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데일리 박기록기자] 국민은행 차세대시스템 프로젝트가 2018년에도 추진이 어려울 것이라고 보는 여러 이유중 두 가지는 앞선 1회에서 다뤘다.
현실적으로 ‘일정이 너무 촉박하다’는 것과 차세대를 책임지고 추진할 ‘지휘라인의 전면 교체’였다.
하지만 이는 설득력이 있는 추론일 뿐이다. 그리고 정말로 차세대 프로젝트의 '불발'을 가정했을때의 결과이지 불발의 직접 원인은 아니다. 즉, 국민은행이 이미 내부적으로 차세대를 연기하기로 결정했다면 더 이상 일정에 쫓길 필요도 없고, IT그룹의 지휘라인도 교체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물론 현실적으로 1년6개월밖에 시간이 주어지지 않았더라도 차세대를 굳이 한다면 할 수 있는 일정이다. '메인프레임'만 교체하는 등 핵심 과제를 중심으로 개발 범위를 크게 축소하거나 아니면 인적, 물적 자원을 엄청나게 쏟아붇는다면 논리적으로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또 은행장, CIO, IT본부장 등 프로젝트의 지휘라인이 2018년 인사에서 모두 교체됐다하더라도 국민은행은 지난 수년간 수많은 노하우를 축적해왔기때문에 만약 차세대 프로젝트 추진 매뉴얼을 정교하게 만들어 놓았다면 못할 것도 없다. 다만 현실적으로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것이다.
이번 회에 다뤄볼 세번째와 네번째의 이유는 좀 결이 다르다.
만약 국민은행 차세대 프로젝트가 올해도 불발된다면 그 이유는 아마도 세번째와 네번째 이유에서 찾아야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좀 넓혀서 본다면, 이것은 단순히 국민은행의 문제로만 국한되지 않을 수 있다.
◆#3. “UNIX도 이젠 구식이야”, 참신하지않은 혁신 기술 = 김유정의 단편소설 '봄봄'에선 점순이와 하루라도 빨리 결혼하고 싶은 젊은 총각의 조급함이 인상적으로 그려졌다. 지금의 상황은 아마도 그런 느낌일지 모른다. 하지만 기다려야 한다. 점순이의 키가 클때까지.
국민은행의 차세대 프로젝트가 만약 올해에도 불발된다면 여기에는 기술적인 이유, 즉 '혁신 기술의 미성숙'이 중요한 이유가 될 수 있다.
국민은행이 지난 수년간 IT 혁신의 키워드로 내세웠던 것은 '탈 메인프레임'이다. 폐쇄적인 아키텍처와 벤더 종속성을 유발하는 메인프레임 구조는 은행 IT혁신을 가로막는 이유로 꼽혔다. (물론 IBM은 이제 이 지적에 결코 동의하지 않고 있고, 메인프레임이 어느 시스템보다 혁신적이라고 주장한다. 물론 기존의 고정관념을 벗어나 이 부분은 별도로 다뤄야할 문제이기는 하다.)
국민은행이 그동안 주전산시스템의 '탈 메인프레임'을 외치며 그 대안으로 제시했던 것은 '유닉스(UNIX)'다. 실제로도 10년전, 차세대시스템을 선행한 은행권에선 모두 UNIX 기반의 주전산시스템으로 탈바꿈했다.
그런데 최근 이같은 흐름에 중대한 변화가 생겼다. 지금 시점에서 보니, 국민은행의 입장에선 UNIX도 더 이상 혁신적으로 보이지 않게됐다는 점이다.
공군의 차세대 전투가(FX) 도입 사례에서 보듯, 기종을 선택하는 핵심 기준은 과거의 화력한 경력이 아니라 미래에서도 뛰어난 생존력을 갖는지의 여부다.
그런 논리 구조와 비슷하게 UNIX는 지난 10년간 은행권의 오픈 환경과 함께 IT혁신을 주도해왔지만 미래에서도 선택할 기종인지는 의문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특히 IT인프라의 혁신적인 운영 전략으로 클라우드의 개념이 돌출되고, 기술적으론 U2L(UNIX to Linux)이 현안이 되면서 이러한 의문은 더 깊어지는 형국이다.
따라서 기술적인 측면에서만 본다면, 국민은행의 고민은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
국민은행이 만약 UNIX를 건너뛴다면 현실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은 'x86'이다. 또한 'x86'의 도입은 클라우드 환경으로의 전환을 염두에 둔 국민은행의 중장기적인 포석이기도 하다. IT비용은 눈덩이 처럼 늘어나는데, 클라우드는 어떤 형태로든 앞으로 은행 IT인프라 환경에 접목돼야 할 과제다.
그러나 국민은행의 입정에선 전체적인 볼륨(트랜잭션, 업무의 범위)을 고려했을 때, 아직은 누구도 x86을 선택했을때의 '안정성'을 책임질 수 없다는 점이 고민이다. 물론 x86으로 주전산시스템을 구성한 해외 은행 사례도 있고, 카카오뱅크 사례도 있다. 그러나 국민은행과 같은 대형 시중은행이 x86을 주전산시스템 기종으로 구성한 사례는 아직 없다.
따라서 국민은행 내부적으로 최근까지의 차세대 주전산시스템 구성 전략은 하이브리드 형태의 UNIX와 x86의 조합이었다. 계정계와 같은 트랜잭션의 안정적 처리가 중요한 부분은 시스템의 안정성을 고려해 고성능 UNIX로 구성하되, 그외의 애플리케이션 서버는 가급적 x86으로 구성한다는 절충안에 무게를 두어왔다.
