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 전산망 마비에도 장관은 해외로… “정부, 사태 심각성 인지하고 있나?” 국회서 질타
[디지털데일리 이종현기자] “정부가 과연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도대체 뭘 검토하고 있나. 뭘 얘기하려고 이 자리에 왔나. 정부가 원인을 얼마나 파악했는지, 계획을 어떻게 세우고 있는지, 피해를 어떻게 수습해줄지 알 수가 없다.” (기초소득당 용혜인 의원)
23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행정안전부를 향한 질타가 쏟아졌다. 17일 발생한 행정 전산망 마비 사태와 관련된 건으로, 국회에는 해외 출장으로 자리를 비운 이상민 장관 대신 고기동 차관이 출석했다.
본격적인 회의에 앞서 고 차관이 행정 전산망 장애복구 현황을 보고했다. 17일 오전8시46분경 공무원들이 인증을 위해 사용하는 정부공개키인프라(GPKI) 시스템에서 장애가 발생했고, 이로 인해 지방자치단체에서 사용하는 행정 전산망 ‘새올’과 ‘정부24’ 등의 서비스가 영향을 받았다고 발표했다.
장애 이후 GPKI 시스템의 서버, 네트워크 등을 점검한 결과 네트워크 장비에 이상이 있는 것을 확인했고 문제가 되는 네트워크 장비를 교체한 후 시스템 안정화를 위한 테스트를 거쳐 18일 새벽 새올 시스템이 정상 작동함을 확인, 18일 오전9시 정부24 서비스도 재개했다고 설명했다. 21일 민간 전문가가 참여하는 행정 전산망 서비스 개편 TF 활동을 개시했고 상세한 원인 분석을 토대로 재발방지 대책을 세우겠다고도 부연했다.
이와 같은 고 차관의 설명은 앞서 행정안전부가 발표한 내용과 같다. 새로이 파악한 내용 없이 여전히 파악 중이라고만 하는 고 차관에게 야당 국회의원들은 맹공을 퍼부었다.
용혜인 의원(기초소득당)이 “차관의 답변을 보면 정부가 과연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든다. 당시 새올이나 정부24뿐만 아니라 온나라시스템, 국민재난관리시스템(NDMS) 등까지 먹통이었다고 한다. 장애가 정부와 지자체 시스템 어디까지 미쳤는지 확인했나”라는 질의에 고 차관은 “여러 시스템에 장애가 있었다는 것은 알고 있다”고만 답하며 구체적인 답변을 피했다.
이중화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부분도 비판받았다. 고 차관은 “네트워크 장비는 이중화가 돼 있었다. 첫 번째 장비에 장애가 발생했고 자동으로 두 번째 장비로 넘어갔지만, 두 번째 장비에서도 장애가 발생했다”고 말했다.
다수 의원이 16일 국가정보자원관리원이 진행한 GPKI 시스템 업그레이드가 장애의 계기가 된 것 아니냐고 묻자 고 차관은 “전날 있었던 패치와의 인과관계는 아직 파악되지 않았다. 대책반에서 이 부분까지 살펴볼 예정”이라고 답했다.
강병원 의원(더불어민주당)은 “아직까지도 정확한 원인 규명이 안 되고 있다. 네트워크 장비, L4 스위치를 교체해 해결했다고 한다. 그러면 문제가 생기면 또 장비 교체하면 되는 거냐”며 미진한 원인분석에 대해 비판했다.
또 “지난 카카오 먹통 사태 때 대통령은 ‘전쟁 같은 비상 상황에 카카오톡이 먹통이 되면 어떻게 할 것인가’라며 직접 언급했다. 민간 기업의 일에도 대통령이 강하게 비판했다. 결국 카카오 대표가 사퇴하고 5000억원상당의 보상안도 제시됐다. 카카오 먹통보다 더 심각한 행정 전산망 사고에 유체이탈하는 식으로, 관망해서 되겠나”라고 쏘아붙였다.
권인숙 의원(더불어민주당)은 3월 법원 전자소송시스템, 6월 교육행정정보시스템(NIES) 등 대형 행정망이 마비되는 일이 반복됐음에도 대응 매뉴얼이 부재함을 꼬집었다. 또 사고 발생 이후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카카오와 관련 재난문자를 보냈던 것과 달리 행정 전산망 사태 때는 재난문자도 보내지 않았다는 점도 문제 삼았다.
용혜인 의원은 “가장 큰 문제는 어떤 자료도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사고 발생 이후 긴급으로 자료 제출 요구했지만 오지 않았다. 차관도 와서 ‘검토하겠다’, ‘적절히 조치하겠다’ 이런 추상적인 얘기만 하고 있으니 오늘의 현안이 한 번으로 끝날 수가 없다. 모든 자료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공개해 달라”고 피력했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가 진행된 23일 조달청 나라장터에서도 1시간 남짓의 장애가 발생하자 여당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조준희 의원(국민의힘)은 “지난 1년간 국가 전산망이 마비된 게 5번째다. 단순히 넘길 일이 아니다. 차관이나 정부는 네트워크 장비라고 하는데, 뭔가 더 있는 것 같다. 만약 그랬으면(장비 문제였다면) 금방 복구돼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 정보기술(IT) 업계 전문가들은 정부의 ‘L4 스위치 문제’라는 발언에 의구심을 드러내는 중이다.
그는 “여러 시스템이 업데이트되다 보니 서로 충돌이 생겼다고도 하는데 이에 대한 점검을 해보라”라며 “또 중요 전산망을 업데이트할 때 백업시스템까지 동시에 하나. 시중은행은 시스템 업그레이드와 패치를 할 때 1개월 전부터 공지하고 중단되는 서비스 내용을 알린다. 왜 그렇게 쫓기듯 해서 디지털 정부에 먹칠을 하냐”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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