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법 추진’ 공정위, 앞만 보고 직진? 디경연 만남 왜 무산됐나
[디지털데일리 왕진화 기자] 지난해 말 공정거래위원회가 ‘플랫폼 공정 경쟁 촉진법(가칭)’ 제정 계획을 밝힌 이후 플랫폼 업계는 하루하루 목이 타들어가고 있다. 특히 플랫폼 업계는 공정위가 업계 의견 수렴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의원 입법으로 법안을 강행 처리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한다.
이러한 우려는 업계 뿐만이 아니다. 플랫폼 입점 사업자 및 일부 소비자 단체도 각각 해외 플랫폼의 수수료 상승 및 편의·혜택 축소에 우려를 나타내며 입법 추진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9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는 이날 벤처기업협회, 코리아스타트업포럼, 한국디지털광고협회, 한국온라인쇼핑협회, 한국인터넷기업협회 등 정보기술(IT) 협·단체 연합체인 ‘디지털경제연합’과 간담회를 갖고 플랫폼 공정 경쟁 촉진법 관련해 면담을 진행하려 했지만 양측 입장이 갈리며 무산됐다.
플랫폼 공정 경쟁 촉진법은 소수 핵심 플랫폼을 ‘지배적 플랫폼 사업자’로 지정하고, 이들 사업자에 자사 우대와 멀티호밍 제한(자사 플랫폼 이용자에 경쟁 플랫폼 이용을 금지하는 행위) 등 플랫폼 시장 반칙 행위들을 금지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사후규제가 아닌 사전규제다.
◆IT·플랫폼 업계, “가뜩이나 어려운 국내 온라인 플랫폼에 사약”=공정위는 관계부처와 당정협의 등을 거쳐 플랫폼 공정 경쟁 촉진법 지정 기준과 제재 수위 등을 조만간 발표할 계획이다. 매출액·이용자 수·시장점유율 등 정량 요건에 더해 해당 플랫폼 시장 진입 장벽과 시장 내 영향력 등 정성 요건까지 종합적으로 고려하게 된다.
그간 디지털경제연합은 추진 소식이 알려지자 “최근 온라인 쇼핑 분야에서 중국 알리바바그룹 해외직구 사이트인 알리익스프레스 국내 이용자 수가 2위까지 올라온 상황에서 온라인 플랫폼 사전규제는 가뜩이나 어려운 국내 온라인플랫폼에 사약을 내리는 것”이라며 공정위를 강도 높게 비판해왔다.
이에 따라, 디지털경제연합을 포함한 플랫폼 관련 협·단체들은 공정위가 추진 중인 플랫폼 공정 경쟁 촉진법 내 지배적 사업자로 분류하는 기준이나 대략적인 초안 등을 오늘(9일) 면담 전 미리 보게 해달라고 공정위 측에 요구했다. 그러나 공정위는 이에 대한 명확한 답을 내놓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초안을 먼저 보게 해달라고 요청한 이유는 여러 갈래로 나뉘지만, 정부가 추진하는 플랫폼 공정경쟁촉진법이 박주민 의원(더불어민주당)이 대표 발의한 ‘온라인 플랫폼 독점규제에 관한 법률안’과 비슷하다는 주장도 나오면서다.
박주민 의원이 대표 발의한 법안에 따르면 규제 대상 기업은 ▲시가총액 30조원 이상 ▲직전 3개연도 연평균 플랫폼 서비스 제공 매출액 3조원 이상 ▲직전 3개연도 온라인 플랫폼 이용자 월평균 1000만명 이상 또는 국내 이용사업자 수 월평균 5만개 이상 사업자다.
다만 공정위는 지정 기준과 제재 수위가 박 의원 법안과 전혀 다르다는 입장이다. 조만간 공정위가 지정 기준과 제재 수위 등을 담은 법 추진 내용을 공개할 예정이지만, 온라인 플랫폼 업계는 해당 법 추진 자체가 글로벌 기업과 경쟁해야 하는 국내 플랫폼 사업자에게 족쇄를 채우는 조치라고 반발한다.
◆플랫폼 공정 경쟁 촉진법, 업계만 반대? NO…소상공인·소비자도 우려=이러한 우려는 업계에서만 나오는 게 아니다. 온라인 플랫폼에 입점해 있는 중소상공인들이나 소비자도 해당 법안에 대해 반대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일부 소비자들은 공짜 웹툰이나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까지 사라지게 만드는 법이라고 보고 있다.
국내 1500곳의 중소 플랫폼 판매자들로 구성된 단체인 한국플랫폼입점사업자협회도 지난 8일 입장문을 내고 “새로운 판로확보와 매출신장의 기회마저 위협하는 플랫폼 공정 경쟁 촉진법 제정을 중단하고, 온라인 플랫폼 산업을 통한 진정한 상생방안을 모색해달라”고 촉구했다.
이들이 한데 모여 입장문을 낸 배경엔 이번 법안 추진이 국내 플랫폼 기업에 대한 역차별을 초래해 결국 해외 공룡 플랫폼들이 한국 시장을 장악하게 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구글, 알리익스프레스 등 글로벌 거대 플랫폼 사업자들이 국내법을 피해 더욱 빠르게 소비자를 흡수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최근 알리익스프레스, 테무 등 중국 기업들이 자본력을 앞세워 초저가 전략을 무기로 국내 온라인 쇼핑 시장 점유율을 빠르게 잠식하고 있다. 올해는 유튜브가 카카오톡을 앞지르고 국내 1위 플랫폼에 등극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실제 모바일 빅데이터 기업 아이지에이웍스의 모바일인덱스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카카오톡 월간활성이용자수(MAU)는 4102만1737명으로 1위를 유지했지만, 2위인 구글 유튜브(4102만1401명)와의 차이는 336명에 불과했다.
한국플랫폼입점사업자협회는 “만약 국가 경제의 기반인 중소상공인들의 온라인 판로가 소수의 해외 플랫폼 서비스에 장악당하고 의존하게 된다면 국민의 경제적 미래는 불투명해질 것”이라며 “해외 공룡 플랫폼들이 국내 시장을 장악하게 되면 결국 현재보다 훨씬 살인적인 수수료와 거래조건을 강요할 것이 자명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그때는 그들을 통제하거나 제한할 시장이나 국내 기업들이 남아 있지 않고 결국 정부도 국회도 아무도 책임지지 않은 채 이번에도 그 피해는 우리 중소상공인들만이 부담하게 될 것이라는 필연적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소비자정책 감시단체인 컨슈머워치 또한 해당 법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명하며, 소비자 관점에서 전면 재검토할 것을 강력히 촉구했다. 컨슈머워치는 “현재 논의되고 있는 온플법은 절대다수의 소비자가 플랫폼 서비스를 통해 누리는 각종 혜택과 편의를 앗아갈 우려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결과적으로 해외 공룡 플랫폼 기업의 배만 불리고 국내 시장 침투를 오히려 손쉽게 만드는 폐해도 예상된다”며 “이미 중국 기업 알리, 테무가 무섭게 국내 소비자를 유인하고 있는 가운데 국내 기업의 발목만 잡는 것은 어리석은 접근”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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