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기자가 컴퓨터라는 물건을 처음 접한 것은 초등학교 4학년 시절인 1986년이었다. 학습용 컴퓨터라는 광고 문구를 앞세워 부모님을 오랫동안 설득해 ‘대우 퍼스컴 MSX2 아이큐2000(이하 아이큐2000)’이라는 컴퓨터를 처음 획득했다.
아이큐2000은 롬팩 카트리지를 끼우지 않으면 자동으로 마이크로소프트의 베이직이라는 프로그램이 실행되도록 돼 있었다. 베이직은 알다시피 컴퓨터 프로그래밍 언어다.
부모님을 졸라서 아이큐2000을 얻어냈지만, 막상 컴퓨터로 무엇을 해야할지 몰랐다. 함께 배달된 교재를 보면서 하나하나 따라할 수밖에 없었다. 그 교재는 베이직으로 프로그래밍을 하는 방법을 설명하고 있었다.
교재를 따라 1부터 100까지 더하는 프로그램을 만들기도 하고, 화면에 별을 그리는 프로그램을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컴퓨터에 대한 나의 관심은 오래가지 않았다. 베이직 언어는 대충 익혔지만, 교재를 다 따라한 이후에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 스스로 만들고 싶은 프로그램이 없었기 때문이다. 무언가 창조하고 싶다는 자발적 욕구 없이 습득한 프로그래밍 기술은 아무런 의미를 지니지 못했다. 결국 아이큐2000은 게임기로 변질됐다.
#2 기자는 인문대학을 나왔지만 특이하게 전공선택 과목에 컴퓨터 프로그래밍이 있었다. 기자는 언어학과를 나왔는데, 컴퓨터 프로그래밍 언어도 하나의 과목이었던 것이다.
평소에 컴퓨터에 별 관심이 없었던 언어학과 학생들이지만 전공과목 중 하나이기 때문에 C언어를 배워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그 결과는 좋지 않았다. 한 학기 내내 수업을 들어도 대다수의 언어학과 학생들에게 C언어는 암호에 가까웠다. 수업을 들었지만 자신만의 프로그램을 만들기는커녕 수업내용을 이해하는 학생도 많지 않았다. 그래도 시험은 봐야 했다. 어떤 학생들은 예상문제에 대한 코드를 달달 외워서 시험장에 들어가기도 했다. 그들에게 컴퓨터 프로그래밍 교육은 고문의 다른 이름이었을 것이다.
최근 컴퓨터 프로그래밍(코딩)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확산되고 있다. 특히 오바마 대통령이 컴퓨터 프로그래밍(코딩) 교육의 중요성을 언급하면서 이런 주장은 더욱 설득력을 얻고 있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두 개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 자발적 욕구가 없는 일방적인 프로그래밍 교육은 그 뜻을 이루기 힘들다. 학생들에게 고통만 가중할 뿐이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수년전 한국교육 시스템을 칭찬한 바 있다. 그는 지난해 자국 이공계 경쟁력 향상 방안을 주문하며 “한국 교육에 답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국내 대부분의 학무모나 교육전문가들은 오바마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대부분은 오바마가 한국 교육의 현실을 잘 모르고 한 발언이라고 생각한다.
오바마 대통령에게 한국교육과 코딩의 공통점은 ‘직접 경험해 보지 않은 분야’라는 점이다.
최근 IT 기술의 발달은 코딩을 부수적인 활동으로 만들고 있다. 코딩 활동은 대부분 자동화 돼 가는 추세다. 모델중심개발(MDD)이라는 개발 방법론은 코딩을 하지 않는 것을 목표로 할 정도다. 이는 개발자들이 모델링을 하면 코드는 자동으로 생성되도록 하고 있다.
이처럼 최근 IT업계에서 ‘코딩 기술’은 주요한 경쟁력이 아니다. ‘코더’들은 이미 국내에도 많다. 훌륭한 개발자들은 버그 없이 코딩을 기가 막히게 잘 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무엇을 만들면 세상 사람들이 좋아할지 생각해내는 기획력, 자신의 생각과 다른 사람의 생각을 공유하고 조율할 수 있는 소통력, 목표한 프로그램을 만들기까지 로직(Logic)을 세우는 논리력, 쉽게 지치지 않는 뚝심 등이 위대한 개발자들이 가진 특징이다.
코딩 교육 의미 자체를 부정하자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코딩 교육의 목표가 코딩 기술 전수가 되면 곤란하다. 코딩교육은 컴퓨터에 대한 어린 학생들의 관심을 유발시키고, 그것을 통해 무언가를 만들고 싶다는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역할에 그쳐야 한다.
빌게이츠와 스티브잡스는 자신의 성공비결을 코딩 조기교육이 아닌 독서라고 말하고 있다. 강제적 조기코딩 교육은 자칫하면 컴퓨터에 대한 흥미를 떨어뜨리고 아이들의 독서시간만 빼앗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