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클로즈업] 엔씨 리니지M-웹젠 R2M 저작권 싸움, 1심 판결문 뜯어보니
[디지털데일리 왕진화 기자] 웹젠 ‘R2M’이 엔씨소프트 ‘리니지M’을 모방했다는 취지의 1심 판결이 나왔다. 1심 법원은 R2M이 리니지M 각 구성 요소 등을 무단으로 사용해 부정경쟁행위를 위반했다고 보면서도, 리니지M이 저작물에 해당하지는 않는다고 봤다.
즉, 법원은 엔씨소프트 리니지M 그 자체의 저작권을 인정하기 보다는, 엔씨소프트가 리니지M에 상당한 노력과 투자를 해오면서 구축한 인게임 시스템 등의 상품 가치를 인정했다. R2M이 리니지M 성과를 무단으로 사용하고 있어, 독창적인 고객흡인력도 적다고 봤다.
지난 18일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61부(부장판사 김세용)는 엔씨소프트가 웹젠을 상대로 낸 저작권 침해 중지 등 청구 소송을 원고 승소로 판결하고 “R2M 이름으로 제공되는 게임을 일반 사용자들에게 사용하게 하거나 이를 선전·광고·복제·배포·전송·번안해서는 안 된다”고 판시했다. 법원이 리니지M을 모방해 운영해온 웹젠 R2M의 서비스를 중단하라고 요구한 것이다.
앞서 엔씨소프트(이하 엔씨)는 웹젠에서 지난 2020년 8월 출시 후 서비스 중인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 게임 ‘R2M’에서 자사 MMORPG 게임 ‘리니지M’을 모방한 듯한 콘텐츠와 시스템을 확인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지난 2021년 6월 웹젠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리니지M은 2017년 6월부터 정식 서비스돼온 엔씨 대표 타이틀이다. 당시 엔씨 측은 관련 내용을 사내외 전문가들과 깊게 논의했으며, 엔씨 핵심 지식재산권(IP)을 보호할 필요를 느껴 소송 제기를 결정했다고 설명한 바 있다.
◆판결문 살펴보니…법원, 엔씨의 저작권 침해 주장은 기각=이는 소송을 제기한 지 약 2년 2개월만에 나온 판결이다.
엔씨는 웹젠을 상대로 2건의 청구를 제기했다. 바로 ‘부정경쟁방지법 위반 혐의’와 ‘저작권침해 중지 혐의’다. 이번 소송 최대 쟁점은 게임이 가진 고유한 시스템의 저작권법상 보호 대상 해당 여부를 법원이 어떻게 판단하느냐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법원은 엔씨 저작권 침해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다만 웹젠이 R2M으로 부정경쟁방지법을 위반했다고 봤다.
판결문에서 재판부는 “이미 존재하던 게임 규칙을 변형하거나 차용한 것으로 창작성을 인정할 수 없거나 설령 독창성·신규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저작권의 보호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판결이 나오기 전까지 진행됐던 변론기일에서 엔씨소프트는 웹젠이 리니지M 구성 요소와 구성 요소 간의 밸런스, 사용자 인터페이스(UI) 등을 표절해 R2M에 거의 동일하게 구현했다고 주장했다. 두 게임을 보면 버전만 다른 동일한 게임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예컨대, 엔씨는 R2M에서 몬스터를 사냥하면 보너스 보상을 주는 시스템인 ‘유피테르의 계약’이 리니지M ‘아인하사드의 축복’ 시스템을 표절했다고 봤다. 무게·강화·아이템 컬렉션 시스템 등도 리니지M에서 그대로 가져왔다고 판단했다.
웹젠은 “리니지M 구성요소 및 메인 사용자 인터페이스(UI)와 R2M 구성요소 및 메인 UI를 대비해보면 실제와 유사하지 않고, 각 구성요소가 MMORPG 전체에서 차지하는 양적·질적 비중 등을 고려할 때 웹젠은 엔씨 저작권을 침해했다고 볼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특히 리니지M의 선택·배열 및 조합, 경제 시스템 등은 엔씨의 상당한 투자나 노력으로 만들어진 성과에 해당한다고 할 수 없다”며 “설령 성과에 해당한다고 해도, 이는 MMORPG 업계에서 보편화돼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공공영역에 속하므로, 웹젠이 엔씨 성과를 사용했다 해도 그 행위가 공정한 상거래 관행이나 경쟁질서에 반한다고 할 수 없다”고 부연했다.
즉, 웹젠은 게임 규칙 자체가 (저작권) 보호 대상이 아니라는 입장이었다. 이 과정에서 웹젠은 리니지M 원작인 리니지가 1987년 출시작인 고전 역할수행게임(RPG) ‘넷핵’(Nethack) 각종 요소를 그대로 가져왔다고도 주장했다. 다른 게임 시스템을 차용하는 것이 게임업계에서 흔히 있는 일이라고 호소했다.
◆항소심 엔씨 “1심 청구 범위 확장” vs. 웹젠 “부정경쟁행위? 인정 못해”=법원은 엔씨의 저작권 침해 주장을 기각했지만 웹젠이 R2M 개발 과정에서 리니지M 종합적인 시스템을 그대로 차용해 모방했고, 엔씨 경제적 이익을 침해했다며 부정경쟁방지법이 금지하는 행위에 해당한다고 봤다.
판결문에 따르면 재판부는 ▲직장 인증이 필요한 ‘블라인드’ 앱 글에서 이 사건 관련 언론기사 댓글에 “오마주 모티브 아닙니다. 그냥 아예 카피해라가 지시였던 게임”이라는 내용이 확인되는 점 ▲피고 직원이 이 사건과 관련 형사사건 수사기관 조사 시 리니지M에서 카드 뽑기 아이템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카드 등급별 획득률을 참고했다고 진술한 점 등에 비춰 웹젠 R2M이 이 사건 각 구성요소의 선택·배열 및 조합을 거의 그대로 차용했다고 보는게 타당하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엔씨는 1000억원 이상 등 리니지M에 상당한 투자나 노력을 기울여 이 사건 각 구성요소의 선택, 배열, 조합을 구현함으로써 종합적인 시스템을 구축했음을 인정할 수 있다”고 부연했다. 이에 재판부는 웹젠이 엔씨에게 손해배상금 10억원을 지급하고, 다 갚는 날까지 연 12%의 비율로 계산한 지연손해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소결론을 냈다.
엔씨는 1심 청구 금액은 일부 청구 상태로, 항소심(2심)을 통해 청구 범위를 확장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웹젠은 “1심에서 주된 쟁점인 엔씨 측의 저작권침해 주장은 기각됐으나, 법원이 부정경쟁행위로 인정한다고 판결한 점에 대해 다툴 예정”이라며 항소장을 제출했다고 밝혔다.
이날 웹젠은 판결 직후 R2M 지난해 매출 총액이 329억원으로, 연결 기준 전체 매출의 13.59%에 해당한다고 공시했다. 1심 법원은 R2M 서비스를 중지하라고 주문했지만, 양사가 항소심을 준비하게 되면서 서비스 또한 당분간은 지속되게 됐다. 다만 이번 1심 판결로 인한 부정적 영향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박광엽 웹젠 게임사업본부장은 R2M 커뮤니티에 “R2M 게임 서비스가 실제로 중단되는 사례가 발생하지 않도록 신속한 법적 대응을 마련하고 있다”며 “많은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는 항소심의 법원 판단이 마무리될 때까지 R2M의 서비스가 멈추는 일은 없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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