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를 둘러싼 망 사용료 갈등이 첨예하다. 콘텐츠사업자(CP)가 인터넷사업자(ISP)에 망 사용료를 지불해야 하는가를 두고 갑론을박이 팽팽하다. 넷플릭스는 이 문제로 국내 통신사인 SK브로드밴드와 소송까지 치르고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정당한 논리근거와 합리적 사실관계를 따져보는 것이다. 이에 ‘디지털데일리’는 넷플릭스가 촉발한 망 사용료 논쟁과 관련해 오해와 진실을 짚어본다. <편집자 주>
[디지털데일리 백지영기자]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
최근 국내에서 넷플릭스와 같이 대량 트래픽을 유발하는 콘텐츠제공사업자(CP)에게 ‘망사용료’를 의무적으로 부과해야 한다는 여론이 불거지는 가운데, 해외 사례가 재조명되고 있다.
여기서 망사용료는 유튜브나 넷플릭스 같은 콘텐츠 제공 사업자(CP)가 KT, SK브로드밴드, LG유플러스 등 통신 사업자(ISP)가 만든 인터넷망을 이용하기 위해 내는 사용료를 의미한다.
망사용료라는 용어 자체가 광범위한 만큼 접속료 혹은 네트워크 서비스 이용료, 인터넷접속서비스 이용료 등으로도 쓰인다. 넷플릭스는 이를 트래픽 전송료로 부른다. 넷플릭스는 일부 해외 통신사에겐 ‘착신망 이용대가’라는 이름으로 비용을 지불한 것으로 알려지는데 이 역시 사실상 망사용료와 동일한 것으로 여겨진다.
넷플릭스는 그동안 전세계 어느 곳에서도 망사용료를 지불하고 있지 않다고 공공연하게 밝혀왔으나 미국의 컴캐스트, AT&T, 버라이즌, 타임워너케이블, 프랑스의 오렌지 등 전세계 다수의 ISP에 망 이용대가를 냈거나 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실제 넷플릭스는 지난해 10월 SK브로드밴드를 상대로 한 채무부존재 확인 소송 1심 변론에서 이러한 망 이용대가 지급 사례에 대해 인정하면서도 ‘사적인 합의에 따른 비용 지급 사례’라고 설명했다. B2B 거래의 특성 상 성격이나 규모나 금액 등은 외부에 공개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인 만큼, 사실상 해외에선 망사용료를 지급했다고 보고 있다.
현재 넷플릭스의 망사용료 지급과 관련해 자주 언급되는 해외 사례가 ‘뉴차터’다. 2015년 미국 케이블TV 회사인 차터가 타임워너케이블, 브라이트하우스를 인수했을 당시 미 FCC(연방통신위원회)는 인수합병 승인 조건으로 부과한 망 이용대가 지급 금지 조건이 부당하다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케이블TV 사업자의 합병이 ‘코드커팅(가입해지)’을 유발하는 OTT 사업자에 불리하게 작용할 것을 우려해 망 이용대가를 받지 말 것을 요구했는데, 이것이 부당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는 바꿔 말하면 ISP가 CP로부터 망 이용대가를 받을 수 있음을 역설한다.
해당 판결은 또 ISP가 CP로부터 망 이용대가를 받지 못할 경우 네트워크 투자비가 증가해 최종 이용자에게 요금 인상 등 부담이 늘어날 수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앞서 지난 2014년 켄 플로렌스 넷플릭스 콘텐츠 전송 담당 부사장은 미국 FCC에 제출한 확인서에서 넷플릭스가 ISP인 컴캐스트와 AT&T, 버라이즌, 타임워너케이블에게 트래픽 착신을 위한 망 이용대가를 지불하고 있다고 진술한 바 있다.
넷플릭스는 2010년 IBP(인터넷백본망사업자)인 레벨3와 CDN 서비스 계약을 체결했다. 망 이용대가 분쟁 이전 레벨3는 ISP인 컴캐스트와 무정산 방식으로 상호접속협정을 체결해 트래픽을 교환하고 있었다. 넷플릭스와 CDN 계약을 체결한 이후 레벨3로부터 들어오는 트래픽이 폭증하자 컴캐스트는 레벨3에게 상호접속구간에 대한 망 이용대가를 요구하면서 양사 간 분쟁이 발생했다.
