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반도체 위기 예언한 이종호 후보자…"추격·모방 벗어나야"
- 이종호 과기정통부 장관 후보자 2015년 ‘축적의 시간’ 발간
- 원광대 재직시절 핀펫 3D 반도체 기술 한국·미국 특허출원
- 국내기업 기술 외면, 인텔이 CPU에 적용해 한국기업 기회 날려
- 추격·모방 중심 한국 대기업, 선제적 지식 ·경험 축적 어려워
[디지털데일리 백지영기자]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후보자는 원광대 재직 시절인 2000년대 초반 카이스트와 핀펫(FinFET)이란 3D(3차원) 반도체 기술을 개발해 한국과 미국에 특허 출원 하고 국내 모 기업에 먼저 기술 이전을 제안했다. 1년 간 새로운 기술 도입의 당위성을 열정적으로 설명했으나 논의가 진척되진 못했다. 결국 인텔이 2011년 이 특허에 기반한 3차원 소자기술을 반도체(CPU) 생산에 적용했다. 60여 년의 반도체 역사에서 최초로 3차원 소자를 CPU 양산에 적용한 기업으로 기록된 것이다. 국내기업은 2000년대 초중반에 핀펫을 먼저 시작할 수 있었던 기회가 많았음에도 하지 않았다. 반도체 역사의 한 페이지를 한국기업이 당당하게 장식할 수 있었을 것이다. 충분히 1등을 할 수 있는 여유가 있었는데 결국은 2등을 한 셈이다.
윤석열 정부의 초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정통부) 장관으로 임명된 ‘반도체 전문가’ 이종호 후보자가 지난 2015년 서울대 공대 교수 26명과 함께 한국 산업의 위기를 진단하고 미래의 방향을 제시한 저서 ‘축적의 시간’에서 대기업의 신기술 도입 의사결정에 대한 안타까움이 묻어난다.
이 책은 이정동 서울대 산업공학과 교수가 공대 동료교수 26명을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인 이 후보자는 이 책에서 ‘반도체, 7~8년 뒤가 문제다’라는 주제로 이정동 교수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한국 반도체 산업의 현황과 중국의 도전 ▲창의적 도전의 필요성, ▲한국의 지적재산권 관련한 제도적 환경과 관행 ▲특허법 체계 개선 ▲3D 반도체 기술개발과 경험 ▲국가 연구개발(R&D) 시스템 개선 등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밝히고 있다.
반도체 설계 전공인 그의 인터뷰 내용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핀펫’이라는 3D 반도체 기술과 관련한 것이다. 그는 이 분야에서만 60편 이상의 논문을 발표했다. 이는 인텔의 트라이 게이트 모스펫과 동일한 기술로 이 교수는 한국과 미국에서 관련 특허출원을 먼저 했다.
인텔은 이 기술로 22nm 기반 중앙처리장치(CPU)인 코드명 아이비브릿지와 14nm 공정의 브로드웰 CPU를 양산해 판매했다. 그는 “이를 통해 기술이전 과정 자체에 대해 아주 유용한 경험을 얻게 됐다”면서도 국내 반도체 업체 기업에서 이를 먼저 채택하지 못한 것에 대해 안타까워했다.
추격과 모방 중심의 성장 체질에 익숙해진 국내 대기업 구조 상 선제적인 지식과 경험의 축적이 쉽지 않다는 점을 지적했다. 당장 내년에 자신의 거취가 어떻게 될지도 예측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더 먼 앞을 내다보고 미래를 준비할 기술을 예측·투자하거나 필요한 노하우를 축적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루틴이 반복되면, 누군가 앞서 갔던 길을 빠르게 뒤쫓아 가는 것은 할 수 있어도 리더의 위치에서 패러다임을 설정해나가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대학 역시 창의적인 인재를 키워내 산업계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연구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회사나 선진국의 대학에서 생각하지 못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 그것이 영향력을 갖게 하고 나아가 산업계가 돈을 벌게 하는 활동을 끊임없이 해줘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는 “10% 더 높은 경쟁력을 가진 창의적인 인제를 양성하는 것이 꼭 필요하다”며 “이렇다 할 자원이 없는 한국에서 우수한 인력 외에 기댈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말한다.
반도체 분야의 특허로 새로운 패러다임을 열었던 경험이 있는 만큼, 지적재산권 등 특허법 체계가 대기업에 유리하게 돼 있다는 점도 비판했다. 한국에서 특허소송이 벌어지면, 자금력이 부족한 중소·벤처기업은 불리할 수 밖에 없고, 승소하더라도 배상금이 통상 수천만원 수준에 불과하다. 이는 미국과는 대조적이다.
마지막으로 그는 국가의 R&D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선 평가체계를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는 과거 반도체 관련 정부과제를 받은 경험도 공유했다. 수치 목표를 모두 달성하고 기술개발이 양산에 쓰이고 있다는 점을 피력했지만, 평가위원이 실용화 사실을 믿지 않았고 결국 낮은 평가점수를 받았다.
그는 “하지만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아 산업기술 관련 기관으로부터 이 과제가 우수 성공사례로 반도체 분야 전체 대표과제로 선정돼 소개될 것이라는 연락을 받았다”며 “우수, 최우수 평가를 받은 과제들은 실제 양산에 쓰지 않는데, 제 연구가 실제 양산에 쓰이기 때문에 선정이 됐다는 어처구니 없는 얘기였다”고 지적했다.
그는 “현재 여러 가지로 R&D 관련된 시스템은 잘 갖춰놓았지만, 이것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선 집행 과제 자체를 혁신해야 한다”며 “끊임없이 목소리를 내 공정한 시스템으로 만들면 지금 현재 상태에서 아무것도 특별히 더 안해도 한국의 경쟁력은 대략 10% 이상 올라갈 것”이라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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