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 리포트] 노틸러스효성, 인터넷전문은행 철수가 뼈아픈 이유
[디지털데일리 박기록기자] 지난 10일, 비교적 안정적인 흐름을 유지해오던 효성의 주가가 전날보다 3.67%나 하락했다. 하루전인 지난 9일 검찰이 조석래 효성 회장에게 징역 10년, 벌금 3000억원을 구형한 여파 때문이다. 이날 검찰은 조회장의 장남인 조현준 효성 사장에게는 징역 5년, 벌금 150억원을 구형했다. 조 회장과 조 사장 등은 분식회계를 통한 세금 포탈 및 해외법인 자금 유용 등의 혐의로 지난해 1월 기소된 바 있다.
효성측은 과거의 잣대를 지금의 기준으로 너무 엄격하게 재단한 결과라며 선처를 요청했다. 최종 판결은 법원의 몫이겠지만 현재 국내 기업중 아마도 롯데그룹 다음으로 가장 심각한 오너리스크에 노출된 기업으로 효성그룹이 꼽힌다.
그로부터 나흘후인 지난 13일, 인터넷전문은행 인가 컨소시엄 2곳에 분산 참여했던 효성그룹 계열사들이 컨소시엄 탈퇴를 선언했다. 대주주 적격성이 논란이 되자 효성측이 인가 심사에 악영향을 줄까 우려한 때문이었다. 직전까지 효성ITX, 노틸러스효성은 KT 주도의 K뱅크 컨소시엄에, 갤럭시아커뮤니케이션즈는 인터파크 주도의 I 뱅크 컨소시엄에 참여하고 있었다.
다만 앞서 국정감사에서 야당이 제기한 효성의 인터넷전문은행 대주주 적격성 문제는 금융당국이 '문제없다'고 해명했기 때문에 논란이 여지는 크게 없었다. 결과적으로 효성그룹 오너의 배임과 횡령혐의 그 자체가 정서적으로 반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점에서 효성측이 먼저 움직인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물론 인터넷전문은행 인가를 앞두고 인가 기준이 '기술및 서비스의 혁신성'에서 참여 주주들의 도덕성, 자격시비로 옮겨가는 듯한 모습은 별개로 얘기를 해야할 부분이긴 하다. 최근 김범수 카카오 의장의 10여년전 미국 라스베가스 도박 혐의가 뜬금없이 제기됐던 것처럼 인터넷전문은행 인가에 너무 많은 정치적 해석이 나오고 있는 것은 그 자체로 몹시 불편한 흐름이다.
아무튼 조 회장에 대한 검찰의 구형과 인터넷전문은행 컨소시엄 탈퇴까지 상황전개만 놓고 보면, 효성의 행보는 다소 예상밖이다. 효성측이 눈총을 받으면서까지 두 곳의 컨소시엄에 양다리를 걸칠 정도로 인터넷전문은행에 대한 참여 의지가 절박했기때문이다.
금융IT 업계 전문가들은 '노틸러스효성이 인터넷전문은행을 계기로 ATM 전문업체에서 스마트금융 토털 솔루션업체로 변신하는데 큰 동력을 얻는 계기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이번 컨소시엄 참여 철회로 인해 일단 그 시나리오는 백지화됐다.
◆ATM 이외의 돌파구 필요한 노틸러스효성 = 이번 효성의 인터넷전문은행 컨소시엄 탈퇴로 인해 향후 행보가 가장 주목되는 효성그룹 계열사는 노틸러스효성(대표 손현식)이다.
노틸러스효성은 국내 금융권을 대상으로 공급하는 ATM(현금자동입출금기) 생산이 주력이다. 최근 몇년간 홍보기능이 약화돼 예전처럼 언론 노출이 안되고 인지도도 떨어졌지만 2000년대 초중반, 청호컴넷을 제치고 국내 ATM시장 점유율 1위로 올라설 당시에는 주요 IT서비스 기업으로 이름을 떨쳤다.
노틸러스효성은 ATM이 주력이긴 하지만 전체 매출 구성에서 순수하게 국내 ATM 매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높지 않다. 금감원 전자공시스템에 따르면, 노틸러스효성은 지난 회계년도에서 4335억원의 매출을 올렸으며 이중 국내 매출이 2029억원, 해외매출이 2305억원이다. 이중 그룹내부 매출은 189억원, 그룹 계열사를 대상으로 한 해외 매출은 1276억원이다.
