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회사는 크게 3가지로 분류됩니다. 반도체 설계업체(팹리스), 위탁생산 업체(파운드리), 종합반도체기업(IDM) 등이죠. IDM은 팹리스와 파운드리 모두 다루는 업체입니다.
최근 반도체 시장에서는 파운드리의 선전이 눈에 띕니다. TSMC를 필두로 삼성 파운드리, UMC, SMIC 등이 동반 상승하고 있습니다. 인공지능(AI), 5세대(5G) 이동통신, 전기차 등 발전으로 시스템반도체 분야가 커진 동시에 IDM 물량이 파운드리로 향했기 때문입니다.
주된 요인은 반도체 공정 미세화입니다. 수십 나노미터(nm) 공정은 물론 10나노 이하 제품까지 나오면서, 제조기술 난도가 급속도로 오른 탓이죠. 이는 업체 간 기술격차를 유발했습니다. ‘다품종 소량생산’ 체제인 시스템반도체 특성상 시설투자 비용이 막대한 점도 한몫했습니다. 생산시설을 줄이는 ‘팹라이트’ 전략이 등장한 이유입니다.
팹라이트는 쉽게 말해 IDM이 파운드리 비중을 줄이는 개념입니다. 생산 관련 투자를 축소하는 대신 설계에 좀 더 집중하겠다는 것입니다. 이미 미국, 유럽, 일본 등 IDM들은 팹라이트로 탈바꿈한 상태입니다. 대표적으로 텍사스인스트루먼츠(TI),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 NXP, 소니, 르네사스 등이 있습니다.
이들 업체가 파운드리에 맡기는 물량이 늘어나면서, 파운드리 업체는 쾌재를 부르고 있죠. 파운드리 톱10의 올해 3분기 매출은 전년동기대비 14% 늘어날 전망입니다. TSMC, 삼성 파운드리, SMIC 등은 분기마다 역대 최대 실적을 달성 중이고요.
이러한 상황에서 반도체 업계를 들썩이게 한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인텔이 차세대 공정 개발에 차질이 생겼음을 인정했기 때문이죠. 인텔은 지난 7월 말 2분기 실적 컨퍼런스콜을 통해 “7나노 기반 중앙처리장치(CPU) 출시시기가 6개월 늦춰진다”며 “공정 수율이 예상보다 떨어져 당초 목표 대비 1년 이상 뒤처졌다”고 밝혔습니다.
현재 7나노 이상 공정이 가능한 업체는 TSMC와 삼성전자뿐입니다. 당분간 이외 업체 진출이 힘들뿐더러 두 회사는 5나노, 3나노 등으로 이어지는 첨단 생산라인을 갖추고 있습니다. 격차가 더욱 벌어진다는 의미죠.
인텔은 이미 그래픽처리장치(GPU) 등을 위탁 중이며, 파운드리 비중은 증가세입니다. 그럼에도 CPU만큼은 자체 생산하겠다는 의지를 여러 차례 피력했습니다.
하지만 기술적 한계를 드러내면서 변수가 생겼습니다. 인텔은 지난 2일(현지시각) 11세대 프로세서 ‘타이거레이크’를 공개했습니다. 이전 세대 ‘아이스레이크’와 같은 10나노죠. 공정 및 아키텍처 변화를 통해 성능 개선을 이뤘지만, 나노 경쟁에서는 AMD와 대비됩니다. AMD는 TSMC와 손잡고 5나노 제품 출시를 앞두고 있습니다. 오는 2022~2023년 3나노 기반 CPU 출시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업계에서는 인텔이 CPU까지 파운드리에 맡길 것으로 내다봅니다. CPU 공급 부족(쇼티지) 이슈는 대규모 증설 투자로 버텼지만, 공정 미달은 극복할 수 없다는 분석입니다. 아직 구체적으로 정해진 바 없지만, 인텔의 팹라이트 대열 합류 가능성이 높아진 것은 사실입니다. 현실화된다면 파운드리 업계에 지각변동이 예고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