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데일리 김도현 기자] 코로나19가 산업 전반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친 가운데 반도체 업계에는 또 다른 바람이 불었다. 연이은 인수합병(M&A)이 시장을 들썩이게 했다. 기업 간 M&A는 언제든 발생할 수 있지만 올해는 전례 없을 정도로 활발했다.
시장조사업체 IC인사이츠에 따르면 올해 반도체 업계 M&A 규모는 100조원을 돌파했다. 포문은 아날로그디바이스(ADI)가 열었다. 지난 7월 맥심인터그레이티드를 인수하기로 했다. 양사는 아날로그반도체 분야 2위(점유율 10%), 7위(4%) 업체다. 맥심은 신호 처리 및 전력관리에 특화된 기업이다. ADI는 맥심 인수로 업계 1위(19%) 텍사스인스트루먼트(TI) 추격에 나설 예정이다.
다음은 그래픽처리장치(GPU) 전문업체 엔비디아다. 2020년 최고의 빅딜을 성사시켰다. 지난 9월 ARM을 400억달러(약 47조3520억원)에 인수한다고 밝혔다. ARM은 반도체 지적재산(IP)을 대량 확보한 업체다. 엔비디아는 ARM을 보유한 일본 소프트뱅크그룹(SBG)와 꾸준히 협상을 진행했다. 사업 다각화를 노리는 엔비디아와 현금 확보가 시급한 SBG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다.
아직 확정은 아니다. 주요국 승인이 남았다. 미·중 무역분쟁, 영국의 반발 등이 변수다. 미국과 기술 전쟁에 돌입한 중국이 엔비디아의 인수 관련 반독점 심사에서 이를 거부할 수도 있다. ARM 본사를 둔 영국에서는 일자리 축소 우려 등으로 ARM 매각에 부정적이다. 업계 역시 반갑지 않다. 엔비디아는 ARM의 고객사와 경쟁사다. ARM은 퀄컴, 애플, 삼성전자, 미디어텍 등과 거래하고 있다. 이들 업체는 엔비디아가 기존 생태계를 무너뜨릴 것을 걱정한다.
SK하이닉스가 바통을 이어받았다. SK하이닉스는 지난 10월 인텔의 옵테인 사업부를 제외한 낸드 사업 부문 전체를 양수한다고 밝혔다. 인수 대상은 인텔의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 낸드 단품 및 웨이퍼 비즈니스, 중국 다롄 공장 등이다. 계약 규모는 10조3100억원이다.
이번 계약으로 SK하이닉스는 낸드 시장 2위로 올라설 기반을 마련했다. D램 의존도를 낮출 카드다. 일각에서는 인수가가 비싸다는 평가다. 이에 SK하이닉스 이석희 사장은 적극 해명했다. 인텔이 가진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 솔루션 역량과 무형자산 등을 고려하면 충분한 가치가 있다는 반응이다.
같은 달 AMD가 M&A 대열에 합류했다. AMD는 자일링스를 350억달러(약 39조4275억원)에 품기로 했다. 자일링스는 프로그래머블반도체(FPGA) 전문업체다. FPGA는 사용자가 용도에 맞게 회로를 여러 차례 변경할 수 있는 시스템반도체다. 서버 분야에서 인공지능(AI)용 그래픽처리장치(GPU)를 대체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지난 2015년 FPGA 제조업체 알테라를 인수한 인텔에 맞붙을 놓은 셈이다.
네트워크 반도체 기업 마벨도 M&A를 단행했다. 동종 업체 인파이가 대상이다. 인수액은 100억달러(약 11조3500억원)다.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등을 설계하는 미디어텍은 지난달 인텔의 전원관리(PWM) 반도체 사업을 인수했다. 계약규모는 8500만달러(약 944억)다. 인텔은 지난해 애플에 5세대(5G) 모뎀 칩 사업부를 매각하기도 했다.
반도체 소재 및 부품 업계도 동참했다. 지난달 글로벌웨이퍼스는 실트로닉에 37억5000만유로(약 4조9700억원)에 인수를 제안했다. 양사는 반도체 웨이퍼 업체다. SK머티리얼즈는 지난 2월 금호석유화학 전자소재사업을 인수하는 영업양수도 계약을 체결했다. 인수 금액은 400억원이다. SK머티리얼즈는 사업 포트폴리오에 포토레지스트를 추가했다.
올해 만큼은 아니지만 내년도 M&A 성사 가능성이 점쳐진다. 경쟁사와 달리 삼성전자는 조용했다. 차량용 반도체 업체 NXP 등의 인수설은 여전하다. 자일링스도 후보군으로 꼽혔지만 AMD의 품에 안겼다. 업계에서는 2021년 반도체 업황을 긍정적으로 예상하면서 M&A가 충분히 생길 수 있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