비상장 회사인 노틸러스효성은 조석래 회장의 세 아들 (조현준, 조현문, 조현상)의 지분이 각각 14.13%씩 동일해 42.39%이며, 여기에 (주)효성의 지분 43.50%를 합쳐 85.89%를 구성하고 있다.
국내 주요 그룹의 비상장 IT서비스 계열사가 대부분 그렇듯 노틸러스효성의 실적도 양호한 편이다. 이 회사의 지난 2014년 당기순이익은 96억원(매출 4335억원, 영업이익 112억원)이다. 앞선 2013년은 당기순이익 270억원(매출 5105억원, 영업이익 271억원)을 기록했다. 특히 국내에선 여전히 침체지만 해외 ATM 시장의 성공적인 안착으로 해외매출이 안정적이란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외풍없는 모그룹의 안정적인 매출과 현금흐름, 오너 2세들로 구성된 주요 주주구성 등 노틸러스효성의 외형만 놓고보면 인터넷전문은행에서 발을 뺐다하더라도 특별히 아쉬울것은 없어보인다.
그러나 노틸러스효성의 기업문화는 여타 대기업 계열 IT서비스회사들처럼 온화한 온실속의 화초와 같은 분위기는 결코 아니다. 창의력이 필요한 IT업체이면서도 동시에 엄격한 생산관리와 공정이 필요한 제조업의 문화가 공존한다. 치열한 시장 경쟁을 극복하는 패기와 건전한 도전 정신은 노틸러스효성이 관련 업계로부터 높게 평가받는 전통적인 강점이다.
이 때문에 조금 더 들여다보면, 노틸러스효성에겐 이번 인터넷전문은행 컨소시엄의 탈퇴는 몇가지 점에서 뼈아프다.무엇보다 지금이 노틸러스효성이 ATM이외의 차세대 수익모델을 시급하게 발굴해야하는 상황이란 점에서 그렇다.
실제로 노틸러스효성의 주력인 ATM 분야는 효성뿐만 아니라 업계 전체가 심각한 시장 침체에 직면하고 있다. ATM 판매 단가가 원가(대당 1100만원~1300만원)에 못미친다는 것이 관련업계 관계자들의 공통된 분석이다. 이미 수년전에 국내 ATM시장은 청호컴넷과 FKM의 합병으로 기존 4사 구도에서 청호컴넷(실제로는 FKM 생산라인의 제품이 납품되고 있음), LG CNS(LG엔시스에서 사업 양도), 노틸러스효성 3사 구도로 한차례 정리된 바 있다.
하지만 이후에도 국내 ATM 시장의 사정은 더 좋아지지 않았고, 업체들의 고전은 올해도 이어지고 있다. 노틸러스효성이 국내 ATM시장의 1위이지만 특별한 의미를 부여할 수 없는 이유다.
특히 스마트폰에 기반한 모바일뱅킹 등 혁신적인 스마트금융 서비스가 지속적으로 선보이면서 은행권이 금융자동화 코너에 신규투자를 하지 않고 있고, 오히려 도입을 줄이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업계의 위기감은 더 커지고 있다. 시장 침체가 일회성이 아니라 구조적인 이유에서 출발하고 있기때문이다.
그나마 최근 핀테크(Fintech)바람이 불면서 ATM에 생체인식시스템을 부착하는 등 적극적으로 고부가가치화가 이뤄지고는 있으나 사실상 '특수'로 표현될 만큼의 시장 사이즈라고 보기는 어렵다. 지난 2008년 5만원 신권 발행이후 국내 ATM시장 특수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그동안 국내 ATM 시장규모는 신규도입 기준으로 연간 9000대~1만대, 금액으로는 1000억~1300억원 수준으로 평가됐다. 하지만 이제는 구조적으로 더 이상 시장이 확장될 가능성은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해외 ATM시장도 새로운 도전에 직면 = 그렇다고 지금까지 비교적 순항했던 해외 ATM시장 여건이 마냥 좋다고 볼 수 없다. 국내 ATM업체들은 OEM방식의 수출이 여전히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원가경쟁력이 떨어질땐 구조적인 취약성이 노출될 수 있다. 또한 경쟁업체들의 견제도 심화되고 있는 형국이다.
최근에는 독자 브랜드로 해외시장 확대에 나서고 있는 노틸러스효성에 대한 견제가 노골화되고 있다. 물론 이같은 시장 충돌은 노틸러스효성의 영향력이 커진데 따른 자연스러운 결과로 볼 수도 있겠지만 당사자들로서는 쉽게 넘어갈 사안이 아니다.
