한다.
그러나 참고로 NH농협은행의 경우 올 1분기 이자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약 7% 증가했으며, 특히 대출과 예금 금리 격차에 따른 예대마진은 국내 5대 은행 중 가장 높게 나타났다.
더욱 문제는 이러한 반론과는 무색하게, 농협과 농협금융이 존립의 목적에 부합하지 않아 보이는 후진적 행태들이 여전히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먼저 농협금융은 홍콩 ELS 사태로 인한 자율배상금 이슈로 올 1분기 최악의 성적을 냈음에도, "농민들을 위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농업지원사업비'를 오히려 작년 동기보다 더 늘려 농협중앙회에 지출했다.
농협금융이 올 1분기 국내 5대 금융 중 순이익 감소율이 가장 컸음에도 불구하고 '농업지원사업비'를 전년보다 296억원이나 더 늘린 것이다.
농업지원사업비는 농협금융이 상위 조직인 농협중앙회에 매 분기마다 지출하고 있는 브랜드 값인데, 농업 지원에 쓰인다는 이유로 과거 '명칭사용료'에서 이름까지 바꿨다.
그런데 '농업지원사업비'는 이처럼 대폭 늘린 데 반해, 농협금융이 올 1분기 취약계층 및 지역 소외계층지원을 위해 책정한 사회공헌금액은 91억원에 불과하다. 작년 1분기 말 373억원과 비교해 무력 282억원이나 대폭 삭감했다. 아무리 농협 지배구조의 특수성을 고려하더라도, 쉽게 수긍할 수 없는 행태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정작 농협금융이 증액한 농업지원사업비가 농민들을 위해 '제대로' 쓰이는지 의문이라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왔기 때문이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소속의 홍문표 의원(국민의힘)은 작년 10월 국정감사 시즌에서 "농협중앙회가 농업지원사업비 절반에 달하는 금액을 부적절하게 운용해 왔다"고 질타한 바 있다.
홍 의원에 따르면 농협중앙회는 2014년부터 2022년까지 '농업지원사업비'로 모두 4조3224억원을 거둬들였다. 이 중 전체 사업비의 46%에 달하는 1조9756억원을 인건비, 특별퇴직급여, 경비 등 사업관리비 명목으로 사용했다. '농민을 위해 사용하겠다'며 걷어간 돈의 상당수를 농협 내부직원들의 잔치에 쓴 것이다.
또한 그보다 앞서 2018년 당시 농림축산식품부 역시 농협중앙회에 '농업지원사업비 운영 부정적'을 지적하고 사업관리비의 비중을 축소하고 교육지원과 유통지원사업의 비중을 늘릴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라고 통보하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농민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농업지원사업비를 증액하는 농협금융의 명분이 얼마나 구차한가.
사실 농협금융 입장에서도 농업지원사업비는 불편할 수 있다. 농협중앙회의 과도한 간섭에 울며 겨자 먹기로 눈치를 보며 지출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심이 제기되고 있어서다.
결국 이는 농협의 후진적인 지배구조와 맞닿게 된다.
특히 농협금융은 지난 2011년 엄연히 '신경분리(신용과 경제 분리)'를 단행했음에도 불구하고, 100%의 지분을 갖고 있는 농협중앙회의 입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지적을 꾸준히 받고 있다.
농협금융이 농협중앙회의 '열린지갑' 또는 '쌈짓돈'을 조달하기 위한 존재로 비취지는 것은, 농협을 위해서도 나아가 대한민국의 금융시스템의 건전성을 위해서도 결코 바람직스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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