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클로즈업] 엔씨, 김택진‧박병무 투톱으로 제2막… 위기→기회로 만든다
[디지털데일리 문대찬기자] 엔씨소프트(이하 엔씨)의 성장기가 제2막에 접어들었다. 창립 최초 공동 대표 체제로 전환하는 등 새로운 분기점을 맞은 모양새다. 이례적인 위기를 맞은 엔씨가 이를 도리어 글로벌 도약의 기회로 삼을 수 있을지 업계 눈길이 쏠리고 있다.
지난해부터 엔씨는 전례 없는 고강도 체질 개선 작업에 한창이다. 수십 년간 엔씨 성장을 견인해 왔던 ‘리니지’ 지식재산(IP) 경쟁력에 의문부호가 붙은 데다, 승부수를 던진 신규 IP 게임마저 시장의 냉혹한 평가와 마주하면서 어느 때보다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기 때문이다.
공동 대표 체제는 이러한 위기를 타개할 승부수다. 엔씨는 1997년 창립 후 줄곧 김택진 대표의 단독 지휘 속에 운영돼왔다. 김 대표와 경영 최전선에 설 인물은 박병무 VIG파트너스 대표로, M&A(인수합병)에 강점을 가진 전문 경영인이다. 그는 필요 이상으로 비대해진 조직 몸집을 줄이면서, 외부 투자를 통해 핵심인 게임 사업에 날개를 달아줄 것으로 기대받고 있다.
두 대표는 20일 미디어 대상 간담회에서 각자 청사진을 제시했다. 게임 경쟁력 강화와 내실 다지기 등 각자가 맡은 과제는 사뭇 달랐지만, 글로벌 게임사로의 도약이라는 궁극적 목표는 동일했다. 두 대표가 이날 거듭 강조한 것도 “원팀(OneTeam) 시너지”였다.
◆ MMO 명가 강점은 살리고, IP 부족 약점은 보완하고
공동 대표 시너지는 핵심 사업인 게임 분야에서 두드러질 전망이다. 김 대표는 이날 ‘새로운 재미를 줄 수 있는 게임’을 주요 과제로 삼으면서도 다소 보수적인 접근 방식을 제시했다. 엔씨 강점인 리니지 IP나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 장르와 억지로 거리를 두기보다, 이를 다른 장르와 결합하는 등 다변화하는 방향으로 신선함을 더하겠다는 계획이다.
김 대표는 “리니지라이크가 장르가 될 만큼 시장 경쟁이 심해졌지만 이는 튼튼한 고객 기반을 가졌다는 증거”라며 “해당 시장에서 경쟁력을 더 보강할 준비를 하고 있다. 기존 IP 스핀오프 게임과 MMO 슈팅, MMO 샌드박스, MMO RTS 등도 개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아마존게임즈와 협업을 통해 해외 시장에서 수요가 있는 장르인 것도 확인했다”면서 “세계적인 IP 기반 MMORPG를 만들 계획도 있다. 양날의 검이 될 수도 있겠지만 엔씨 브랜드 약점을 더 보완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엔씨는 현재 ‘배틀크러쉬’와 ‘프로젝트BSS’ 등 기존 방향성과는 다른 신작 출시를 앞두고 있다. 향후 소니 등과 협업해 글로벌을 겨냥한 프로젝트도 다수 선보일 계획이다. 다만 김 대표 발언은 자칫 IP와 장르 편중 우려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러나 엔씨는 이같은 우려를 박 내정자 지휘 아래 외부 게임 퍼블리싱과 단계적 M&A로 불식시키겠다는 계획이다. 박 내정자가 기업 성장 잠재력을 발굴하는 작업을 줄곧 진행해 왔던 만큼, 엔씨의 점진적인 포트폴리오 다각화가 기대되는 부분이다. 엔씨는 그간 꾸준히 M&A 추진 의지를 피력해왔으나, 정작 성과는 거두지 못해 고민이 깊던 참이었다.
