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데일리 김도현기자] 지난해 여름 시작된 일본 수출규제는 국내 반도체 업계의 불안요소를 드러냈다. 우리나라 소재·부품·장비(소부장) 생태계 약점은 높은 해외 의존도. 일본은 이 부분을 노렸다. 정부도 대책 마련에 나섰다. 그동안 실책을 반복치 않겠다는 각오다.
반도체 관련 해외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서는 산·학·연의 협업이 필수적이다. 기초기술은 학계 기여가 크다. 소부장 업체만큼 학계 지원도 중요한 이유다. 학계 지원은 연구팀에 연구비를 지급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하지만 반도체 학계는 정부 지원 방식에 대해 여전히 불만을 제기하고 있다. 원인으로는 ▲단기적 성과, 인기 분야에 집중하는 구조 ▲수도권 중심 지원 정책 ▲미세공정 연구환경 미비 등이 꼽힌다.
미국, 일본 등 연구팀은 한 분야를 20~30년 이상 담당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나라의 경우 즉각적인 성과가 나오지 않으면 더 이상 연구를 진행하기 어렵다. 익명을 요구한 카이스트 A교수는 “현 정책에서 장기 프로젝트는 지원받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며 “논문 위주의 평가 체계로, 논문을 위한 논문을 양산하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한양대 B교수는 “학교에 도움되는 논문을 많이 쓰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거룩한 일을 해도 논문 안 쓰면 의미가 사라진다”면서 “적은 비용으로 많은 논문, 즉 성과를 내기 원하는 시스템”이라고 비판했다.
대학교 내에서도 5세대(5G) 이동통신,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등 흔히 ‘돈 되는 분야’ 연구를 선호하는 분위기다. B교수는 “소부장은 몇 년 반짝 연구한다고 될 부분이 아니다. 5G, AI도 중요하지만, 장기적인 소부장 연구도 동반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방에 있는 학교들은 공정한 기회를 부여받지 못한다고 토로했다. 유니스트 C교수는 “지역적인 부분 때문에 대학원생 수급도 어려운 데, 지원은 턱없이 부족하다”이라며 “인력, 자금, 장비 등 모든 것이 충족되지 못하고 있다. 수도권 학교와 격차가 점점 더 벌어지는 이유”라고 언급했다. 카이스트, 유니스트 등은 특수 대학이라는 명목으로 지방 대학 관련 혜택도 못 받고 있었다. 이중손해를 보는 상황이다.
반도체 공정이 미세화되면서, 대학에서 사용하는 장비가 제한된다는 의견도 나왔다. 포항공대 D교수는 “극자외선(EVU) 노광장비는 1500억원에 달한다. 대학에서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라며 “비싼 장비까지는 아니더라도, 학교들이 공동으로 사용할 수 있는 미세공정용 장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양대 E교수는 “나눠주기식 지원으로 가장 필요한 곳에 지원금을 쓰지 못하고 있다”면서 “정부는 물론 업체와 협력을 통해 연구팀이 다양한 실험을 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돼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중국은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앞세워 반도체 사업을 키우고 있다. 특성화 대학교를 지정, 재정 지원, 팹 무료 사용 등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칭화대, 상해교통대, 마카오대 등은 ‘반도체 올림픽’ 국제고체회로학회(ISSCC)에 많은 논문을 제출하며, 성과를 내고 있다. 당장 한국 반도체 업체들을 넘어설 수준은 아니지만, 위협적인 성장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