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데일리 백지영기자] 최근 빅데이터가 가장 주목되고 있는 곳은 어디일까. 바로 의료 분야다. 구글이 지난 2008년 선보인 ‘독감경보서비스(flu trends)’가 대표적인 예이다.
이 서비스는 ‘독감’과 관련된 검색어의 입력 빈도를 지역별로 파악한 다음 지도상에 독감 유행 수준을 ‘매우 낮음’부터 ‘매우 높음’까지 5개 등급으로 구분해 표시한다. 만일 특정 지역에서 발열이나 기침 등에 대한 검색이 늘어나면 지도상에서 해당 지역의 독감 유행 수준 등급이 올라가는 방식이다. 심지어 이 서비스를 통한 독감 경보는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보다 몇주나 빨랐다는 결과도 있다.
이처럼 기존에 잘 활용되지 않았던 데이터를 새롭게 가공, 분석되며 이전에 없던 새로운 가치를 뽑아내는 ‘빅데이터’는 국내 병원에도 적극 도입되며 의료 서비스 향상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디지털 병원’으로 잘 알려진 분당서울대병원은 최근 SAP HANA를 도입해 차세대 임상데이터웨어하우징(CDW : Clinical Data Warehouse) 시스템을 구축했다. 사실 이는 엄밀히 말해 ‘빅데이터’는 아니다. 이 병원이 보유한 진료 기록도 약 60테라바이트(TB)에 불과해 데이터 양 자체만으로 따졌을 때도 빅데이터의 범주에 속하지 않는다.
이와 관련, 이 병원 황희 의료정보센터장<사진>은 최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데이터 볼륨으로만 봤을때 이를 빅데이터로 볼 것이냐에 대한 논란은 있을 수 있다”며 “그러나 병원에서의 데이터는 일반 회사와는 그 의미가 다르다. 한 사람의 개인의료정보가 평생동안 쌓이면 이는 엄청난 양의 유전정보가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향후에는 이 유전 정보를 보고 결혼 여부를 결정하는 시대가 올지도 모를 일”이라고 우스갯 소리를 했다.
분당서울대병원이 CDW를 구축한 이유는 궁극적으로는 현행 DW의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서였다. 지난 2004년 자체 구축한 DW시스템은 처리 속도가 너무 느렸다.
이에 따라 병원 측은 차세대 병원정보시스템(HIS)을 준비하면서 DW를 새롭게 구축하기 위한 작업을 시작했고, 지난 4월 성공적인 런칭이 가능했다.
실제 새로운 CDW 구축을 통해 기존 시스템 대비 처리 속도가 100배 이상 빨라졌으며, 의료진이 기록해 놓은 프리 텍스트 검색이 가능해지면서 실시간 모니터링이 가능해졌다. 이를 통해 환자에게는 보다 향상된 의료 서비스를 제고할 수 있게 됐고, 의료진 역시 원하는 데이터를 빠르게 검색, 분석할 수 있어 연구 차원에서의 만족도도 높아졌다.
황센터장은 “예를 들어 병원에서는 의료 지표를 관리하는 임상 질지표(CI, critical indicator)를 운영하고 있는데, 일반적으로 거의 1년 전의 과거 데이터로 관리자가 별도의 가공 작업(통계, 그래프 등)을 해야 하기 때문에 정보의 정확도가 낮고 시간도 오래 걸린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분당서울대병원의 경우, 100배 빨라진 DW시스템을 통해 약 300개의 임상 질지표(CI)실시간으로 관리할 수 있게 됐다. 또한 현재 단 6명의 간호사가 300개의 CI를 관리하고 있다. 이들은 데이터 수집이나 장표를 따로 만들 필요 없이, 실시간으로 시스템을 모니터링하면서 의료진에게 피드백을 주고 있다.
CI를 쉽게 설명하자면, 예를 들어 환자에게 항생제를 처방한다고 했을때 의사가 쓸데없이 3세대 항생제를 쓴다거나 이를 너무 오랜 시간 투입시키게 되면 환자 입장에서는 쓸데 없는 비용이 들거나 내성균 등이 생기는 문제점이 발생한다. 이는 적절한 진료가 아니다. 병원에서는 이같은 데이터를 관리하며 꾸준히 의료의 질을 높여 나갈 수 있다.
그는 “실제로 미국의 한 병원은 150개의 CI를 관리하는데 정규직 간호사 100명을 쓴다”며 “CI 항목을 늘리고 싶어도 인력 비용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의사들의 연구활동 측면에서도 이번 CDW 구축은 대단히 획기적”이라며 “나 역시 어느날 책상 앞에 앉아있다가 문득 지난 10년 동안 진료한 간질 환자가 몇명이고, 약을 어떻게 처방하는지 보고 싶어 시스템을 돌렸더니 5~6초만에 결과가 나오더라”고 말했다.
실제 황희 센터장은 병원의 CIO 역할을 하는 의료센터장이면서 소아신경과 의사다.
황 센터장은 “과거에는 이러한 것들이 궁금하면 (시간이 오래 걸리니) 검색 조건을 걸어두고 여러가지 일들을 다 보고 돌아와도 여전히 컴퓨터가 돌아가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며 “심지어 내가 무엇 때문에 이 작업을 했는지도 잊어버리곤 했다”고 말했다.