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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백과] ‘망중립성’과 새로운 인터넷 규범의 필요성

권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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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데일리 권하영 기자] 지난 2003년 탄생한 ‘망중립성’(Net Neutrality) 개념이 최근 들어 다시 주목받고 있다. 글로벌 콘텐츠제공사업자(CP)와 인터넷제공사업자(ISP)간 망이용대가 논쟁을 통해서다. ISP로부터 망이용대가를 요구받고 있는 CP 진영에서 이것이 망중립성에 위배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기 때문이다. 과연 망중립성은 무엇이고, 망이용대가와는 무슨 관계가 있을까?

망중립성이란 ISP가 합법적인 인터넷 트래픽을 그 내용·유형·제공사업자 등에 관계없이 동등하게 처리해야 한다는 원칙으로, 2003년 컬럼비아 대학교의 팀 우(Tim Wu) 교수에 의해 정립됐다. 망중립성은 쉽게 말하자면 누구나 차별 없이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얘기인데, 사실 그 함의는 보다 복잡하다. 망중립성이 금지한 3가지는 ‘차단 금지’(No Blocking) ‘조절 금지’(No Throttling) ‘대가에 의한 우선처리 금지’(No Paid Prioritization)로, 그 전제는 ISP의 ‘트래픽 관리 행위’가 있어선 안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망에 대한 이용대가를 지불하라고 하는 ISP의 요구는 망중립성 위반일까? 망중립성이 금지한 3가지 중 망이용대가와 비슷하다고 여겨지는 게 ‘비용을 더 받고 특정 트래픽을 우선처리’하는 행위다. 하지만 망이용대가는 트래픽을 우선처리해주고 받는 ‘웃돈’과는 조금 다른 개념으로 보여진다. ISP들은 망이용대가의 경우 데이터 트래픽 증가에 따른 접속 및 확장 비용을 지불해달라는 의미라고 강조한다. 대표적으로 넷플릭스에 망이용대가 지급을 요구하는 SK브로드밴드처럼 말이다.

정부와 법원 역시 망중립성이 망사용료와 무관함을 밝힌 바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트래픽 관리 행위를 수반하지 않는 ISP와 CP간 비용 계약에 대해서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했고, 넷플릭스와 SK브로드밴드 소송 1심 재판부는 “인터넷 유상성을 논의하는 망이용대가와, 트래픽 차별을 금지한 망중립성은 직접적 관련이 없다”고 판결했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도 10월 보고서를 통해 “넷플릭스에 대한 SK브로드밴드의 망사용료 지급 요구가 망중립성 위반이라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고 평가했다.

망이용대가가 망중립성과 무관하다는 것은 과거 미국의 통신사 컴캐스트와 레벨3 분쟁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2010년 12월 컴캐스트는 넷플릭스의 트래픽 증가에 따른 트래픽 불균형을 이유로 레벨3에 추가적인 대가를 요구했고, 레벨3는 컴캐스트의 접속비용 인상 요구를 망 중립성 위반으로 제소했는데, 당시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는 이를 상호접속 분쟁으로 해석하고 망중립성과는 별개라고 선그었다. 이 일은 결국 2014년 2월 넷플릭스가 비용을 지불하고 컴캐스트에 직접접속하는 것으로 일단락하게 된다.

망중립성 원칙 자체가 반드시 지켜야 하기에는 원체 낡은 개념이라는 문제도 있다. 무려 20년 전 만들어진 망중립성은 문자나 이메일 트래픽 정도를 처리하던 시절에나 적합한 것이고, 동영상 시대에 접어들며 글로벌 CP들이 유발하는 트래픽이 폭증한 지금에는 적용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새로운 인터넷 규범의 필요성이 요구되는 이유다. KISDI는 동 보고서에서 “ISP는 네트워크만을, CP는 콘텐츠만을 책임지는 모델은 소수의 초대형 CP가 지배하는 시장과는 양립하기는 어렵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영국 미디어 정책기관인 오프컴은 지난달 망중립성 검토를 위한 보고서를 발간했다. 2016년 수립돼 실행 중인 유럽연합(EU)의 망중립성 정책을 재검토하면서 새로운 환경에 맞는 정책 수립을 예고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내년 1월까지 정책 방향에 대한 의견을 수렴한 뒤 2023년 가을 최종안을 발표할 것으로 계획돼 있다. 기존 망중립성 정책 수립 후 최근까지 발생한 인터넷 생태계의 큰 변화가 배경의 중심에 있다.
권하영
kwonhy@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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