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기사는 디지털데일리가 7월1일 발간한 <디지털금융 혁신과 도전>2020년 특별호에 게재된 내용을 요약 정리한 것입니다.
글: 김홍재 팀장(사진), 코스콤 데이터오피스사업부
2014년부터 불어 닥친 핀테크 열풍이 없었어도 지금의 편리한 금융을 우리가 누리고 있을까?
‘어느 세월에 바뀌겠어...’했었던 불편들을 일순간에 사라지게 만든 동력은 소비자의 선택에서 나왔다.
규제 개선과 기술발전의 덕이라고도 볼 수 있으나 혁신을 만들어낸 누군가는 발생 가능한 리스크보다 소비자의 편익이 더 클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을 것이고, 다수 소비자의 선택은 그 리스크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을 만들어낼 또 다른 힘이 되었다.
지금까지 핀테크는 소비자를 접하는 표면적 서비스를 바꿨다면 이제부터는 금융의 정의를 바꿀만한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찾아온 소비자에게 불편을 주지 않는 서비스에서 마음과 필요를 꿰뚫어 볼 수 있는 금융으로이다. 그러나 패러다임을 바꾼다는 것에는 넘어야 할 산이 있다. 결과를 낼 때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거나, 결과를 만들 때까지 돈이 많이 들 수도 있다는 얘기다.
냉정히 생각해보면 지금 편리하다고 말하는 핀테크는 그간 미뤄왔던 불편을 걷어냄으로써 만들어진 것이 상당수고, 앞으로의 핀테크는 좀 더 근본적인 고민의 결과물로부터 나와야 한다. 그리고 그 고민의 대상물은 대체로 데이터로 귀결된다.
데이터는 모으고 쌓아야 한다. 원석이기 때문에 그 자체로는 돈이 안 된다. 사금을 캐듯 수 없는 패닝(panning, 접시에 모래를 넣고 물에서 돌려 금을 가라 앉히는 작업)을 해야 한다. 분석가들의 몸값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오른다.
클라우드 벤더들은 데이터만 부어 넣으면 당장이라도 남들이 발견하지 못한 가치를 쏟아낼 것 같은 서비스를 홍보하지만, 대부분은 이용료보다도 못한 소소한 인사이트를 얻는 것으로 끝이 나고 만다. 데이터 비즈니스는 열정과 용기로 금을 찾던 골드러시의 산업도 아니고, 지식집약산업도 아니고 당장엔 자본집약산업에 가깝다. 자본집약의 바탕 위에 지식집약이 올라서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8월이면 우리나라 금융회사도 API를 통해 개인의 금융정보를 제공해야 하는 의무가 발생한다. 경우에 따라 중계기관을 거치기도 한다. 그리고 이 데이터를 마이데이터사업자, 금융회사 등 다양한 데이터수요자들이 분석하여 소비자에게 다른 차원의 금융을 제공해야 한다. 소비자가 지불하는 편익의 대가는 다시 마이데이터 사업자와 데이터생산자에게 환원되는 선순환 구조이면서, 이 가치사슬에 꽤 많은 참여자와 이해관계자로 얽힌 거대 산업이다.
데이터경제가 성공하려면 이 데이터 가치사슬 내 ‘데이터 생산자, 유통자, 가공자, 수요자 등’의 참여자 모두가 비용을 최소화하면서도 산업이 안정적으로 유지되도록 해야 하는 꽤 어려운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데이터생산원가를 고려치 않고 익숙한 방법(돈을 들여 해결하는)을 취하게 된다면, 그 비용은 그대로 눈덩이처럼 쌓여 데이터수요자와 금융소비자에게 전가된다. 데이터소비자에게 데이터가 전달되었다고 끝이 아니라 사금을 캐는 자본집약적이고 지식집약적 활동이 또 더해져야 한다.
여기서 데이터수요자는 누적된 원가의 무게로 본래의 사업목적을 잊고 데이터브로커로의 유혹을 느끼게 될 수도 있다.
결국 부가가치가 만들어지지 않는 단순 유통산업만이 발전한다면 데이터경제의 선순환은 만들어지지 않고 모두에게 부채만 남기는 상황이 될 수도 있다. 재미있는 사실은 마이데이터 산업의 데이터 생산자와 수요자의 상당수가 금융회사가 될 것이라는 것이다. 밀가루 생산원가가 높아서 비싼 가격에 팔긴 했는데 빵집주인은 빵을 팔아서 밀가루 값을 주겠다하고, 나도 빵이 먹고 싶어서 빵을 사려고 보니 너무 비싸서 사먹지 못하고 밀가루 값도 받을 수 없는 딜레마와 유사할 수 있다.
데이터생산과 유통비용을 낮추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데이터에 기반한 금융이 되려면 사고의 틀을 바꿔야 하는 것처럼 데이터 생산과 유통에 필요한 소부장 레벨의 변화가 중요하다. 지금까지의 금융IT의 최고의 가치는 안전이다. 데이터 기반 금융도 보안은 최우선 과제이지만, 그 다음으로는 데이터 생산・유통 비용의 최소화이다. 이런 이유로 최근 금융회사의 API를 포함한 데이터비즈니스 전개는 클라우드가 우선 고려된다. 그러나 이마저도 쉽지가 않지만, 쉽지 않은 이유를 풀 수 있어야 금융회사는 데이터 생태계에서 경쟁력을 갖출 수 있을 것이다.
첫째, 금융회사는 스타트업에 비해 대체로 넉넉했다.