박 내정자는 이날 “엔씨는 성공과 실패를 겪었던 투자 경험과 충성심 높은 지원 조직이 있다. 3조원 이상의 자금 동원 능력도 있다”며 적극적인 투자 의지를 드러냈다. 그러면서 소수 지분 투자를 통한 퍼블리싱으로 외부 IP를 발굴하겠다고 밝혔다. M&A도 적극 검토하되, 회사에 최대한 이익을 안겨주는 부분에 중점을 두겠다고 강조했다.
박 내정자는 “M&A는 게임 개발 역량뿐 아니라 인수 후 주주에게도 이득이 될 수 있는 재무 실적과 안정성이 중요하다. 사업 시너지와 미래 동력, 재무적 동력이라는 세 가지 관점에서 신중히 검토하겠다”면서 “적절한 기회가 오면 신속히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 멀리 내다보는 박병무, 경영 효율화도 차근차근
전문 경영인인 박 내정자가 지휘봉을 잡으면서 ‘몸집 줄이기’도 본격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그는 주요 과제 중 하나로 경영 효율화를 꼽으면서도, 장기적인 관점에서 관련 작업을 추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단기 효과만 노린 무분별한 구조조정과는 거리를 둔 셈이다.
박 내정자는 “경영 효율화는 재무적 수치만을 기반하지 않는다. 핵심 경쟁력을 강화하면서 중복된 기능은 효율화하는 선택과 집중을 하려고 한다. 숫자에만 치중한 효율화는 회사 경쟁력과 잠재력을 지닌 뿌리를 없앤다”고 경계했다.
그가 ‘돈 먹는 하마’로 불리는 야구단(NC 다이노스) 매각에 부정적인 견해를 비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당장 야구단을 매각해 얻을 수 있는 단기적 이익보다, 콘텐츠 기업으로서 야구단과 장기적으로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는 측면이 많다는 계산이다.
박 내정자는 “실적이 악화한 현 시점에서 주주분들이 야구단 운영에 우려를 표하고 있는 것은 잘 안다”면서도 “신규 게임 마케팅 측면, 우수 인재를 리크루팅하는 측면, 콘텐츠 기업으로서 야구단과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다는 측면이 크다. 매각보다는 비용을 효율화해 운영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엔씨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본다”고 설명했다.
주주가치 제고 방안에 대해서도 이같은 기조를 견지했다. 자사주 추가 취득이나 소각으로 당장의 주가 상승을 노리기보다, 이를 M&A 등에 활용해 주주가치를 보장하겠다는 것이다. 엔씨는 최근 20만원선이 깨지는 등 주가가 거듭 하락하고 있다.
박 내정자는 “기업 실적 개선, M&A로 인한 성장이 주주가치 제고 방안이라고 생각한다. 자사주 취득과 배당도 이러한 주주가치 제고의 한 축이지만 단기적인 효과일 뿐이라고 생각한다”면서 “현재 자사주 취득보다 많은 자사주를 이미 가지고 있다. M&A를 하는 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수단이 될 수 있으므로 조금만 인내를 가지고 지켜봐달라”고 당부했다.
◆ 시장 트렌드 맞춘다… AI 활용으로 신작 개발 속도
한편, 엔씨는 올해 인공지능(AI)을 적극적으로 업무에 활용해 신작 개발에 속도를 낼 계획이다. 김 대표는 앞서 AI 연구·개발(R&D) 조직을 대표 직속 리서치 본부로 통합하면서 AI 활용 의지를 강하게 드러내기도 했다.
엔씨 구성원들은 지난해부터 자체 언어모델 ‘바르코(VARCO)’를 기반한 창작 도구 ‘바르코 스튜디오’를 개발 과정에 활용 중이다. 게임 제작에 최적화된 모델로써, 엔씨 IP에 최적화된 아트와 텍스트 등 개발 리소스를 단시간에 제공해 개발 속도를 대폭 끌어올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김 대표는 “많은 개발사가 막대한 제작비와 긴 제작 기간으로 사업 지속이 어려워진 상태”라며 “AI 기술을 게임 제작에 적극 도입해 비용 효율성과 제작 기간 단축으로 창작 집중성을 만들고자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날 팬데믹으로 인해 출시가 지체된 작품이 시장 변화를 따라가지 못한 것이 실적 부진의 원인으로 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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