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데일리 신제인 기자] 이태원 참사와 같은 압사사고에서 사람의 호흡이 완전히 멈춘 뒤 4분에서 11분 사이에 심정지가 나타난다는 연구 결과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지난해 영국 워릭대 임상의학 연구팀은 지난 1989년 4월 영국의 힐스버러 축구 스타디움에서 발생한 압사 사고의 원인과 사망 매커니즘을 분석한 논문을 발표했다.
영국에서는 당시 이 사고로 96명이 숨지고 200명 넘게 다쳤다.
연구팀은 오랜 시간에 걸쳐 이 사고 상황을 분석한 결과, 대규모 군중 사이에 끼었던 사람의 전방과 후방에서 작용하는 압력이 폐의 팽창 능력을 제한하고 호흡 능력을 떨어뜨려 저산소혈증을 유발하는 과정을 거쳤다고 판단했다.
저산소혈증으로 뇌에 혈액을 공급하는 동맥혈의 산소 농도가 정상치(96∼99%)보다 낮은 56%에 도달하면 의식이 없어진다는 게 연구팀의 분석이다.
연구팀은 앞뒤로 큰 압박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이 정도까지 도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불과 1∼2분 정도에 불과할 가능성이 높다고 추정했다.
또 호흡이 완전히 멈춘 뒤 심정지가 발생하기까지는 최초 4분에서 최장 11분이 걸릴 수 있다는 추론도 동물실험 결과를 인용해 제시했다.
이외에도 연구팀은 가슴과 복부에 심한 압박을 받으면 흉부 내 압력이 높아져 심장으로 정맥 회귀가 줄고, 이런 현상이 저산소혈증과는 독립적으로 심박출량과 혈압을 떨어뜨릴 개연성도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런 과정이 1분 이내에 발생할 수 있다는 의견도 함께 제시했다.
국내 응급의학 전문의들은 영국 연구팀이 발표한 해당 논문이 사고 발생 후 30여 년이 지나 나온 것에 주목하며, 우리도 사고원인을 철저하게 규명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용인세브란스병원 응급의학과 이경원 교수는 "영국이 30여 년 전 압사 사고의 원인을 오랜 시간 규명할 수 있었던 데는 재난사고 피해자들에게서도 사인 파악을 위한 부검이 가능하다는 점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빠른 원인 규명보다 부검 등을 통해 명확한 원인을 밝히는 게 더 중요하다는 시사점이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