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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한국 장비 산업의 지속가능성

한주엽

[전자부품 전문 미디어 인사이트세미콘]

세계 1, 3위 반도체 디스플레이 장비 업체인 미국 어플라이드머티어리얼즈(AMAT)와 일본 도쿄일렉트론(TEL)의 합병은 끝내 무산되고 말았다. 이른바 ‘합병 반대파’의 의견을 각국의 규제 당국이 적극 수용했다. 직접 경쟁 업체는 물론이고 두 업체에서 장비를 사가는 수요 기업도 합병 반대 의사를 직‧간접적이면서도 적극적 혹은 소극적으로 표명했다.

양사가 합병하려 했던 건 전방 산업계와 ‘힘의 균형’을 맞추는 데에서 나아가 영업력에서 우위를 갖기 위한 시도였을 것으로 풀이된다. 반도체를 예로 들면, 최신 공장을 지을 제품 포트폴리오와 재무적 여력을 갖춘 업체는 인텔, 삼성전자, TSMC, 글로벌파운드리(GF), SK하이닉스 등 손에 꼽을 정도로 적어졌다. 물건을 팔 수 있는 고객수가 점점 더 줄어들고 있다는 의미다. 물건을 파는 업자도 꾸준한 M&A로 덩치를 키웠다. 이미 반도체 소자 업자들 사이에선 ASML(노광), AMAT(증착 등), TEL(감광액 도포 등), 램리서치(식각 등), KLA-텐코(검사 측정) 5개 장비 업체만 섭렵하면 최신 생산 라인 하나를 통째로 꾸밀 수 있다는 말이 나온다. 전방 산업과 마찬가지로 장비 산업도 이미 성숙될 대로 성숙됐다는 의미다. 이런 상황, 이런 시장에서 사업을 꾸려나가는 국내 군소 장비 업체의 어려움은 물론 클 것이다.

지난해 주성엔지니어링은 삼성전자와 GF의 14나노 핀펫(FinFET) 공정 공유 계약이 이뤄지면서 성사 직전까지 갔던 GF와의 신규 장비 수주 계약을 놓치고 말았다. GF가 삼성전자 14나노 공정 기술 뿐 아니라 장비까지도 그대로 도입하는 이른바 ‘카피 이그잭틀리(Copy Exactly)’ 프로그램을 가동했기 때문이다. 주성엔지니어링은 지난 2001년 불거진 납품비리 사건(양측 주장은 크게 다르다) 이후 어찌됐건 삼성전자의 주요 장비 공급사에서 제외됐다. 즉 삼성전자와 GF가 공정 기술을 계속 공유하는 한, 주성엔지니어링이 GF로 장비를 공급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이 회사가 디스플레이, 태양광, 발광다이오드(LED) 분야로 사업 다각화를 꾀하는 이유는 이처럼 물건을 팔 수 있는 고객수가 줄어드는 데 있는 것이다.

디스플레이 장비 분야 역시 상황은 녹록치 않다. 이 분야 최대 고객사는 중국 패널 업체다. 중국 정부는 2016년까지 장비 종류의 40% 가운데 40%를 내재화(중국 2014~2016 신형 디스플레이 발전행동계획)하겠다는 목표를 세워뒀다. 중국이 목표대로 장비 내재화를 이룬다면 기초 장비를 주로 공급하는 국내 중소 업체들에게는 큰 악재가 될 것으로 보인다. 지금 당장은 장비 발주가 넘치지만, 다가올 경쟁 환경에 분명한 대비책을 갖춰야 한다.

이용한 원익 회장은 지난해 8월 열린 ‘한국 반도체·디스플레이 산업 현안점검 간담회’에서 “AMAT와 TEL의 합병은 마치 메모리 분야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합치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국내 장비 업체에 엄청난 타격이 올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의 발언은 ‘산업부가 양사 합병이 성사되지 못하도록 공정위 등에 힘을 써 달라’는 의미로 해석됐다. 되돌아온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의 답은 이랬다. “그러게 예전부터 국내 기업 간 M&A 등으로 대비를 해야 한다고 누차 말하지 않았느냐”.

AMAT와 TEL의 합병은 무산됐지만 이번 일이 국내 중견, 중소 장비 업체들에게 시사하는 의미는 크다. 개별 회사, 전체 장비 산업의 지속 가능성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볼 때다.

<한주엽 기자>powerusr@insightsemico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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