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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퀄컴의 NXP 인수 타이밍은 적절했을까?

이수환

[디지털데일리 이수환기자] 퀄컴이 네덜란드 반도체 업체 NXP를 470억달러(약 53조8000억원)에 인수합병(M&A)하기로 결정했다. 최근 반도체 업계의 대형 거래를 들여다보면 아바고가 브로드컴을 370억달러에, 소프트뱅크가 ARM을 320억달러에 품에 안았다. 원만하게 M&A가 마무리되면 퀄컴이 새로운 기록을 쓰는 셈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NXP는 직전 프리스케일을 118억달러를 주고 M&A했다. 덕분에 2015년 매출 기준으로 르네사스, 인피니언 등을 제치고 자동차 반도체 업계 1위에 올랐다. 퀄컴은 세계 최대 팹리스 기업이지만 종합반도체(IDM) 대표주자인 인텔, 삼성전자 등에 이어 5위에 올라있다. 두 회사가 하나로 합치면 SK하이닉스와 TSMC를 제치고 3위로 올라서게 된다.

표면적으로 퀄컴이 NXP를 인수한 이유는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매출 둔화 ▲5세대(5G) 시대의 불확실성 ▲고성장이 예상되는 사물인터넷(IoT)과 자율주행차 시장에서의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기 위해서다. 쉽게 말해 ‘새로운 성장 동력 확보’+견고한 카르텔을 갖고 있는 자동차 반도체 업계의 ‘손쉬운 진입’을 염두에 뒀다고 보면 된다.

지난 몇 년 동안 퀄컴의 M&A는 방어적 성격이 짙었다. 한 업계 관계자는 “퀄컴이 최근 M&A를 진행한 업체는 시장평가액을 상회했는데 이는 설계자산(IP)을 견고히 하고 경쟁사가 진입하지 못하도록 했던 전략”이라고 말했다. 눈에 잘 들어오지는 않았지만 퀄컴은 다방면에 걸쳐 사업을 진행해왔다. 미세전자기계시스템(MEMS) 기반의 ‘미라솔’ 디스플레이, 전기차(EV) 무선충전 기술인 ‘헤일로’, 스마트홈 플랫폼 ‘올조인’ 등이 대표적이지만 아직까지 눈에 띄는 성과는 나오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전체 반도체 시장 가운데 연평균성장률(CAGR)이 10%에 육박하는 자동차 반도체에 퀄컴이 눈을 돌리는 이유는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두 업체가 가지고 있는 IP가 큰 차이를 보인다는 점에서 시너지 효과도 기대된다. 다만 타이밍이나 시장 상황이 썩 유리한 상태에서 진행한 M&A가 아니어서 어떤 나비효과가 발생될지가 관전 포인트다. 그동안 반도체 업계는 꾸준한 성장을 기록한 기업이 그렇지 않은 기업을 삼키는 형태가 일반적이었지만 이번에는 최근의 트렌드에서 다소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사실 퀄컴 입장에서도 마땅한 M&A 대상이 없었을 수 있다. 톱10 자동차 반도체 기업 가운데 경영난에 허덕인 르네사스는 일본 정부계 펀드로 인해 국유화가 됐고 인피니언은 독일이 자동차 강대국이라는 점, 같은 국적의 보쉬와 같은 티어1 전장업체의 반발이 필연적이다.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는 프랑스와 이탈리아 합작 회사인데다가 포트폴리오가 광범위하다. 이런 점은 텍사스인스트루먼트(TI)도 엇비슷하다. 덴소는 토요타의 계열사이고 온세미컨덕터는 규모만 줄인 TI나 다름없다.

따지고 보면 퀄컴이 순수하게 자동차 반도체 시장만 염두에 뒀다면 프리스케일만으로 충분했을지 모른다. 흥미로운 점은 NXP가 스마트폰 부품, 특히 근거리무선통신(NFC) 분야에서 압도적인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는 사실이다. 아날로그, 디지털을 포함한 혼성신호 반도체와 보안에도 일가견이 있다. 산업과 소비자 시장을 오갈 수 있다는 부분은 분명히 퀄컴에게 플러스 요인이다.

M&A 자체가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다. 지난 20년 동안 반도체 업계에서 흔히 일어났던 사건이다. 분명한 것은 팹리스와 IDM의 경계가 점차 모호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퀄컴이 던진 승부수는 전통적인 관점에서 상당한 체력, 바꿔 말하면 이제까지 차곡차곡 쌓아온 현금을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장치산업에 사용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인텔이나 삼성전자처럼 설비투자가 꾸준히 이뤄져야 한다.

(NXP를) 잘 소화시킨다면 퀄컴은 이제껏 보지 못했던 새로운 종(種)의 반도체 기업이 될 것이다. 그러길 바라고 결과는 3년(자동차 반도체가 완성차에 적용되는 평균적 시기) 이내에 가늠해볼 수 있을 전망이다.

<이수환 기자>shulee@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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