최근 미국의 ATM 제조업체인 디볼드(Diebold)가 미국 현지 지방법원과 국제무역위원회(ITC)에 ATM 제조관련 특허를 침해했다며 노틸러스효성을 대상으로 손해배상 및 미국 내 판매 금지 소송을 제기해 관련업계가 주시하고 있다.
디볼드는 노틸러스효성의 ATM 제조와 관련한 기술적인 부분과 운영과정, 보안 등 다양한 부분에서 특허를 침해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통상적으로 이러한 특허와 관련한 법적분쟁은 길게는 몇년씩 이어질 수 밖에 없다는 점에서 노틸러스효성으로서는 피곤한 장기전을 준비해야하는 상황이다.
이 뿐만 아니다. 지난 15년간 공을 들여온 중국 시장에선 일본의 ATM업체 ‘히다찌-옴론 터미널 솔루션즈’가 중국법원에 노틸러스효성를 지난해 말 제소했다. 히타치 옴론 터미널 솔루션이 보유한 ATM의 지폐 환류기구에 관한 중국 특허를 침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역시 중국 시장 상실을 우려한 일본업체들이 노틸러스효성 중국 법인을 대상으로 소송을 제기했다는 점에서 다분히 그 의도가 보인다.
일본 ATM업체들의 특허소송 공세도 물론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시나리오다. 앞서 지난 2000년대 중반, ATM국산화가 이뤄지지 전까지 국내 ATM업체는 환류식 모듈을 전적으로 일본계 ATM업체로부터 도입해왔기 때문이다.
일본 업체들은 국산 ATM의 환류식 모듈이 자신들의 기술을 상당부분 모방했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특허소송전은 회사의 성장에 따른 통과의례라고 치더라도 ATM 이외의 수익모델의 창출은 노틸러스효성의 피할 수 없는 당면과제다.
◆비대면채널 시대로 전환, 새로운 도전이 필요한 노틸러스효성 = 국내 금융권은 인터넷전문은행제도의 도입과 함께 비대면채널 전환을 서두르고 있다.
금융점포의 인력을 줄이는 대신 고객이 직접 금융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화상시스템과 본인확인시스템, 기타 창구업무 프로세스를 자동화한 셀프뱅킹(Self Banking)으로 전환을 고민하고 있다.
이에 따라 ATM과 같은 금융자동화 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노틸러스효성은 이미 오래전부터 비대면채널 시대에 대비한 점포혁신 모델을 서둘러 왔다. 실제로도 국내에서는 거의 유일하게 이러한 셀프뱅킹시스템을 개발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진 회사로 손꼽힌다.
신한은행은 지난 3월, 국내 은행권에서는 처음으로 생체인식과 화상상담이 포함된 가장 진화된 '셀프뱅킹 모델' 개발을 위해 주사업자로 노틸러스효성을 낙점했다. 노틸러스효성이 유일하게 입찰에 참여했기 때문에 수의계약이다.
당초 계획대로라면 올해 8월까지 신한은행은 셀프뱅킹 모델을 선보였어야 하지만 아직 공식화하지는 않은 단계다. 원래 점포 프로세스 혁신과 관련한 사업은 대고객 서비스와 직결되는 민감성 때문에 예상치 못한 변수가 돌출되기 쉽고 제날짜에 맞춰서 오픈하기가 쉽지 않다.
노틸러스효성으로서는 인터넷전문은행 탈퇴와는 별개로 비대면채널 시대에 대응하기위한 '셀프뱅킹'시장에 역량을 쏟아부을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한편으론 셀프뱅킹 시장이 보기보다는 훨씬 큰 리스크가 수반된다는 점과 많은 투자비용이 소요된다는 점에서 내재된 기술및 시장 리스크는 결코 만만치 않다. 냉정하게 말하면, 노틸러스효성 정도의 회사에 관련 시장의 투자를 선도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어쩌면 지나치게 무리한 요구일 수 있다. ATM을 포함한 금융자동화 부분, 그리고 그보다 더 진화한 한국형 셀프뱅킹 시스템을 구현하는 것은 기술적으로 까다로울 뿐만 아니라 시장 규모를 고려했을 때도 위험하다.
노틸러스효성은 인터넷전문은행을 통해 차세대수익 모델에 대한 소프트랜딩을 원했지만 결과적으로 최상의 시나리오는 나오지 않았다. 노틸러스효성이 앞으로 어떤 대응을 통해 주변에 산재한 리스크를 극복할 것인지 주목된다.
<박기록 기자>rock@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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