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산 알파고’와 붙어본 신진서 9단, “우리 세대 인간은 AI 못 이긴다”
[디지털데일리 이형두기자] NHN엔터테인먼트가 개발한 바둑 인공지능(AI) '한돌‘이 바둑기사 신진서 9단을 이겼다. 신진서 9단은 지난해 12월 기준 국내 바둑 랭킹 1위다. 국내 최정상급 바둑기사 5명이 연달아 모두 격파됐다. 인간이 바둑으로 AI를 이기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 됐다.
경기가 끝난 후 신진서 9단은 “우리 세대 프로기사들은 많이 노력을 해도 이기기까지는 좀 무리가 있을 것 같다”고 한돌의 실력을 평가했다. 다만 “처음 바둑을 시작할 때부터 인공지능을 연구해 바둑을 익히는 세대는, 비슷한 수준까지 올라올 수도 있을 것”이라며 약간의 희망도 남겼다.
지난 23일 NHN엔터테인먼트는 경기도 판교 사옥에서 ‘프로기사 톱5 vs 한돌 빅매치’ 이벤트의 일환으로 5번째 대국을 진행했다. 신진서 9단이 흑돌, 한돌이 백돌을 잡았다. 1시간 30분 동안 진행된 대국은 190번째 수에서 신진서 9단이 돌을 던졌다. 한돌의 불계승으로 끝났다. 반 집 차이였다.
신진서 9단은 “사람과의 대결이었다면 만만치 않은 게임이라고 느꼈을 것. 그러나 상대가 인공지능이다 보니 계속 나쁜 상황이 이어졌다고 생각하게 됐다”며 “엄청 크게 나쁘지는 않았지만, 큰 기회도 없었다. 한돌이 집을 지키기 시작하면서 경기가 많이 기울었다고 봤다”고 대국 소감을 말했다.
한돌의 분석에 따르면, 대국은 이미 42수에서 한돌 쪽으로 기울어졌다. 이어 48수에서 한돌의 승률이 80%로 급상승하며 사실상 승부가 났다. 반면 신진서 9단은 해당 시점에 대해 복기하며 “크게 형세를 느낄 차이는 아니었다”고 평가했다. 같은 상황에서 인간과 AI가 완전히 다른 판단을 내린 셈이다.
다만 신진서 9단은 “형세 판단은 제가 사람 초일류 중에서도 앞서는 편은 아니다. 오늘도 형세 판단에 문제가 있었던 것 같다”며 “(한돌과) 제일 차이가 난 부분도 형세 판단, 실기에서 비슷하게 가더라도 판단을 잘 못해 밀린 경우가 많았다”고 설명했다.
또 “사람과 대국은 언제든지 상대방의 실수가 나올 수 있어, 그 실수를 찾는 재미가 있지만 인공지능은 기본적으로 실수가 거의 안 나와 답답함을 느낄 때가 많다”며 “첫 수를 둘 때부터 위기라고 생각했고, 중앙에 돌이 몰리기 시작하면서 확실하게 불리하다고 느꼈다”고 보탰다.
신진서 9단은 한돌의 바둑 실력이 이세돌 9단과 대국했던 ‘알파고 리’보다는 확실히 앞서고, 커제 9단과 뒀던 ‘알파고 마스터’ 보다는 약간 부족하거나 비슷한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한돌 개발을 진행한 NHN엔터 게임AI팀 이창율 팀장은 “인간 9단의 경우 ELO(평가점수)가 3500점인데, 한돌2.1의 ELO는 4000을 넘는다”며 “통상 ELO 150 정도가 차이나면 승률이 60~70% 정도, 400정도 차이나면 사실상 이기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과거 이세돌 9단에게 승리를 거뒀던 ‘알파고 리’는 ELO 3500을 약간 넘는 것으로 평가된다. 한돌이 더 우세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알파고의 최종 버전인 ‘알파고 제로’와 한돌의 승부는 예측하기 어렵다. 이창율 팀장은 “저희가 측정한 ELO를 통한 단순 비교는 어렵다. 알파고 제로와 겨뤄볼 기회가 아직 없었다”며 “다만 아직까지는 격차가 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신진서 9단은 “처음 알파고가 나왔을 때는 당연히 사람이 이긴다는 분위기여서 바둑계의 충격이 컸지만, 이제는 적응해서 강한 인공지능이 나와도 충격이 덜하다”며 “인공지능이 제시하는 수가 독창성 등에서 사람에 비해 앞서기도 해, 많이 배우고 연구하되 너무 인공지능을 믿지 말고 자신의 생각을 가지는 것도 중요하다”고 후배 기사들에게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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