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데일리 이안나 기자] 롯데쇼핑 수장이 새롭게 바뀐다. 처음으로 ‘순혈주의’를 깨고 경쟁사 출신 외부 인사를 중용했다. 전통 유통공룡으로 위치한 롯데가 자존심을 버리고 외부 인재를 영입한 건 수년째 이어지는 실적부진 고리를 끊고자 하는 특단의 대처가 담긴 것으로 풀이된다.
25일 롯데그룹은 롯데지주 포함 38개 계열사 이사회를 열고 2022년 정기 임원인사를 단행했다. 이번 인사는 각 분야 전문성을 갖춘 외부 인재를 적극 수혈했다는 점이 특징이다.
롯데는 이번 인사에서 신임 유통군 총괄대표로 김상현 부회장<사진>을 선임했다. 김 부회장은 글로벌 사업과 할인점 운영 경험을 모두 갖춘 전문 경영인이다. 그는 1986년 미국 P&G로 입사해 한국 P&G 대표, 동남아시아 총괄사장, 미국P&G 신규사업 부사장을 거쳤다. 이후 홈플러스 부회장을 지냈고 2018년부터 DFI 리테일그룹 동남아시아 유통 총괄대표, H&B 총괄대표를 역임했다.
롯데는 “김상현 총괄대표는 국내외에서 쌓은 전문성과 이커머스 경험을 바탕으로 롯데 유통사업에 혁신과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한다”고 전했다.
롯데쇼핑이 지난 1979년 출범한 이래 유통 부문을 총괄하는 수장에 ‘비(非)롯데’ 출신 인사를 임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롯데는 오랜 유통 업력을 가졌음에도 불구, 최근 이커머스 중심으로 변화하는 시장 환경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실적 부진도 계속되면서 위기감이 작용해 과감한 인사를 단행한 것으로 해석된다.
롯데쇼핑은 올해 연결 기준 3분기까지 누적 매출액 11조7892억원으로 전년동기대비 3.6% 감소, 영업이익은 983억원으로 40.3% 줄었다. 지난해 출범한 롯데그룹 통합 온라인몰 ‘롯데온’도 아직까지 이커머스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지 못하고 있다. 경쟁사 신세계그룹 통합 온라인몰 SSG닷컴이 기업가치 10조원을 평가 받고 내년 기업공개(IPO)를 목표로 하고 있는 모습과 대비되는 지점이다.
앞서 롯데는 지난 3월 롯데쇼핑 e커머스사업부장으로 이베이코리아 출신 나영호 부사장을 임명했다. 이어 9월엔 배상민 카이스트 교수를 디자인경영센터장으로 영입했다. 정기 임원인사에 앞서 일찌감치 고위 임원을 외부에서 영입하는 움직임을 보여온 셈이다. 롯데쇼핑 신임 백화점 사업부 대표로 내정된 정준호 롯데GFR 대표도 신세계그룹에서 20년 이상을 근무해 온 인물이다.
유통 BU와 롯데쇼핑, 롯데자산개발 대표를 맡았던 강희태 부회장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다. 업계에선 ‘그룹 2인자’로도 불리던 강 부회장이 은퇴 임원 명단에 이름을 올린 건 의외라는 평가가 나온다. 이번 롯데그룹 인사가 철저한 성과주의 기조로 이뤄졌다는 점을 감안하면, 롯데쇼핑 지속된 실적 악화와 온라인 사업 부진에 대한 책임을 지고 퇴진한 것으로 풀이된다.
롯데는 그룹 대대적 변화를위해 조직 개편도 단행했다. 기존 비즈니스 유닛(BU·Business Unit) 체제를 대신해 헤드쿼터(HQ·HeadQuarter) 체제를 도입한다. 롯데는 지난 2017년 3월 BU 체제를 첫 도입했다. 유통·화학·식품·호텔·서비스 등 4개 BU를 조직해 각 BU장이 해당 사업군의 경영을 총괄하도록 했다. 회사 측은 빠른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이를 6개 사업군(식품·쇼핑·호텔·화학·건설·렌탈)으로 계열사를 유형화하는 개편을 단행했다.
이번 인사 방향에 대해 신동빈 롯데 회장은 변화와 혁신을 주도할 초핵심 인재 확보를 주문한 것으로 전해졌다. 롯데 관계자는 “전문성을 갖춘 외부인사들을 적극적으로 영입했고, 승진 임원과 신임 임원 수도 지난해 대비 두배 이상으로 늘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