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S 모델’ 참조?… 오히려 의문남은 ‘우리금융 IT전략’개편
[기획/금융IT 거버넌스①] 디지털전환의 광풍, 혼돈의 IT 전략
‘디지털전환’이 급속도로 진행되면서 이를 지원하기위한 금융권 IT개발 및 운영방식도 크게 바뀌고 있다.
신속한 의사결정을 위한 IT조직의 애자일(Agile)화, 데브옵스(DevOps)방식 등 소프트웨어적인 방법론이 강화되고 물리적 조직형태도 변화되고 있다.
<디지털데일리>는 국내 주요 금융회사들을 중심으로 2024년 금융권에서 시도되고 있는 다양한 형태의 IT거버넌스 변화를 짚어본다. <편집자>
[디지털데일리 박기록 기자] 지난 11일 오전, 우리금융 본점에서 개최된 ‘IT거버넌스 개편’ 전략 설명회에서 우리금융지주 옥일진 부사장은 “싱가포르의 DBS은행을 모델로 참조했다”고 밝혔다.
직원수 2만2000명이 넘는 DBS는 싱가포르 정부가 대주주인 국책은행으로, IT혁신과 디지털화에 성공한 대표적인 글로벌 은행으로 꼽힌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날 우리금융이 기존 IT 외부위탁(아웃소싱)에서 자체 인력중심의 인소싱(Insourcing) 전환의 성공사례로 제시한 ‘DBS 모델’을 비교한 것은 몇가지측면에서 의문이 남는다.
DBS 은행이 IT아웃소싱 규모를 축소한 것은 맞지만 엄밀히보면 구형 모델인 토털IT아웃소싱 모델에서 탈피, 클라우드 비중을 늘려가면서 오히려 새로운 형태의 IT아웃소싱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다고 봐야하기 때문이다.
DBS의 사례는, 과거 국내에서 교보생명이 IBM과의 IT아웃소싱 계약을 종료하고, 다시 외부 클라우드서비스(CSP)기업들과 제휴해 저비용 구조의 IT인프라의 아웃소싱 비중을 유지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현재 클라우드로 그 형태가 바뀌고 있을 뿐 금융회사들이 IT아웃소싱을 선택하는 가장 큰 이유는 여전히 IT비용절감이다.
◆DBS IT아웃소싱 축소 직접적 이유는 'IBM 메인프레임 종속성' 문제때문
앞서 DBS은행은 2002년 IBM과 10년간의 계약 (2002~2012년)을 체결하면서 IT아웃소싱을 시작했다.
계약규모는 12억 달러(한화 1조6000억원)에 달했다.
아웃소싱 대상은 DBS의 IT인프라 관리를 비롯해 애플리케이션 개발 및 운영 유지보수, 네트워크 서비스, 데이터센터 운영이다. 소위 IT를 통째로 맡기는 ‘토털 IT아웃소싱’이다.
그러나 지난 2010년 7월, DBS은행이 3시간 넘게 치명적인 전산장애가 발생하면서 큰 문제가 됐다. 싱가포르 금융당국은 DBS에 거액의 벌금을 부과했고, DBS의 대외 신뢰도가 크게 추락했다.
이 사건이후 DBS는 2013년 재계약 갱신에선 IBM과의 IT아웃소싱 범위를 보안 등 일부 업무로 크게 축소한다.
아울러 DBS는 자체 IT인력 비중을 늘렸고, 동시에 아마존웹서비스(AWS) 등과 퍼블릭 클라우드서비스를 단계적으로 확대하는 등 IT인프라 운영의 위험 분산을 꾀했다. 클라우드도 IT아웃소싱이다.
결과적으로보면, 우리금융이 이번 IT전략 개편의 이유로 크게 강조한 연간 150억원의 IT비용절감 효과와 DBS의 IT아웃소싱 축소 이유와는 크게 결이 다르다.
즉, DBS는 단순히 IT비용절감을 위해 자체 IT인력비중을 높인 것이 아니다.