레벨3가 컴캐스트의 요구를 거부하자 컴캐스트는 양사의 상호접속구간 증설을 중단했다. 결국 2013년 양사는 상호접속 계약을 갱신해 레벨3가 컴캐스트에 일부 망 이용대가를 지급하는 것으로 분쟁이 종료됐다. 이후 2014년 2월 넷플릭스는 컴캐스트와 망에 직접 연동하는 대신 망 이용대가를 지급하는 계역을 체결했으며, 같은해 4월엔 버라이즌, 7월엔 AT&T, 8월엔 타임워너케이블과도 순차적으로 망 이용대가를 지급하는 계약에 합의했다.
최근 해외에선 넷플릭스의 망 이용대가과 관련한 국내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인도네시아의 경우 우리나라가 개정한 전기통신사업법, 일명 ‘넷플릭스법’의 차용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관련 법안은 국내외를 막론하고 일 방문자 100만 명 이상, 국내 트래픽의 1% 이상 대규모 트래픽을 유발하는 콘텐츠 사업자에 대해 망 품질 유지 의무를 부과하며 ISP 뿐 아니라 콘텐츠 사업자에게도 품질 유지의 의무가 있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국민의당 김영식 의원은 이에 더해 최근 ‘부가통신사업자가 기간통신사업자 망을 이용해 인터넷접속역무를 제공받음에도 인터넷접속역무 제공에 필요한 망의 구성 및 트래픽 양에 비춰 정당한 이용대가를 지급하지 않는 행위’를 금지행위로 규정한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을 최근 발의했다.
호주 통신사 옵터스의 켈리 베이어 로스마린 CEO 역시 지난해 말 비즈니스 브리핑을 통해 “넷플릭스와 같은 기업이 네트워크의 데이터 수요를 주도하고 있지만, 핵심 네트워크를 업그레이드하는 데 직접 투자하지 않는다”고 지적하며 “이들은 통신사의 광대역 망에 대한 부담을 덜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해 현지 언론의 공감을 산 바 있다.
이밖에 브랜든 카 FCC 상임의원은 지난 5월 ‘끝내야 할 빅테크의 무임승차(Ending Big Tech’s Free Ride)’라는 제목의 뉴스위크 칼럼을 통해 네트워크 설비에 대한 혜택은 맘껏 누리면서 그에 대한 대가는 전혀 지불하지 않고 사실상 무임승차하고 있는 빅테크 콘텐츠 사업자들에게 책임을 물었다.
그는 “미국은 유무선 전화망 가입자들로부터 걷은 보조금(Universal Service Fund)을 활용해 공공부문(주로 시골·전원 지역 및 저소득층을 위한) 네트워크 설비를 증설해왔다”며 “하지만 고속 네트워크에 대한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유무선 전화망 가입자 숫자가 점차 줄면서 네트워크 설비 확대를 위한 재원 마련이 어려워지고 있는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빅테크의 책임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거대 기술 기업들은 인터넷 인프라를 무료로 이용하면서 네트워크를 유지하고 구축하는 데 필요한 수십억 달러의 비용을 절감해 왔다”며 “한 연구에 따르면 넷플릭스, 유튜브, 아마존 프라임, 디즈니플러스, 마이크로소프트 등 5개 빅테크가 미국 시골 지역 광대역 네트워크 전체 트래픽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75%에 달한다”고 지적했다.
또, 이 연구에 따르면 전체 네트워크 설비 비용의 최대 94%가 용량을 추가하거나 스트리밍 서비스 제공을 지원하는 것과 관련이 있고, 그 비용은 빅테크 기업이 아닌 소비자 요금으로부터 충당된다는 주장이다. 반면 넷플릭스와 메타(페이스북), 애플, 아마존, 구글 등은 이런 망을 활용해 지난해에만 1조달러에 달하는 매출을 거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