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맞아도 아프지 않은 매
[디지털데일리 최민지 기자] ‘본보기’라는 말이 있다. 이는 본보기로 삼을 정도로 좋은 사례에도 사용되지만, 본받지 않아야 할 대상에게도 적용되는 단어다.
실수든 의도적이든 결론적으로 남에게 큰 피해를 끼쳤을 때 본보기로 강한 처벌을 내리는 경우가 있다. 잘못에 상응하는 처분을 내려, 당사자뿐 아니라 주변 모두에게 같은 잘못을 저지르면 안 된다고 보여주는 것이다.
지금은 대부분 사라졌지만 과거에 선생님들이 들었던 회초리도 이와 같다. 교실에서 쌈박질하다 걸린 학생, 무단으로 수업을 듣지 않거나, 해야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을 한 아이들에게 내리는 징계였다. 경험에 비춰 보면, 반 아이들이 모두 보는 상황에서 선생님들은 회초리를 들었다. 일종의 본보기였다.
정부가 잘못된 행동을 한 기업 등에 내리는 처벌도 이와 다르지 않다. 그럼에도 대다수의 국민들이 한 번쯤 피해 경험을 입은 ‘개인정보 유출 사고’에 대해서는 아프지 않은 매로 다가온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정부의 약한 처벌이 오히려 잘못된 본보기로 적용되지 않을까 우려한다.
3만여명의 고객정보를 동의 없이 손해보험사에 넘겨 37억3600만원의 관련 매출을 올린 롯데홈쇼핑은 방통위로부터 고작 1억8000만원의 과징금 제재를 받았다. 롯데홈쇼핑 측은 3만여명의 고객정보를 동의하지 않고 3자에게 제공한 것은 맞으나, 37억3600만원의 부당 매출에 대해서는 반박했다. 2009년부터 6년간 전체 320만여명의 고객 동의를 확인한 후 3자에게 전달해 발생한 매출이 대부분이라는 주장이다.
경품행사로 모은 고객정보를 보험사에 팔아 231억7000만원의 수익을 얻은 홈플러스는 법정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1170만여건의 개인정보를 유출한 KT의 경우, 1심 법원에서 7000만원 과징금 처분이 부당하다는 판결을 받았다.
방통위는 이르면 내달 전체회의를 열고 지능형지속위협(APT) 공격으로 2665만8753건의 회원정보를 유출시킨 인터파크에 대한 처벌 수위를 논의할 예정이다. 인터파크의 늑장 신고에 따른 과태료 부과는 확정적이며, 과징금 처분 수준은 위원회에서 결정된다. 현 법령상 과징금은 관련 매출액의 100분의 3수준으로 정해지며, 추가 감경 및 가중 사항을 따진 후 총 과징금을 산정하게 된다.
하지만, 앞서 살펴본 개인정보 유출 관련 사건 결과들을 봤을 때 제재 효과는 크지 않았다. 맞아도 아프지 않은 회초리로는 아무리 때려도 소용없다는 점을 일깨워준다.
개인정보 유출 재발을 막고 기업들의 책임의식을 키우기 위해 실효성 있는 제재안이 필요하다.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의 적극적 도입도 해결책 중 하나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최민지 기자>cmj@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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