현재 DBS는 IBM 메인프레임을 주전산시스템으로 채택하고 있다.
DBS의 입장에선, 안정적이지만 폐쇄적 운영체제(OS)가 단점인 IBM의 메인프레임(z시리즈) 체제하에서는 디지털화가 더 강력하고 광범위하게 진행될수록 IBM에 지불해야할 라이선스 비용이 급증할 것으로 예상했다.
즉, 디지털화가 강화되면서 'IBM 밴더 종속성 문제'가 DBS은행에 치명적인 고민이 된 것이다.
이에 대응하기위해서는 DBS가 IBM 메인프레임을 더 이상 사용하지않거나 아니면 기존 시스템 환경하에서 비용이 적게되는 오픈소스 기반으로 운영체계를 전환하는 전략을 취해야한다.
IBM은 오픈소스 전문기업인 레드햇을 인수해 이같은 ‘메인프레임 고비용 구조’의 단점을 방어하고 있다.
결국 DBS는 IBM 메인프레임에 올려야할 다양한 애플리케이션과 서비스가 늘어나면서 IT비용이 걷잡을 수 없을 것으로 예상했고, 이후 오픈소스 환경이 강화된 IBM 메인프레임으로 전환했다.
따라서 DBS은행이 자체적으로 늘린 IT인력은 이러한 오픈소스 전문가들, AI 및 빅데이터, 클라우드 전문인력들이 중심이다.
이들을 통해 시스템 운영 비용의 증가를 방어하겠다는 것이고, 결국 이것이 DBS의 입장에서 본 IT비용절감 효과라는 것이다.
우리금융측은 외주개발 비용, 중복업무 개선 효과 등 IT인력의 인건비(판관비)를 통해 IT비용절감 효과를 제시했는데, DBS의 IT비용절감 효과 접근 방식과는 확연하게 차이가 난다.
◆DBS가 늘린 자체 IT인력은 오픈소스, 클라우드 전문가 중심
그런데 주목할것은, 우리은행은 지난 2018년 5월 차세대시스템 사업을 통해 기존 IBM 메인프레임 환경에서 탈피해 개방형 유닉스 기반의 주전산시스템 환경으로 전환했기 때문에 DBS와 동일한 형태의 고민은 크게 없었다는 점이다.
현재 국내 대형 시중은행중에서 IBM 메인프레임을 주전산시스템(계정계)으로 사용하고 있는 은행은 KB국민은행이 유일하다.
엄밀히 말하면, DBS의 IT 거버넌스 혁신사례가 가장 직접적으로 투영돼야할 금융회사는 우리금융이 아니라 오히려 KB금융이다.
우리은행은 이번 IT전략 개편에 따라, 현업과 IT인력의 협업으로 개발 기간을 기존보다 50% 단축 시킬 것이라고 밝혔는데, 이같은 IT개발 생산성과 관련해 DBS 사례에서 따로 제시된 수치는 없다.
결국 종합해보면, 연간 150억원의 IT비용 절감과 확실히 검증되지 않은 개발감축 기간 50%의 단축 효과만으로, 우리금융이 지난 20년간 우리금융이 축적해온 SSC(Shared Service Center)방식의 IT운영 전략을 단숨에 뒤엎었어야했는지 의문이 남는다.
우리금융측은 이날 DBS가 지난 2016년 IT운영을 자체수행으로 전환한 후 도약의 전기를 맞았으며, 이같은 자체 IT역량을 바탕으로 350개의 API를 개발하는 등 디지털화를 통한 비이자 수익원을 발굴한 결과, 시가 총액이 2.2배가 상승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다소 논리의 비약이다.
금융회사의 실적은 IT경쟁력외에도 실제 애플리케이션의 경쟁력, 디지털 서비스 경쟁력, 시장의 상황과 규제 리스크 대응, 내부통제 리스크 등을 모두 복합적으로 고려해야하기 때문이다.
인터넷 기반의 정보화가 본격화되면서 한 때 국내 금융권에서도 ‘IT가 만능’이라고 생각했던 시대가 있었지만 더 이상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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