하지만 국민은행이 여전히 이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어차피 IT혁신을 할 거면 x86 체제로 직접 가고싶다. x86의 성능적 진화, 대형 은행도 안심하고 선택할 수 있을 정도로 x86이 성장한다면 이 선택이 가능하다.
결국 기존 메인프레임 체제를 좀 더 유지하는 것이 계약상 크게 문제가 될 것이 없다면 x86이 성장할때까지 기다리는 것도 국민은행으로서는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이기는 하다. 물론 그 시기가 언제일지는 아무도 모른다.
◆ #4. “꼭 차세대 프로젝트를 해야돼?”… 냉철하게 던지는 보다 근본적인 질문 = 비교적 최근에 진행된 국내 은행권의 차세대시스템 프로젝트는 2014년 기업은행의 포스트 차세대, 이후 산업은행과 우리은행 차세대다. 그런데 이 프로젝트가 시작될 당시, 차세대 RFP(제안요청서)에는 인공지능이란 말이 부각되지 않았다.
국민은행은 1년전인 지난해 3월, 차세대추진부를 발족시켰다. 그러면서 “차세대 시스템에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등 신기술 서비스를 구현하도록 할 계획”이라고 청사진을 제시했다. 인공지능과 같은 혁신적인 기술을 금융권은 새롭게 주목하고 있다.
하지만 한 발 떨어져서 생각해보면 인공지능, 빅데이터와 같은 기술적 이슈를 과연 차세대시스템 프로젝트로 가둬둘 과제인지는 생각해봐야 한다.
만약 차세대시스템이 예정대로 완료되는 2020년2월쯤에 보게될 인공지능은 또 다시 어떤 모습으로 진화돼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금융산업의 변화는 특히 심하다. 기존 오프라인 점포는 생각보다 빠르게 없어지고 있고, 기상 천외한 핀테크는 점차 하나 둘 씩 시장의 주류로 진입하고 있다.
국내 금융권에서 좋아하는 '빅뱅식' 차세대시스템 프로젝트는 '현재의 기준과 기술로 5~10년후의 미래를 설계하고 대응하는 과정'이다. 그런데 이는 기술의 진화, 시장의 변화가 어느정도 예측 가능하다는 전제에서 출발한 얘기다.
그런데 지금은 예측이 불가능하고, 불확실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이럴 경우에 차세대 프로젝트를 준비하는 금융회사가 선택할 수 유일한 방법은 스스로 확신이 들때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메인프레임을 왜 하루빨리 걷어내지 않느냐'라고 국민은행을 재촉하는 것은 오히려 지엽적인 문제에 불과할 수 있다.
'자기 확신의 부재',어쩌면 차세대시스템 프로젝트에 화끈하게 돌입하지 못하고 주저하는 국민은행의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아마도 이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도 "좀 더 지켜보자"는 얘기는 지난해 4~5월부터 조금씩 국민은행 안팎에서 나왔다. 당시 IT업계에선 5월 국민은행 차세대 RFP가 나올것이란 전망이 강했지만 정작 국민은행 내부의 분위기는 미지근 했다.
그보다 앞선 3월초, 국내에선 탄핵 정국으로 매우 어수선할 즈음, 윤종규 KB금융회장(당시 국민은행장 겸임)은 미국 방문길에 오른다. 실리콘밸리와 미국의 주요 글로벌 금융회사 관계자들을 두루 만났다. 지금도 회자되는 '미국 외유'다.
기류가 미묘하게 바뀐것은 윤 회장의 '미국 외유' 이후부터라는 분석이 많다. 당시 윤 회장은 귀국 직후 관련 부서장들을 모아놓고 "지금 우리가 제대로 가고 있는지 한 발짝 떨어져서 냉정하게 생각해보자"는 취지의 주문을 던졌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부터 국민은행 IT실무자들은 차세대 프로젝트 보다는 클라우드, 인공지능, 빅데이터, 블록체인 등 신기술에 더 관심을 보였다. 차세대 프로젝트가 최우선 과제는 아니었다.
그리고 국민은행은 여전히 차세대 프로젝트를 지금 추진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 선택인지, 차세대 프로젝트가 과연 시급한 것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고 있을지 모른다.
그런데 이러한 국민은행의 고민이 특별한 것은 아니다. 현재 국내 은행권에는 국민은행 말고도 또 다시 차세대 프로젝트를 준비해야 할 은행이 있다. 이마 기존 차세대시스템 사용연한이 10년차에 육박하는 신한은행, KEB하나은행 등이다.
하지만 두 은행도 역시 차세대시스템에 대한 추진 계획이 아직은 없다. 시기적으로 지금쯤 준비를 해야하는 것은 맞지만 특별한 기술적 진화에 대한 대응이 필요하다고 생각되지 않기때문에 굳이 서두를 생각이 없다는 입장이다. KEB하나은행은 3년전, 하나은행과 외환은행의 IT통합과정에서 시스템 증설을 이미 상당수 진행한 바 있어서 차세대의 필요성이 크게 완화된 상황이다 .
요약하자면 두 은행 모두 '지금 시스템으로도 큰 무리가 없기 때문에 또 다시 차세대시스템을 서두를 이유가 딱히 없다'는 것이다. 이 두 은행은 오히려 당분간은 '디지털금융' 전략에 더 무게를 두겠다는 전략이다.
이같은 시장 변화의 관점, 무게 중심 변화의 관점에서 본다면 국민은행의 고민은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적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