최고로 빠른 CPU, 초대용량 메모리, 최고로 안전한 데이터베이스, 이중삼중 안전장치 등의 위에서 돌아가는 프로그램들을 클라우드에 넣는 작업은 두 가지 선택이 가능하다. 클라우드에서 제공하는 비싼 고가용 서비스들을 똑 같이 사용하거나(대체로 불가능) 유사한 기능을 제공하는 저비용 서비스나 오픈소스로 대체하고 부족한 부분을 애플리케이션 레벨에서 감당하는 모험을 감행해야 한다. 스타트업은 후자의 일들이 일상처럼 일어난다. 경제적 절박함이 역량과 경쟁력을 키우는 긍정적인 면이 크다.
금융회사의 모든 서비스는 언제나 완벽하게 동작해야 하지만, 영국을 포함한 EU도 마이데이터와 유사한 프로젝트를 겪으면서 결국 수 많은 시행착오와 금융회사들의 오픈소스 도입 등의 과감한 시도로 데이터 생산과 유통의 원가를 최소화하고 있다. 이 점에 있어서 우리에게 주어진 일년이라는 시간이 긴 시간은 아니겠지만 데이터 산업의 초석을 만드는 중요한 단계라는 점에서 과거와는 다른 시도가 필요한 상황이다. 금융회사도 역량배양을 위해 스타트업의 경제적 절박함을 연출이라도 해야 할지 모른다.
둘째, 일처리 방식을 바꾸기 쉽지 않다.
클라우드는 동일한 일을 나눠서 처리하는 아키텍처에 최적화 되어있다. ‘One Big Server or Many small ones?’ 이 질문에 대체로 ‘One Big Server’를 택했던 곳이 금융회사이고, ‘Many small ones’를 택할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 구조를 가진 곳은 이미 클라우드를 쓰고 있을 것이다. 금융회사의 현재 애플리케이션을 클라우드로 옮기는 작업은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 작업과 비슷하다.
다행히 코끼리가 들어갈만한 냉장고(가상서버)가 있다면 다행이지만, 대부분 없거나 큰 대가를 지불해야 할 것이고, 이 문제로 인해 사실 금융회사의 시스템들이 클라우드로 옮겨지는 시간이 늦어지고 있다고 해도 틀리지 않다. 경제적 이득도 없는데 옮길 이유를 찾긴 어려울 테니까. 우물의 물을 긷는 두레박을 설치하는데, 우물이 꽉 찰 정도로 큰 두레박을 달아 놓고 보니 큰 통에 물을 받아가는 사람들한테는 좋지만, 한 모금 마시러 오는 사람들이 늘어날 경우에는 두레박의 10분의 1도 안 마시는데, 물을 퍼 올리는 시간과 드는 힘은 일정하다 보니 결국 대기하는 사람이 늘어나는 문제를 겪게 된다.
이런 대기문제를 효율적으로 해결하려면 시시때때로 딱 필요로 할 만큼의 작은 두레박 여러 개를 걸어놓고 동시에 퍼 올릴 수 있는 구조로 변경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처럼 단순히 데이터를 조회하는 구조는 비교적 쉽지만 입출금, 주문처리 등과 같은 구조는 처리 순서보장과 데이터 동기화 등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사실 녹록치 않은 과제임엔 틀림없다.
하지만 앞으로 이런 개발 패러다임에 익숙해져야 한다. One Big Server를 서버벤더들이 경제성이 없어 만들지 않거나 지금보다 훨씬 비싼 가격으로 구매해야 하는 세상이 곧 도래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때 깨닫고 준비하면 늦은 것이다. 의도적으로 작고 저렴한 서버 여러 대를 기반으로 대용량 서비스를 개발하는 훈련이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셋째, 국내에 금융서비스를 다뤄본 클라우드 사업자가 없었다.
글로벌 클라우드 벤더가 제공하는 인공지능 분석 플랫폼 등은 대안이 없을 정도로 절대우위의 상황이지만, 그 외 금융회사의 계정계와 정보계 등 데이터를 생산해 내는 애플리케이션들의 구조를 이해하고 이들로부터 경제적으로 데이터를 뽑아낼 수 있는 구조 즉, 클라우드에 적합한 구조(cloud-native)로 바꿀 수 있는 방안까지 제시하는 벤더나 MSP(Managed Service Provider)는 좀처럼 찾기 어려운 상황이다.
금융회사의 전통적인 Legacy 시스템의 차세대 개발과 클라우드 환경에서의 개발을 두루 경험해본 아키텍트나 개발자가 많지 않은 이유는 아마도 정례행사에 가까운 차세대 개발이 한동안 금융권에 없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금융회사가 벤더로부터 받은 제안서의 해외 레퍼런스들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공허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가보지 않은 길을 가자고 하지만 정작 그 말은 꺼낸 안내자는 저 건너 무엇이 있는지 잘 보이지도 않는 외나무다리앞에서 “저는 여기까지 모셔다 드리는 것이 제 역할입니다.” 라고 말하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금융회사 시스템의 클라우드로의 전환은 긴 여정이다. 빅뱅식 차세대 불가론이 대세다. 지속적으로 단위 서비스들을 떼어내어 현대화(modernization)하여 클라우드로 이전하는 과정을 반복해야 하며, 그 과정의 진정한 파트너를 찾는 것이 클라우드 이행 전략의 핵심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데이터만으로 부가가치를 만들던 금융에서 이제 데이터를 외부로 꺼내놓아야 하고, 고객중심의 편익을 제시하지 않으면 데이터를 활용할 수도 없는 체제로의 변화를 앞두고 있다.
데이터의 활용을 통한 수익창출도 고민해야 하지만 데이터 소부장을 소홀히 하면 채산성 없는 유전처럼 허무한 공상에 그칠 수 있다. 마이데이터를 포함한 데이터경제 활성화라는 큰 의미를 부여를 하지 않더라도 금융회사의 미래가 달려있는 첫 숙제임에는 틀림이 없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